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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의 달팽이 Mar 27. 2024

다시 꺼내보는 그날 그때의 이야기

김치 볶음밥을 만들던 일요일 저녁

제목 : 평범함을 지키는 반복의 힘

부제 : 나는 오늘도 반복이 주는 힘을 깨달으며 하루를 버텨냈다


아이들이 까르르 웃으며 즐겁게 1박 2일을 보는 동안 나는 셋째를 업고 김치볶음밥을 만들었다. 돼지고기 목살을 갈색빛이 나도록 노릇하게 구워 가위로 잘게 잘게 썰은 후 다진 파를 넣고 볶는다. 다진파가 돼지고기와 합쳐져 자글자글 익어가는 동안 잘 익은 김치를 꺼내 가위로 잘게 잘게 자른다. 요리를 하는 동안 셋째는 뭐가 그리도 맘에 안 드는지 칭얼칭얼 댄다. 가까스로 만든 빨간 김치볶음밥을 아이들이 맛있게 먹는다. 아이들에게 매울 수도 있는데 참 잘도 먹는다. 그런 와중에 아빠는 아이들이 그토록 좋아하는 1박 2일을 못 보게 TV앞을 가로막는다. 급기야 꺼버리기 까지 한다. 그렇게 정신없는 저녁이 지나간다.

 

매주 돌아오는 일요일 저녁, 그리고 어쩌다 한 번씩 찾아오는 감기까지 온몸이 피곤하고 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도 오늘도 나는 엄마라는 이유로 참고 견뎌내야 했다. 주말에 한 번쯤은 누군가 나를 대신해 음식을 해주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그 누군가는 내 기분을 바라봐 주지 않는다. 괜스레 짜증이 섞여 나올 법도 했지만 싸움을 일으키고 싶지 않아 참고 버텼다. 이 평범한 저녁 식사 시간에,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는 김치볶음밥을 만들기까지 수많은 반복이 있었고, 반복이 쌓아 올린 힘으로 나는 아이들의 평범한 저녁식사를 만들 수 있었다는 깨달음으로 이 시간을 버텼다.


평범함은 반복의 힘으로 쌓아 올린 오늘의 결과물이다. 엄마들이 뚝딱뚝딱 음식을 만들어 밥상을 차리는 것 같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수많은 나날들이 있었다는 것을, 수많은 반복의 수고로웠던 날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김치볶음밥을 만들면서 말이다. 네이버로 레시피를 찾아보지 않아도 머리로 생각하지 않아도 그냥 만들어 낼 수 있다. 김치와 파, 굴소스만 있으면 된다. 늘 냉장고를 든든히 지켜주는 김치가 메인 재료다. 그것 또한 수많은 김장의 반복으로 인해 놓여 있다. 시댁에서 늘 가져다 먹는 김치. 김치를 가져다 먹을 때마다 쉽게 쉽게 가져다 먹는다고 타박하던 남편의 말이 생각이 난다.


평범한 하루를 위해 오늘도 나는 어김없이 이 자리를 지켜냈다. 아침에 일어나 세탁기에 빨래를 넣어 돌리고 널었다. 이불을 탁탁 털어 갠 후 장에 넣고 청소기로 먼지를 빨아들였다. 그리곤 가족들의 밥상을 위해 음식을 만들고 설거지를 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다. 공부도 이렇게 집안일을 하듯이 반복적으로 했다면 어땠을까 싶다. 아이를 업고 김치볶음밥을 만들며 아, 힘들다 속으로 한숨을 쉬는 동안 이 순간을 버티기 위해 글쓰기를 생각했다. 이것도 글의 주제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평범함과 반복, 일상 이 세 단어를 붙잡았다. 이 단어들로 멋진 문장을 만들어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그렇게 나는 김치와 파를 볶고 있던 프라이팬에 밥을 넣었다.


평범함은 누구나가 원하지만 벗어버리고 싶어 하기도 한다. 삶의 주인공을 꿈꾼다. 부자가 되길 원하고 한 번쯤 주목받는 삶을 살고 싶어 한다. 그럼에도 평범함을 원한다. 무탈한 하루를 원한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내일에도 건강하게 일을 하고 밥을 먹고 잠을 자고... 평범히 식탁에 온 식구가 둘러앉아 밥을 먹길 원한다. 그러다 어떤 날은 밥을 하기도 싫고 청소도 하기 싫어진다. 자유를 찾고 싶어 진다. 평범함이 좋았다 싫었다 한다. 엄마가 된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나는 엄마라서 아프지도 말아야 한다고 한다. 실제로 아프지도 않는다고 한다.


