나의 처음에게

by SEEYOUHERE

사람이 하나 태어날 때

사랑도 하나 태어난다


처음이란 것은 원래 서툴러서

서투른 사람 위로

서투른 사랑이 포개어진다

팔팔 끓이고서 볕에 바삭하게 말린

배내옷에 깃든

최선의 사랑을

최초의 사람은 만난다


* * * * *


나보다 아홉 살이나 어린 여자가 삼십 년 전에 이미 나를 낳았다. 스물한 살의 다 영글지 않은 몸으로. 배는 계속해서 불러오고, 내가 그 안에서 그 여자가 먹는 모든 걸 다 받아먹어 치우는 동안, 그 여자가 구석구석 감쳐둔 걸 탕진하는 동안 그 여자는 자기를 채우는 법을 몰랐다. 어리숙한 그때 그 여자를, 서른 먹은 지금의 내가 알았더라면 수박이든 참외든 먹고 싶다는 건 다 입에 넣어주었을 텐데. 엽산이든 뭐든, 사랑이든 앎이든, 필요한 것이라면 모조리 다 쥐어주었을 텐데.


배는 부르는데 속은 비어 가는 줄을 몰라서 그 여자는 더 악착같이 돈을 벌었다. 불러오는 배만큼 확실한 것은 손에 쥐어지는 돈 뿐이었으니까. 그 여자가 온몸으로 뛰어서 번 돈. 악착같은 아줌마들보다 더 악착같이 굴어서 번 돈. 그 여자는 그것밖에는 몰랐고, 나는 내 뼈와 살을 채우고 늘리는 일밖에는 몰랐겠지.


모르는 것 투성이인 무지한 두 여자의 열한 달 동안의 동거. 그 여자는 내가 예정일보다 한 달이나 늦게 나왔다고 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어린 여자가 혼자 그렇게 애쓰는 줄도 모르고. 그러니까 마지막 한 달의 더부살이는 기생이나 무단점거 같은 말이 더 어울릴 테다.


8월의 땡볕 더위에 가만히 있어도 기운이 푹푹 빠지는 계절에 그 여자는 온몸으로 산고를 통과한다. 때가 지났는데도 좀처럼 나올 기미가 없던 나를 원망했을까. 기다렸을까. 그럴 겨를도 없이 마냥 아프기만 했을까. 그 여자의 남편은, 부모는 그 여자가 받아 마땅한 보살핌을 주었을까. 머리를 쓸어주고 손을 잡아주었을까. 구멍마다 엉기고 맺히고 터져 나오는 통증에 몸서리칠 때, 눈물 흘릴 때, 옆에서 같이 울어주었을까.


해산. 풀 해, 낳을 산. 그 여자는 자기 안에 감겨있던 나를 풀고 낳아, 세상 밖으로 밀어냈다. 그렇게 모든 이야기가 시작된 거다. 생이라는 이야기. 그 여자의 고통에서부터 풀어지고 나온 이야기. 그러니 생이란 것은 본래 고통일 수밖에 없는 것이려나.


쭈굴쭈굴한 데 없이 매끈한 모습으로 태어났다고, 내가 자라나는 동안 그 여자는 몇 번이고 말해주었다. 손가락, 발가락도 길쭉길쭉. 머리칼은 풍성하게. 피부는 울긋불긋한 데 없이 하얗고 말갛게. 아무래도 그 여자의 뱃속에서 누릴 수 있는 건 다 누리고 느긋하게 나온 덕분이었으리라.


어렸을 때는 나 또한 젊은 엄마가 될 거라 생각했다. 딸은 엄마 팔자를 닮는다고 했으니 당연한 수순이라 여겼다. 그 여자처럼 나도, 이른 나이에 어떤 남자에게 인생을 걸어버리고, 나와 그 남자의 좋은 점만 쏙 빼닮은 아이가 태어나길 빌고, 조금은 서툴고 거칠게 애정을 나누면서 내 가정을 이루리라고 생각했다. 멋모르고 열심히만 사는 생. 뭘 몰라서 열심히 살 수밖에 없는 생.


