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늘고 길게 사는 법
직장에 다니는 친구들 중에서 임원으로 승진을 하지 못하고 부장으로 오래 근무하는 이들이 있다.
그중에 한 친구가 자신은 임원으로 승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더 좋다고 이야기를 했다. 임원으로 승진해 봤자 연봉과 혜택, 그리고 지위는 올라가지만, 계약직으로 신분이 바뀌어 언제든지 회사에서 쫓겨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 친구가 자조를 하는 것인지, 정말 부장 자리를 선호하는지 모르겠으나, 나는 그럴 수도 있구나라고 생각을 했다.
나는 그 친구에게 “가늘고 길게 가는 것이 좋구나”라고 맞장구를 쳐주었다.
근래에 자주 듣는 단어가 ‘생존’이다.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소상공인들은 코로나로 인하여 ‘생존’이 위협받고 있고 한다.
큰 대기업도 ‘생존’을 들먹이며 매년 살아남기 위해 이러이러한 것을 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래서 등장하는 또 다른 단어가 ‘지속 가능성’이다. 생존과 거의 같은 말이다. 100년 후, 아니 그보다 더 오랜 기간에도 살아남을 기업을 만든다는 슬로건을 주창한다.
‘롱테일’은 ‘롱테일 법칙’에서 쓰이는 단어다. 롱테일 법칙은 오프라인이 지배하던 유통채널에서 잘 팔리지 않아 상점 창고와 진열대의 한정된 공간에서 밀려난 상품들이 온라인의 활성화로 공간의 제약이 없어지면서 온라인 상점에 모두 진열될 수 있게 되고, 소수 큰 매출의 상품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다수 작은 매출로 총매출에서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게 되는 현상이다.
롱테일 법칙은 소소한 매출의 다수가 모여서 전체적으로 무시할 수 없는(평균 30% 정도로 평가된다) 규모가 되는 것인데, 이것을 ‘생존’과 연결시켜도 의미가 잘 전달이 된다.
‘법칙’을 뺀 ‘롱테일’로 여러 가지 상황에 적용할 수 있다.
가늘고 긴 꼬리처럼 임원 승진의 퀀텀 점프(Quantum Jump)하는 영광은 없지만, 정년까지 일할 수 있는 축복(?)이 있다. 매출 중가의 폭은 작고, 때로는 적자도 보면서 지지부진하지만, 도산하지 않고 계속 유지되는 기업은 ‘지속 가능성’이 높은 기업이다.
다른 나라도 유사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작은 회사들이 훨씬 많고(2019년 기준 99.9%가 중소기업, 그중에 85%가 5인 이하 종업원의 소상공인) 대기업과 비교하여 전체의 절반 매출 비중을 차지한다.
그중에서 이 ‘롱테일’에 적용되는 기업들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다.
내 주위에도 30년이 넘게 회사를 이끌어가고 있는 사장들이 많다.
그들에게 공통점이 있다, 최소 한 번 이상 도산의 위기를 맞았다는 것이다.
외상으로 물건을 주고받은 어음이 부도가 나서 집에서도 쫓겨나서 작은 원룸에서 4 식구가 살았던 이야기, 주요 거래처를 모두 잃어 직원이 모두 퇴사하고 혼자 사투를 벌인 이야기, 여유자금으로 부동산에 손댔다가 큰 손해를 보고 와신상담한 이야기, 잘 모르는 신규 사업에 투자했다가 가지고 있는 집들을 모두 팔아도 부채를 청산하지 못한 이야기 등을 그 사장들은 잊어버릴만하면 들려준다.
그들은 그 위기를 잘 이겨냈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행운이 찾아오고 기업은 다시 성장했다.
그들에게는 맷집이 생겼다. 펀치를 맞아도 휘청거리고 다운되기도 하지만, KO 되지 않는 저력이 붙었다.
도마뱀의 꼬리는 잘려도 다시 자란다고 한다.
꼬리가 '다중 스케일 계층 구조(Multi-scale class structure)'로 이루어져 있어서 위급한 상황에 처하면 스스로 꼬리를 자르고 도망친다. 그래서 도마뱀을 잡으려면 꼬리가 아닌 몸통을 잡아야 한다.
기업도 위기에 처하면 이런 도마뱀과 같은 임기응변이 필요하다. 필요 없는 부분을 잘라내고 핵심만 가지고 재빠르게 움직이는 기민 함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평소에 조직을 도마뱀과 같은 '다중 스케일'로 만들 필요가 있다.
고객, 제품, 공급망, 브랜드, 지적재산권 등, 여러 핵심 자원들이 있다. 그중에 가장 핵심적인 자원이라면 '고객'을 들 수 있겠다. 다른 핵심 자원들도 마찬가지지만, 고객도 다중 스케일로 만들어야 한다. 하나나 소수의 고객에게 모든 매출이 발생되어서는 안 된다. 한 고객을 잃더라도, 혹은 스스로 고객을 잘라야 되는 경우에도 생존에 위협이 되지 않는 체질이 되어야 한다.
고객을 '다중화'하려면 현재 시장에서 제2, 제3의 고객을 발굴하는 것보다 다른 시장에 진출하는 것이 더 좋아 보인다. 하지만, 작은 기업은 여러 시장에 진출하기보다는 그 기업에 적합한 시장을 선정하고 집중하는 전략이 좋다. 그러므로, 현재의 시장에서 제품이나 마케팅의 전환으로 신규 고객을 발굴하는 것을 우선 고려해보라고 추천하겠다.
신제품 개발도 새로운 제품을 만드는 것이 좋겠지만, 약간의 기능이나 디자인의 변형을 통해서, 혹은 포장을 고급화해서도 신제품으로 탄생된다.
공급망은 원재료 공급선을 다변화하여 원가를 떨어뜨리고 공급망의 위기를 대비하는 등의 노력이다.
브랜드도 현재 시장을 더 세분화해서 틈새시장을 개발하여 새로운 브랜드를 론칭하는 방법이 있다.
언젠가 '반드시' 닥칠 위기 상황에서 꼬리가 잘리는 충격을 받더라도 견디고 나갈 수 있는 힘을 항상 갖추려면 평소에 대비를 해야 한다.
'긴 꼬리'는 스타트업이나 작은 회사들이 머물러 있는 곳이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 경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들 중에 삼성, 현대의 명맥을 잇는 기업들도 나오겠지만, 현재 그 기업들은 오랫동안 업을 유지하면서 가족을 부양하고 종업원들의 삶의 터전이 되며 소비의 주체가 되어서 국가 경제에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롱테일 기업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