몸이 쓰러질 듯 아파야 아픈 것이 아니다. 평범한 오늘을 지키기 위해 아프지 않으려 애쓰는 거다.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을지언정 그래도 평범한 오늘을 지켜야 한다. 혼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라는 한 사람을 지켜내기 위해서도 규칙적이고 반복적인 것들이 행해져야 하지만, 여러 식구를 살려내기 위해서는 더 큰 반복의 힘이 필요하다. 가족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오늘도 어김없이 내가 만든 음식으로 온 가족이 둘러앉아 밥을 먹는 것을 생각하면서 힘을 낸다. 재료가 떨어진 냉장고를 보며 가족들을 위해 마트로 시장으로 향한다.


더 맛있는 음식을 만들기 위해서 동네 시장으로 가기도 한다. 따끈따끈한 수제 두부와 순두부를 사며 맛있게 먹을 아이들과 남편을 생각한다. 때론 갈등으로 힘이 들기도 하지만 그런 날에도 나는 어김없이 밥을 하고 청소를 한다. 10년 20년 30년... 그 이상 가족의 일상을 지켜낸 어머니들을 생각하니, '반복'이 '정성'이었다는 깨달음이 왔다. 아무 생각 없이 그날그날을 보내는 것 같지만, 그 많은 날들을 지켜내었던 것은 정성의 힘이었다. 하루하루를 정성으로 쌓아 올린 것이다. 그러니 오늘, 잠시만 멈춰 반복이 주는 힘을 느껴보면 어떨까. 분명 평범한 오늘이 감사함으로 다가올 것이다.



https://brunch.co.kr/@purelovekj/548




셋째 아이가 돌이 지났을 무렵에 쓴 글이다. 브런치에 쓴 글 중 가장 많은 조회수를 기록했다. 현실적인 문제로 고민을 하다 이 글을 보니 고민이 싹 사라진다. 물가는 치솟고 아이들은 커가니 외벌이인 우리 가정 경제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쿠팡 물류센터 알바니, 배민 배달 알바니 이것저것 찾아봤지만 아이들을 키우면서 하기엔 무리였다. 이때만 해도 적금을 들어 목돈을 만들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 마저도 힘이들어 적금은 사치가 되었다. 안사먹고 아껴보려 했지만 아이가 셋인 지금 돈을 아낄 수가 없다. 하고싶은 것도 먹고 싶은 것도 많은 세 딸이다. 조금씩 한계치가 들어나니 돈을 못버는 나의 상황이 답답하기만 하다. 아이들을 키우고 먹이고 살림하고 청소하고 이런 주부의 역할이 더이상 가치롭게 느껴지지 않는다. 많은 배움과 경험을 주고 싶지만 그 마저도 돈이라 생각하니 갑갑하다. 오죽하면 자녀에게 기대를 거는 마음이 생길까.


초록창에 주부가 돈 버는 법을 검색하면, 온통 광고성 글만이 나를 반긴다. 글쓰기로 한달에 얼마번다, 즉시 신청하여 상담이 가능하다... 세상에 대한 진실의 눈을 갖고 있지 않으면 현혹될 법한 글이 넘쳐난다. 블로그로 돈벌기, 누군가는 하고 있겠지. 도보로 음식을 배달하는 사람도 있겠지... 생각은 하지만 용기가 안난다. 초등학교 저학년인 두 딸과 말문이 트이기 시작한 어린이집에 다니는 셋쨰 딸을 돌보며 일을 하기란 역시 쉽지 않다. 이런 저런 고민에 한숨을 내쉬며 집으로 돌아오니, 내가 할 수 있는 건 글쓰기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의 입장에선 돈이 되지 않는 일, 생산적이지 않은 일이다. 책을 쓰고 있지만 출판사 투고에서부터 계약, 출간까지 그 과정이 어떻게 이루어질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책을 쓰겠다 다짐했을 땐 희망과 가능성이 가득찼는데 하나도 정해지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은 나를 불안하게, 무기력하게 한다. 그럼에도 나는 글쓰기를 놓치 못했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시 희망을 붙잡고 나를 믿고 앞으로 나아가 보려 한다. 실력이 있든 없든 상관없이 그저 글쓰기가 좋아 글쓰기를 붙잡고 버텨내었던 지난 날을 돌아본다. 일상 속 글쓰기가 무엇인지 다시 깨닫는다. 누군가에게 가 닿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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