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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중'이 뭔지 몰랐다

by 지음

발자크그라시안의 나를 아는 지혜의 인상 깊은 문장이다.


지위는 사랑보다도 능력을 인정받아야만 지킬 수 있다. 조직을 이끌고 있거나 간부의 지위에 있는 사람은 애정의 정도로 평가받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능력에 의해 평가받는 것이다. 애정은 친숙함을 부르고 그것이 심해지면 오히려 그 인물의 가치를 떨어뜨리기 쉽다. 다른 사람들의 존경을 받으려면 너무 많은 애정을 받지 않도록 또한 지나치게 공포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애정은 분열적인 성질 때문에 사소한 일로 인해 순식간에 증오로 변하기도 한다. 지위는 따스한 마음이나 다정한 태도보다 자질과 능력을 인정받음으로써 잘 지킬 수 있는 것이다. p46


서로의 끌림을 넘어선 존중...

존중이라는 단어가 너무 낯설어졌다. 매번 "존중해 줘", "알겠어. 존중해 줄게" 말을 주고받았지만 오늘 이 말이 왜 이렇게 낯설게 느껴질까?


존중의 의미를 오늘에서야 깨달았다.

모든 단어들이 마찬가지겠지만 ‘존중’은 말뿐만 아니라 행동에서 정성을 다해야 하는 것이었다.


정성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았다.

정성은 온갖 힘을 다하려는 참되고 성실한 마음이다.

그럼 참되다는 뜻은 또 뭘까? 진실하고 올바르다.

성실한의 뜻은? 정성스럽고 참됨


정성과 참됨이 도돌이표다.

정성과 참됨을 다하는 것이 존중이다.

존중이라는 뜻도, 사용법도 나는 모르고 있었다.


새벽 모임이 끝나고 아이들 아침을 챙겼다. 계속 머릿속은 낯설어진 ‘존중’이 들어차있었다.

아이들 얼굴을 쳐다보았다. 나는 과연 아이들을 존중하면서 키웠나?

'아이들에게 깊은 사랑을 주되, 한없이 다 퍼주고 싶은 것은 참아야 한다고, 멈추는 것도 사랑이다.'

아니었다. 내 성질대로 키웠던 것 같다.


왜 아이들에게 그렇게 모질게 대했을까?

왜 항상 불만에 차 있었을까?

왜 항상 감사함이 없을까?

왜 태도가 불손한 것일까?


나를 되돌아보면서 '나는 이런 사람이었구나'가 그냥 쓰나미처럼 지나간다.

요즘 나를 위해서 배려하는 가족들을 생각하면서 나는 그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공부하는 동안 조용히 해주고, 스스로 각자 일을 하고, 주말에 애들 데리고 나들이 나가 주는 남편, 집안일도 나눠서 해주는 가족들을 너무 당연하다는 생각을 했던 내가 너무... 했다.


뭘 나눠주는 그녀에게 고맙다는 말도 안 했다.

매번 줄 수 없는 나는 부담스러웠다고 변명을 했다.

그냥 마음깊이 "고마워!"라고 말하면 되는 거였는데, 내가 그녀를 존중을 하지 못했다.


엄마도 존중해주지 못했다.

엄마가 얼마나 잘못했다고 그렇게 불손한 태도였나?


정성이 항상 빠진 채 살았다.

나를 어디 내놓기도 부끄럽다.


가슴만 벌렁거린다.

손발도 떨린다.

이제껏 잘못 살았구나

잘못 살았구나...


지담작가의 말이 떠오른다.

"저는 항상 정성을 다해요~"

매일 정말 정성을 다하는 모습을 본다.

그 모습을 보면서도 나는 정성을 다하지 못했다.


나에게 오늘에서야 기준이 생겼다.


당연한 것은 없다.

모든 일에 정성을 들인다.

경청부터 하고 생각하고 말한다.

누구도 함부로 대할 사람은 없다.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확실하게 표현한다.

앞으로는 내가 나를 잘 따른다.

가족들에게 정성을 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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