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이 되면 생각나는 날이 있다.
일제 점령기로부터 해방된 후 이념의 대립으로 남과 북이 갈라진 뒤, 북한은 전쟁 준비를 꾸준히 해왔고 러시아로부터 군사교육을 지원받았다.
그 시기 해방 후 남한에 주둔하던 미군이 남한의 군사력으로 충분히 북한의 공격을 감당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주한 미군을 철수했다. 게다가 공산주의에 대한 방어선을 남북한 국경인 3.8선이 아닌 한반도를 한참 벗어난 남쪽에 그었다.
북한의 김일성은 이것을 절호의 기회로 여겼다. 하지만, 절대적 우방이자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인 러시아의 허락이 필요했다.
미국의 개입을 우려하여 그전에는 김일성의 요청을 거절하던 러시아는 상황이 바뀌자 절호의 기회라고 보고 허가를 한다.
전쟁이 발발하고 낙동강까지 밀리며 적화 통일이 이루어지기 일보 직전까지 간 전황은 인천상륙작전으로 전환되고 서울을 탈환하게 된다.
전쟁 직전과 초기 숱한 판단 착오와 전략적 실수를 했지만, 국군의 희생과 강경한 방어는 미군을 비롯한 유엔군이 오기도 전에 끝날 전쟁을 연장시키고 빼앗긴 영토를 되찾는 계기가 되었다.
남한의 영토를 수복했지만, 3.8선을 돌파하느냐는 다른 문제였다.
중국은 유엔군이 3.8선을 넘으면 그냥 있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반도가 통일이 되면 북한이라는 완충 장치가 사라진다는 우려와 함께 유사시 남의 나라 문제에 개입하려는 빌미를 만들려고 한 것이다.
수도와 가까이 있는 서유럽을 더 우선시하던 러시아보다 중국이 발등의 불로 생각한 것이다.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대만으로 피신한 장제스와 여전히 싸우고 있던 중국이 개입하지 않고 그 역량도 미미할 것으로 판단한 워싱턴의 결정으로 한국군과 유엔군은 3.8선을 돌파했고 평양을 넘어섰다.
여기에서 또 한 번의 결정이 필요했다. 계속 북진해서 북한 땅을 전부 통일시키느냐 아니면 현재 위치에서 새로운 국경선을 세우냐는 문제였다.
만일 그때 더 이상 북진하지 않고 그 위치에 방어선을 세웠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어쩌면 현재의 휴전선이 평양 위쪽에 세워졌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진작에 북한 국경에 대규모 군대를 이동시켰던 중국이 일찍 개입했을지도 모른다.
워싱턴은 계속 중국의 개입이 없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한국군과 유엔군은 북진을 계속해서 중국과의 국경인 압록강을 바라보고 있었다.
중국은 장제스의 위협과 확전을 우려한 러시아의 미온적 태도 등의 문제로 개입을 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개입하는 것이 이익이라는 판단을 한다. 중국의 속셈은 개입을 통해 나중에 북한 정권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것이었다. 북한이라는 완충 장치가 필요했고 자신들의 속국과 같이 만들기를 원했던 것이다.
전쟁 발발 전 50년 뒤를 거슬러 가보면, 또 하나의 유사한 아픔이 전개된 것을 볼 수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러시아, 중국 등의 힘겨루기와 일제의 국권 찬탈.
조선은 일본이 명치유신으로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이고 부국강병에 집중한 시기에 유학을 중심 사상으로 쇄국정책을 하여 부국의 기회를 놓쳤다. 명분과 체면을 중시하는 유학의 영향으로 상공을 낮게 대했으며 표면적으로 사상이 중심이 되어 정치권의 분열이 반복되었다.
한마디로 국가와 국민을 위한 정치가 아닌 자신들의 이념과 사익, 체면이 우선시 되었다.
약 20년간 일본은 점점 강해져 갔고 조선은 상대적으로 점점 약해지고 있었고 조선은 그 차이를 깨닫고 있지 못했으며 임진왜란을 상기하지 못한 듯했다.
그들은 권력욕과 자기 방어에 급급하느라 세상이 어떻게 변하고 있고 국가와 국민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고 있었다. 아니, 알았다고 해도 그보다 자신들의 안위가 우선이었다.
일본이 막부 시대를 종식하고 명치유신을 단행한 데는 몇몇 개혁자들의 희생과 계몽, 그리고 민중의 호응이 있었다. 하지만, 조선의 개혁은 잠깐 성공하는 듯했지만, 조선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던 중국과 일본, 러시아 열강들의 얽히고설킨 이해관계는 조선의 자주적인 개혁을 막았다. 오랫동안 유학의 정신에 깊은 영향을 받던 민중들도 서양의 문물 수용과 개혁에의 호응에 역부족이었다.
역사를 통해 배우지 못하는 국가는 아픔의 역사를 되풀이한다.
전쟁 반발 50년을 훌쩍 넘긴 오늘, 두 번의 아픔을 통해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첫째는 결국, 국가들은 최종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위한다는 것이다.
그 이익이 과하면 가만히 있는 남의 나라까지 빼앗으려고 한다.
둘째는 힘이 약하면 언제든지 먹힐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강력한 저지력이 있었더라면, 그 아픔들은 없었을 것이다.
셋째는 스스로 강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외교력을 발휘해서 남의 나라에 의지한다고 해도 결국 그것은 남의 나라다. 그들 나라의 이익이 심각히 침해된다고 판단하면 언제라도 약속을 파기할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넷째는 체면과 위신 문화를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쓸데없는 체면과 위신을 말하는 것이다.
나이나 지위가 높다고 다른 사람들을 하대하는 문화. 배는 곯아도 겉치레는 소홀히 하지 못하는 문화. 역량이 안 되는 데도 자신하면서 스스로 장님이 되는 사람들. 외양을 중시하고 남의 눈치를 보는 문화.
다섯째는 내부 분열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나 기업이 외부 환경에 의해 무너지기도 하지만, 내부 분열로 인해 스스로 무너지는 경우도 많다.
조선에서 노론파, 소론파 등 당파 싸움이 국론을 분열시키고 국가의 발전을 막았다.
큰 기업에서도 CEO의 우유부단함과 참모들의 자리다툼은 전 직원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업무 효율성을 저하시켜서 발전을 막는다.
갈등은 막을 수 없고 대응에 따라 좋은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민주주의에서 주장은 존중받아야 되지만, 상대방의 주장도 존중해주어야 한다. 상대방의 주장이 더 나으면 그것을 전격적으로 수용해야 한다. 상대방이 잘못을 하면 지적을 하고 동시에 잘하면 칭찬도 해주어야 한다.
국가를 이끄는 정치권의 건전한 토론과 발전적인 갈등은 도움이 되지만, 무조건적인 주장, 큰 그림을 못 보는 시야, 닫힌 마음은 국가를 분열시키고 후퇴시킨다.
자신의 이념과 주장은 오직 그것이 국가와 국민을 위한 것일 때 타당성과 정당성을 갖는다. 그것이 국가와 국민보다 자신과 당의 이익이 우선일 때 국가와 국민이 선택하고 녹을 받는 사람, 단체로서 자격을 잃는다.
국민인 우리도 필요할 때, 국가와 이웃을 위해 자신의 이익을 희생할 줄도 알아야 한다.
국가가 바로 서야 나도 바로 설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