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안 Nov 07. 2022

가슴 쓰라린 날  

개인용 주차 차단기   / 22년 11월 2일(수, 맑음)


오후 따스한 햇볕을 기분 좋게 만끽하며 걷고 있는데 남편이 전화했다.

"당신 무슨 일 있어? 혹시 내게 숨기는 거 있어?"

"대관절 무슨 말이야? 즐겁게 산책 중인데. 좀 알아듣게 말해!"

"경찰서 교통 수사계에서 전화 왔어! 혹시 오늘 뺑소니쳤어? 괜찮으니 숨기지 말고 내게는 털어놔"


황당함을 넘어 밀려드는 공포에 다리가 후들거렸다.

빌딩 주인과 자초지종을 꿰맞추어 보니 오전에 요가원 주차장에서 후진하면서 노면에 설치된 "개인용 주차 차단기"를 부수고 그대로 내뺐다는 갓이다.


난 정말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그저 뭔가 걸려 덜컥거렸는데 운전석에서 내려다보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그대로 집으로 왔을 뿐이다. 지하 주차장에 가서 내 차부터 확인해보니 범퍼 아래가 다 긁혀 있었다. 정말이지 너무 가슴이 아팠다. 손으로 범퍼를 만지니 흰색 페이트가 우수수 낙엽처럼 떨어졌으니 말이다.


다행히 빌딩 주인 할아버지는 고의성이 없는 운전 미숙으로 봐주시는 듯했고, 휘어진 주차 차단기는 책임지고 수리해주는 것으로 마무리 지었다. 전화를 끊기 전 주인 할아버지가 덧붙이셨다.

"그 차도 수리비도 좀 나올 텐데..."


이날만큼은 그림 소재 걱정을 할 필요 없었다.

아, 그림 소재 걱정하는 날이 좋은 날이었구나.



매거진의 이전글 선 그림, 후 식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