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이는 고개를 숙인 채 걷고 있었다. 양쪽으로 묶은 머리는 몸 따라 축 쳐져 강아지 꼬리인 듯 걸을 때마다 흔들렸다. 바짝 묶었던 머리는 공기 빠진 공처럼 힘 없이 늘어졌다. 평형대 위를 걷는 아이라 하면 고개를 바짝 들고 정면을 바라보는 모습이 연상되는데, 그 아이는 모든 것이 축 쳐져 보였다. 벌린 두 팔도, 어깨도 머리도 옷도. 7살 아이라 하면 무엇이든 재밌고 힘이 넘쳐 이곳저곳을 띄어 다닐 텐데 아이는 금방 세상이 무너지기라도 한 듯 침울한 표정이었다. 눈 코 입 그 어떤 것도 해맑지 않았다. 그 아이를 만날 수 있다면 당장 달려가 그 아이를 껴안아 힘을 주고 싶었다. 나는 마치 그 아이가 내 앞에 있는 것처럼 응원의 말을 건넸다. 넌 할 수 있다고. 코치가 선수에게 피드백을 하듯 허리를 반듯하게 펴고 정면을 응시하며 걸어보라고 말해주었다.
사진 속 그 아이는 양팔을 벌리고 평형대 위를 걷고 있었다. 얇은 두 다리로 균형을 유지하는 그 모습이 안쓰럽게 느껴졌다. 내 어린 시절을 몇 장 안 되는 사진으로 만났다. 환하게 활짝 웃거나 장난기 가득한 모습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내 기억 속 유년시절은 어딘가에 숨어있을 때가 많았다. 엄마 뒤에 숨거나 내 안에 숨어들었다. 어른을 만나면 인사하는 것이 어려웠고 말이 나오지 않았다. 입 안에 말을 머금고 내뱉지 못했다. 그런 나의 성격을 이해하고 괜찮다고 다독여주는 어른은 없었다. 이유도 모르고 자신감이 부족했다. 무언가 명확하게 아는 것 없이 흐릿했다. 가족에 대해서 나에 대해서, 공부에 대해서 친구에 대해서. 어떤 것이든 잘할 수 있다는 확신은 내게 없었다. 어렴풋하게나마 나를 추측했다. 나는 음악을 좋아하고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고 싶다는 정도의, 꿈이자 동경이었다.
나는 나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여자라는 것. 부모님과 언니가 있다는 것. 그 정도의 사실만이 나를 설명할 수 있었다. 내가 누군가의 자녀이고 동생이라는 사실 외에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했다.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고 어떤 느낌을 가지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알려하지도 않았다. 정확하지도 뚜렷하지도 않았다. 그랬던 내가 결혼을 했고 세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결혼은 행복한 거라고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을 만나 평생을 함께하는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같이 여행을 다니고 꿈을 꾸고, 이루고 남편과 내가 한마음 한뜻으로 살아낼 줄 알았다. 성격이나 생활습관으로 인한 부딪힘은 생각지도 못했다. 남편과 내 안에 여전히 각자의 부모님에 대한 사랑이 남아 우리를 괴롭힐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결혼 후 지금까지 내 인생을 정리해 본다면 비밀번호를 모르는 금고를 여는 것과 같았다. 그곳에 무엇이 들어있을지 모르지만 열고 싶은 마음이 불쑥불쑥 튀어 올랐다. 남편의 마음은 마치 판도라 상자 같아서 잘 못 열면 우리에게 어떤 일이 닥칠지 알 수 없었다. 판도라 상자 안에는 남편조차도 꺼내지 못하는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 어린 시절의 이야기가 있었다.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만 나오면 발끈하는 남편을 보면, 무엇이 그토록 남편을 힘들고 괴롭게 하는 것인지 알고 싶어졌다. 결혼을 하고 10년이 넘었어도 아직도 나는 남편에 대해 다 알지 못한다. 남편은 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고, 알고 싶어 할까? 나는 남편과 다르게 내 마음속에 있던 비밀금고를 글쓰기라는 열쇠로 풀어놓았다. 명확하지 않고 어슴푸레 느꼈던 부모를 향한 마음을, 어린 시절의 나를 꺼내었다. 그 안에는 사랑받고 싶은 어린아이가 있었다.
어릴 적 나는 말수가 없고 숫기도 없는 아이였다. 활발하지도 적극적이지도 않았다. 교실 안에서도 많은 학생들 중 한명일뿐이었다. 나를 궁금해하는 사람도 칭찬을 해주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보니 스스로 나의 존재를 증명해내고 싶었다. 어떤 방법으로든 나를 들어내고자 했다. 그땐 왜 그렇게 나를 들어내고 싶었는지 알지 못했다. 혼자 있는 것을 좋아했지만, 부끄럽고 조용해서 사람들과 섞이지 못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얼굴이 예쁘지 않아서 공부를 잘하지 못해서 존재감이 없는 거라고 여겼다. 만약 내향적인 성향에 대해 알고 이해하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혼자만의 시간을 통해 잠재력을 펼칠 수 있었을까? 조용하고 숫기가 없는 것을 성격이 좋다 나쁘다로 평가되어 존재에 대한 가치까지도 낮아져 버린 것 같았다. 혼자서 책을 읽고 글로 정리해 낼 수 있었다면, 부모님이 나의 성향을 알고 이끌어주셨다면 지금의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었을까?
나는 글을 쓰며 나를 알게 되었다. 내면으로 들어가 보니 진짜 나를 만날 수 있었다. 나와 대화를 하며 글을 쓰는 시간은 무의식의 깊은 곳에 들어가는 순간이었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지금 이대로도 괜찮은가? 나는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변화되어야 하는가에 대해 끊임없이 내 마음에게 물어보았다.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내 마음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 목소리를 따라 걸어갔다. 글쓰기를 하며 마음을 비워내니 무언가를 바라는 마음을 내려놓게 되었다. 조급함이 사라졌다. 욕심을 비우고 오로지 내 마음에게만 집중하니 그곳엔 나라는 한 사람만이 있었다. 남편과 행복해지기 위한 마음도 갈등을 풀어내고 싶은 마음도 내려놓으니 그곳엔 오직 사랑만이 남아있었다. 사랑하고 싶은 마음은 그 어떤 것으로도 표현이 되지 않았다.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감정이었다. 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남편을 사랑하고 아이들을 사랑하게 되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에 감사를 표하니 평안함과 풍요가 내 안에 찾아들었다. 남편의 말이나 행동이 내 마음을 괴롭히지 않았다. 더 이상 외부의 인정에 목말라 우물을 파지 않아도 되었다.
나는 글쓰기를 하며 내면아이를 만났고 그 아이를 껴안아주었다. 사랑받고 싶은 아이의 순수한 마음을 인정하고 마음껏 사랑해 주었다. 글로 내 마음을 표현하면 무조건 수용해 주었다. 어떤 평가도 조언도 하지 않았다. 내 마음을 인정하고 받아주니 마음속 아픔들이 치유되었고, 상처가 회복되었다. 마음이 자라나고 있음을 느꼈다. 보이지 않는 마음을 탐색해 나가면서 고유한 진짜 나를 알아갔다. 나와 대화하는 그 시간은 그 어떤 시간보다도 행복했다. 글쓰기는 그 어떤 선물보다도 귀하고 값진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