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저녁은 삼겹살 파티이다.
두 아들과 신랑은 소고기를 좋아하지만 나랑 딸아이는 돼지고기를 좋아한다.
하지만 고기 굽는 사람은 나니 내가 좋아하는 돼지고기를 굽는 날이 더 많다.
이 꼬숩은 맛을 왜 모르는 것이여~
입짧은 막내!! 고기를 먹을 때는 딱 하나! 매실짱아찌.
씻은 묵은지도, 파채와 양파도, 깻잎이랑 마늘짱아찌도 있는데 오로지 매실짱아찌 하나만 고집한다. '괜찮아괜찮아' 라고 나를 달래지만 편식하는 아들을 보는 내내 내 걱정은 화로 드러난다. “매실 있어?”라고 묻는 아들에게 “없어! 오늘은 묵은지랑 먹어야 해”라고 버럭하다가도 매실이 다 떨어질까봐 또 이내 불안하다. 불안과 걱정은 여기가 끝이 아니다.
편식하는 아이가 어떻게 자랄까? 키도 작고 마르고 생기까지 없으면 어쩌나 싶어 내가 싫어하는 최악의 남자어른의 유형을 떠올리다 보면 걱정과 불안은 이미 가지 않아야 할 곳까지 가버린 것을 순간 깨닫는다.
세네카는, 욕망이 채워지지 않을 경우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를 이성적으로 헤아려보면 우리는 그 예상된 문제들이 그것이 야기한 근심보다는 훨씬 덜 심각하다는 사실을 거의 예외없이 깨달을수 있다(주1)고 했다.
키 작으면 마른 몸매이면 불행해~!!
내가 살아봤냐고 안 살아봤는데 어떻게 아냐고~!!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에 뭔 걱정이 그렇게 많아~!!
그만해~!! 자기가 먹기 싫다는데 어떡해~!!
내가 애가 닳아봤자지. 스스로가 왜 먹어야 하는지 모르면 못 먹는거야 ~!!
막내의 인생이야. 권유만 할수 있어!! 그만 스탑~!!
항상 기쁨보다는 걱정으로 아이의 모습을 상상했던 과거의 내가 조금 딱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다.
‘아니야~ 더 멋진 모습으로 성장할거야. 걱정하면 걱정하는 일만 생긴다는 것 알지!!’하고는 피식 웃는다.
아이들은 엄마가 이상하다며 자기네들끼리 쑥떡거리며 어리둥절해 한다. 금방의 생각을 아이들과 나누면서 많이 먹으라고 한다. 막내아들이 슬며시 젓가락을 묵은지에 갖다 댄다.
하하하~ 윽박지르는 것보다 훨씬 효과가 있네.
당장 해야 할 걱정과 해결이 안되는 걱정들을 어느샌가 구분을 하고 있다.
걱정 인형을 끼고 자고, 하나의 걱정에 온갖 따라오는 걱정들을 하느라 정작 해야 할 일을 못했던 나였다.
그대들이 벗어 버리려는 것이 근심이라면, 그 근심은 그대들에게 떠맡겨진 것이 아니라 그대들 스스로 선택한 것입니다.
그대들이 떨쳐 버리려는 것이 공포라면, 그 공포은 두려워하는 자의 손아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대들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진실로 만물이 그대들 안에 반쯤 뒤엉켜 있으니 그대들이 욕망하는 것과 두려워하는 것, 혐오하는 것, 아끼는 것, 추구하는 것, 달아나려 하는 것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대들 안에서 움직이는 이것들은 마치 한 쌍의 빛과 그림자처럼 서로 달라붙어 꿈틀거립니다.
그러니 그림자가 사라져 더 이상 보이지 않을 때, 남은 빛이 또 다른 빛의 그림자가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그대들의 자유도 족쇄에서 벗어날 때, 더 큰 자유의 족쇄가 될 것입니다.(주2)
항상 빛과 그림자는 쌍두마차라는 것.
내 안에 모든 것이 있다는 것.
마음 먹기에 달렸다는 것.
주1> 알랭드 보통 저, 철학의 위안
주2> 칼릴 지브란 저, 예언자
[연재날]
월 새벽 5시 발행 [음식으로 풀어보는 인문학]
화 새벽 5시 발행 [엄마는 테스형이고 싶다!!]
수 새벽 5시 발행 [이상관계]
목 새벽 5시 발행 [엄마는 테스형이고 싶다!!]
금 새벽 5시 발행 [음식으로 풀어보는 인문학]
토 새벽 5시 발행 [엄마는 테스형이고 싶다!!]
일 새벽 5시 발행 [이상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