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울조 Oct 14. 2024

다시 찾아올 우울에게

이제야 조증이 갔는데요?

2개월 간 지속된 조증이 이제 어느 정도 사그라들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들뜨는 마음이 남아 있고 목소리도 크고 말도 빠르게 한다. 머릿속에선 이전보단 느리지만 생각의 톱니바퀴가 끊임없이 굴러가고 있다.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어지고 무한한 긍정의 마인드가 아직 탑재된 상태이다.



조울병 또는 조울증을 겪으면서 한 가지 알게 된 점은 조증일 때 나는 울증일 때 나를 기억하지 못하고 울증일 때 나는 조증일 때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겠지만 정말이다.



'조증의 나'가 잊어버린 것들


조증에서 발광을 하는 나는 푹 가라앉을 울증일 때 나를 생각하지 못하고 일을 벌여놓는다.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아 헬스장도 1년 치 등록하고 학원도 다니고 새로운 모임을 만들어 지속적으로 참여한다. 이렇게 미련한 조증의 나는 몇 개월 후 찾아올지도 모르는 울증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그저 즐겁게 살아간다(마냥 즐겁진 않다. 감정을 깊게 느끼게 되기 때문에 슬플 땐 한없이 슬퍼지고 기쁠 땐 한없이 기뻐진다는 말로 알아줬으면 좋겠다.) 그렇게 하다가 조증이 조금 강하게 오거나 길어지는 경우 사업을 한다고 이곳저곳 알아보러 다니고 덜컥 계약을 한다. 마음 저 구석에 있는 울증의 나는 조증의 나를 보며 한탄할 것이다.



울증이 오면 조증 때 벌려놓은 모든 것들은 올스탑 된다. 나는 사업을 할 기력이 사라지고 계약을 해놓은 것은 위약금을 물더라도 취소할 수밖에 없어진다. 그뿐만 아니라 새로운 사람들과 만남은커녕 잠적을 하고 학원은 수강료를 날리게 되고 집 바로 앞 헬스장은 나가지도 못하게 된다. 그래서 의사 선생님께 항상 듣는 말이 있다.




'울증의 나'가 잊어버린 것들


반대로 울증의 나가 조증의 나를 기억하지 못해서 생기는 문제들도 있다. 울증의 나는 우울하다기보다 기력이 없고 몸이 무거워지고 다 귀찮은 상태가 된다. 생각은 느리게 흘러가고 그마저도 다 부정적인 생각으로 귀결된다. 나 같은 경우는 불안도 굉장히 높아서 울증 시기에 공황과 같은 증상이 오기도 한다. 무엇 하나를 하려고 해도 나 따위가 이런 걸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 내가 이제까지 이뤄왔던 크고 작은 성공 경험들은 모두 잊은 채 세상에서 가장 밑바닥에 있는 사람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무엇이든 두려워지고 세상은 이렇게 빠르게 변하는데 나만 진흙탕 속에서 점점 가라앉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조증일 때 그렇게 날아다니고 티 없이 긍정적이던 내 모습을 울증을 기억해내지 못한다. 그래서 더더욱 위험하다. 깜깜한 장벽이 내 앞을 탁 가로막고 있어 나는 더 이상 나아질 수 없다고 강력하게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때 자살에 대한 생각을 강렬하게 하게 된다(자살이라는 단어를 언급하는 것에 대해 조심스러운 면이 없지 않다. 하지만 우리가 자살을 생각하는 것 자체가 우울증이나 조울증 등 정신병으로 인해 나타나는 증상의 일환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더욱 정확하게 이 부분을 서술하고 싶었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조증이 오면 돈과 사람을 조심하자!


나의 경우 조증이 오면 뭐든지 외부로 에너지를 발산하고 싶어 진다. 누군가를 만나고 싶고 무언갈 하고 싶고. 그러다 보니 짜증이 많이 생긴다. 조증에 짜증이 많이 생긴다는 좀 이상할 수도 있다. 이 부분에 대해 나의 의사 선생님과 상담을 했을 때 조증의 에너지를 발산하려고 하고 싶은 게 많이 생겼는데 그걸 방해하는 것들이 여전히 남아 있으니 짜증이 나게 되고 조증은 감정을 깊고 크게 느끼기 때문에 그 짜증의 폭도 커지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결국 조증이 왔을 때 최우선이 되는 해결책은 돈을 쓰지 않고 사람을 만나지 않는 것이다.