그 여자는 다른 건 몰라도 자기 팔자만큼은 내게 물려주지 않았다. 남자에, 사랑에 목매기에 여자의 인생은 이미 몹시 피곤하다는 걸 나는 그 여자를 통해 알았다. 생의 고비마다 나를 지켜줄, 달콤한 말과 손길로 정신 못 차리게 해 줄 남자를 만나는 것이 여자의 숙원이라 믿게 하는 세상의 모든 환상으로부터, 허영으로부터 나를 내쫓은 것도 그 여자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여자가 살아낸 삶이 나를 그렇게 이끌었다. 나는 그 여자의 기대와 실망, 도전과 실수 끝에 맺히는 결실을 마음대로 따다가 먹었고, 마침내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일은 하지 않을 수 있게 됐다. 이를테면 너무 이른 나이의 결혼과 출산 같은 것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남자를 쉽게 믿어버리는 일 같은.


내 모든 것의 시작. 내 생의 첫 단추. 고통도 원망도 기쁨과 영감까지도 모두 그 여자에게서 시작됐다. 어느 날엔, 그 여자의 장기 속부터 뼛속의 작은 틈까지 좋은 것이라곤 다 긁어먹고 나와놓고선, 이것밖에 못되었느냐고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 여자가 생의 소용돌이 속에서 다치고 씨름하는 동안 귀퉁이에 비켜서서 나는 그렇게 살지 않을 거라 큰소리칠 땐 언제고 이렇게밖에 살지 못하였느냐고. 그런 질문 끝에 오랜 정적이 있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은 그 여자의 고통에서 말미암은 것. 허투루 써서는 안 되는 것. 나는 그렇게 낮아지는 동시에 홀로 소중해지는 법을 배웠다. 그 여자가 다 내어주었기 때문에. 나의 모든 것은 태초부터 그 여자의 모든 것이었기 때문에. 그러니까 생이라는 일을, 이 거대하고 지난한 프로젝트를 망쳐서는 안 되는 단 하나의 이유를 꼽자면 그것은 그 여자에게 있다. 만회하고 보답해야 하니까. 만회와 보답의 길로 나아가는 방법은 그 여자가 준 생을 잘 살아내는 것 뿐이라서 나는 잘 살아야만 한다.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랑받으면서.


엄마라는 존재는 세상을 낳고 견디고 품는 사람. 속절없이 다 내어주는 사람. 그 여자도 나를 낳고 견디고 품으면서, 속절없이 다 내어주면서 엄마가 되었다. 이제는 오십이 넘어 안 아픈 곳이 없고 말끝마다 건강이 최고라고 말하는 그 여자가 바로 내 엄마다. 나름의 방식으로. 모두에게 그렇듯 내게도 하나 주어진 나의 엄마. 우리 엄마.


엄마는 여태껏 남들 앞에서 나를 ‘우리 애기’라고 부른다. “우리 애기는 이래요, 저래요” 말하면 그걸 들은 모르는 이들은 “애기가 어려요? 몇 살이에요?” 묻는단다. 언제 들어도 우스운 얘기. 꼬부랑 할머니가 돼서도 듣고 싶은 얘기.


내가 엄마한테 전화를 걸면 휴대폰 화면엔 큼지막한 글씨로 ‘하나뿐인 소중한 내 딸’이라고 뜬다. 아주 오래전부터 그랬다. 그렇게 걸려온 전화를 받으면 때론 앙칼지고 때론 심드렁한 내 목소리가 엄마의 귀로 가슴으로 툭툭 흐르고 콕콕 박혔으리라. 그런 부당한 취급을, 실수들을 다 만회하려면 나는 이 생을 대체 얼마나 잘 살아내야 할까.


* * * * *


엄마는 나의 처음

나는 엄마의 처음

게다가 엄마는 엄마가 난생처음이다


나의 처음은 엄마에게 있고

엄마의 처음엔 내가 있다

처음은 원래 서툰 것이어서 우리는 언제나

서툰 모습으로 서로에게 있다

허나 최선의 사랑으로

매일 처음 비치는 햇살과 같이

당연하고 명징하게

따뜻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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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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