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남들의 기준을 무시하고 스스로 나의 죄를 용서할 수도 있다. 나에게는 나만의 엄격한 주장과 완전한 세계가 있다.
그러한 나의 세계 안에 있는 수많은 의무는 실제로는 의무가 아니다. 그러나 의무라는 그 빚을 모두 갚는다면 나는 세상의 제약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이오?”라고 묻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단 하루라도 직접 그 규율을 지켜본 다음에 이야기하시오”라고 말하겠다.(주)
내가 힘들었던 것은 내 기준은 하늘을 찌를 것 같은데 행동은 안 되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나를 보면 잘하고 있다고 기준을 낮추라고 말을 했다.
근데 그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히려 속이 더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왜 그런지 잘 몰랐다.
돌이켜보니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계속 내 기준이 바로 잡으라 말해서였다.
상대가 참 잘 봤다. 그때의 나는 그것을 이룰 수 없는 아주 바닥이었던 것이다.
그 사실이 괴로워 하소연하는 것이었는데 그것이 너무 높은 내가 성취할 수 없는 기준이라 말하니 화가 났다.
"왜 그래해봐 할 수 있어"라는 말을 듣지 못하고 기준을 낮추라는 말을 들어야 함은
나의 평소 행동들이 그것밖에 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나도 내 행동의 패턴을 알고 있었다.
힘들면 포기하고 스스로 포기했음에도 실의에 빠져 있는 내 모습.
항상 실행이 안 되는 나에게 스스로 불만을 가졌고 그 불만이 가족들에게 전가되는 경우도 많았다. 천국과 지옥은 나의 마음에 달렸다고 알고 있었지만 깊은 뜻을 헤아리지 못했다.
감정 기복이 많으니 하소연과 위로가 필요했다.
그렇게 하루하루 살았던 것 같다.
영원히 내 기준에 도달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만회할 기회가 찾아왔다.
사람마다 기준이 다 다르고 기준에 도달하는 방법이 각자 있는 것 같다.
나는 새벽에 일찍 일어나는 것이다.
새벽에 한 가지 일찍 일어나는 한 가지.
그것만으로 내가 도달할 수 없었던 모든 고민들이 해결이 되었다.
그전보다 기준점이 더 높아지는 것이 보인다.
그만큼 나의 성장도 있다고 말해 주는 것 같다.
아마 누군가가 봤을 때 아직 짧은 식견이라고 할 수도 있다.
아직 나도 그것밖에 안 되는 것이 참 안타깝다.
하지만 이게 나이다.
'그냥 나를 받아들이기로 했다'라는 말도 오만같이 느껴진다.
꽤 괜찮은 구석이 많은 나를 스스로 뭐라고 받아들이고 말고 한단 말이냐고.
그냥 지금 그대로 나를 보기로 했다.
못나면 못난 대로 잘나면 잘난 대로.
앞으로 성장하고 발전하는 나. 거기에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