돈을 쓰지 않는 것은 카드를 가족한테 맡기거나 학원이나 헬스장 등록을 할 때 어떤 프로모션을 주든 딱 한 달만 등록을 하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등록을 하면 더 비싼 건 맞지만 조증의 에너지가 과연 몇 달이나 갈지 생각했을 때 한 달만 등록하는 것이 훨씬 합리적인 소비가 될 것이다.


또한, 사람을 만나는 것은 새로운 사람을 만났을 때 또는 친구를 만났을 때 약속을 잡아놓고 갑자기 울증이 와서 약속을 취소해야 하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인간관계의 신뢰가 깨질 수 있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나서는 내가 집에 왔을 때 후회할 일이 생길 수 있어서이다(말실수를 하거나 등).



울증이 오면 날 잘 다독여주자


울증이 오면 세상의 속도가 변화한다. 나는 따라잡을 수도 없을 것처럼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사람들은 모두 경주마처럼 달려간다. 그런데 나는 아무리 발버둥 쳐도 제자리걸음인 것 같은 느낌이다. 이때 내가 명심해야 하는 것은 빠르게 변하는 세상과 사람들이 사실을 내 옆에 같이 있다는 것이고 나의 울증 시기가 길어질 수 있지만 반드시 이 기간은 지나간다는 것이다. 울증의 시기를 벗어나면 좋은 시기가 온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계속 알려줘야 한다.


설령 정말 뒤처지고 있다고 해도 스스로 괜찮다고 이야기해 줘야 하고 뒤쳐진다고 하더라도 내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항상 주지 시켜야 한다. 지금, 여기에 내가 살아있음에 언제나 감사해야 한다.


울증의 시기에도 사람을 만나는 것을 피해야 하는데 다만 새로운 사람은 나에게 부담을 주기 때문에 피하는 것이 좋고 오래 보아 익숙하고 친숙한 사람은 만나는 것이 좋다. 그들과 같이 산책을 하고 햇볕이 잘 드는 카페에 가서 앉아 있는다면 울증 시기에 최고의 하루를 보낸 것이다.


게다가, 울증 시기에는 내가 하는 일이 의미 없다고 생각되고 이거 해서 뭐해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는 게 정상이다. 울증은 모든 것을 의미 없게 만들고 부정적 사고로 내 머리를 지배하려 드는 아이니까.



불안이 높아서 생긴 것


불안이 높아지게 되면 주변 사람들에게 나의 의미와 존재에 대해 확인받고 싶어 한다. 그들이 나를 잊어버렸을까 봐 아니면 내가 가치 없는 존재일까 봐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 알고 있어야 한다. 굳이 그들에게 내 존재의 의미를 확인받을 필요도 없고 다들 티를 내진 않더라도 나를 생각하고 있고 묵묵히 기다려주고 있는 것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 아무도 사라지지 않고 제자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고 내가 조급하고 불안한 것은 울증의 시기라서 당연한 것이다.


그러니 진짜 가벼운 운동이나 산택을 하면서 햇살을 느껴보자. 나 스스로 나의 존재를 인정해 주고 다독여 주자.





끝으로

이제 조증이 올지 울증이 올지 아무도 모르는 상태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루하루 진짜 나의 상태가 어떤지 관찰하는 것뿐이다. 그날 아침 일어나서 나의 상태를 점검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하고 할 수 없는 건 현멍하게 포기하는 것이 진정 나를 위한 길이 될 것이다. 


조증에는 오바하지 말고 나를 좀 조절하며 다스려야 하고 울증 때는 모든 지 이 정도면 훌륭하다는 마음으로 나를 칭찬해야 한다. 


나를 돌보고 살펴보는 과정 속에서 나는 내 한계 지점을 알아야 한다. 그 선을 넘을 때 내게 어떤 일이 벌어질 지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이 일련의 과정들이 언제는 지리멸렬한 싸움이 되고 언제는 부드럽게 지나가는 일상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조울과 싸우는 아니 조울과 함께하는 내게 그리고 우리에겐 이 과정이 삶을 통제할 유일한 키가 될 것이라는 걸 굳게 믿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ADHD 조울증 공황장애 직업 후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