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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mnjoy Dec 09. 2023

한 해를 마무리하는 가장 좋은 방법

내년의 내가 기억하길 바라며


한 해에서 마지막 달 12월이 주는 무게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계속해서 다이어리에 하루하루를 기록해 온 나에겐 그 달은 과거의 내가 기록했던 것들을 돌아보는 시간이 된다.




매일 다이어리를 쓰는 내게 다이어리에 뭔가를 적는다는 건 그 당시에는 그 시간이, 그 일이 내 인생에서 아니면 적어도 그 하루 안에선 가장 중요한 사건이나 일이었다는 점이다. 내 생각 중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들이었고 내 시간을 제일 많이 써야 하는 일들이었다.




다이어리에 빼곡히 적힌 그날의 해야 할 일과 약속, 특별한 계획이 지금에서야 돌이켜보니 얼마나 부질없는 것들인지 깊게 느껴진다.




일로서 만나야 하는 그 사람과의 시간이 우리 엄마와의 데이트 약속보다 중요했을까?

하소연하는 친구의 전화가 내 감정을 살펴보기 위한 일기를 쓰는 시간보다 귀중했을까?

투두리스트에 적힌 것들로 인해 미뤄진 내 강아지와의 햇볕 아래 산책보다 급했을까?





일 년 동안 그 당시 현재의 내가 중요하다고 여기며 기록했던 모든 것들이 지금 이 순간 미래의 나에겐 이면지에 잠깐 남긴 메모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어딘가에 소속되지 않은 채 혼자 일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쓴 올 해의 다이어리는 이전에 회사를 다니며 썼던 다이어리보단 내용면에서 상태가 훨씬 나았다.(그렇다고 해서 의미로 가득 찬 한 해를 보낸 건 아니었다)




하지만 회사를 다니며 쓴 다이어리에는 어느 팀과의 미팅 시간, 보고서의 마감일, 출장 가는 날, 회식 시간과 장소, 상사가 좋아하는 커피와 식당, 성과 달성을 위한 프로젝트 계획 등 지금 보면 기억도 잘 나지 않고 내 삶에 그렇게 중요하지도 않은 것들만 빼곡히 적혀있었다. 무엇보다 거기에는 ‘나’가 없었다.





이 다이어리를 읽으며 내 몇 년의 시간을 연봉과 통으로 맞바꿨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시간이 월급과 등가교환되어 회사에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냈는지, 상사에게 얼마나 잘 보였는지 등에 의해 그다음 해 연봉이 오를지 말지 결정된다. 한 해의 모든 성과가 결정되는 시기에 나는 승진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며 연봉이 인상되었지만 나는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연봉이 오르고 여러 사람에게 축하를 받았지만 정작 나는 비참했다. 이런 기분을 조금이나마 달래기 위해 나는 올해의 다이어리에서 아직까지 기억에 생생하고 의미가 있었던 일들을 찾기 시작했다.





매일 아침 새벽에 일어나 외국어 공부를 한 일.

부모님께 종종 사랑의 문자를 남긴 일.

연차를 내서 햇볕을 가장 좋아하는 나의 강아지를 데리고 온종일 산책을 한 날.

베란다에 쌓인 안 쓰는 물건들을 깔끔히 치운 날.

친구들과 깊은 대화를 나눈 시간.

연말에 연탄봉사 활동을 한 시간.





회사원이기 전에 인간으로서의 내가 가치 있다고 여긴 것들이 어떻게 보면 보잘것없다고 느낄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목록들을 펼쳐놓고 보니 그 당시에 빨간색으로 별표까지 쳐놓으며 강조한 것은 회사와 관련된 일정이었지만 다이어리 귀퉁이에 휘갈겨 놓은 것들이 내 실질적인 삶과 연결된 일들이었다. 지금 보니 얼마나 이것들이 얼마나 값진 일이었는지 그땐 알지 못했다.





이렇게 그 해에 내게 의미가 있던 일들을 나열해놓고 보니 내가 진짜 삶이라고 여기는 것은 1년 중 20일 정도였다. 1년이 365일인데 거기서 손꼽히게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되는 날들이 고작 20일이라니 허탈했다(물론 어떤 분들에겐 그 20일조차 누리지 못하는 분들도 있을 것 같아 죄송스럽기도 하다). 얼마나 내가 다채롭지 못하게 살았는지, 내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고 살았는지 다이어리를 통해 절실히 느끼게 됐다.

어떻게 살아왔는지 되돌아보는 시간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어느새 백발이 된 내가 “뭘 했다고 벌써 백발이 되었지?”라고 한탄하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요새는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알고리즘이 다시금 띄워준 스티브 잡스의 스탠퍼드 연설을 보게 되었다. 스티브 잡스가 매일 아침 했던 말. 그 말이 내년을 어떻게 계획해야 하나 궁금했던 내게 한 가지 방안을 내놓았다.


내일 죽는다면
오늘 하기로 예정된
그 일을 
할 것인가?



No라는 대답이 3일 연속 나오게 된다면 이젠 스스로도 알아차릴 때가 된 것이다. 내 앞에 있는 그 일이 내게 중요한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저 말에 No라고 해도 당장 큰 변화를 주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도 내 삶에 우선순위를 조금씩 바꾸는 일은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냥 공장 컨베이어 벨트가 돌아가듯 무의식적으로 삶을 살기보단 내가 선택하고 내가 좋아서 결정한 것들을 의식적으로 하는 삶을 살고 싶다. 




내년의 내가 기억하길 바라며 나에게 이렇게 기록을 남기고 싶다.

무언가에 쫓기듯 빠르게 달려온 하루하루는 언젠가 너에게 후회를 안겨줄 것이다. 하지만 의식하며 천천히 걸어온 아니 심지어 쉬어간 하루하루는 네 기억에 오래 저장되어 추억을 안겨 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부터 시간을 거꾸로 세기로 했다.

내년이면 몇 살이 된다가 아니라 몇 살이 남는다로 생각할 것이고, 1월이 되면 첫 해가 시작되었다가 아니라 앞으로 다시 12개월이라는 시간이 주어졌구나로 시간에 대한 프레임을 바꾸고자 한다. 

다시 주어진 12개월을 당신은 어떤 순간으로 채우고 싶은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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