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세 아이의 엄마다.
막내는 10살.
이 녀석들을 먹이고 입히는 게 내 직업이다.
전.업.주.부.
전업주부라는 단어가 다소 터부시되는게 나는 못마땅하다.
아이 셋을 제대로 키워내기 위해 내 일을 뒤로 하고 위대한 한생명 한생명을 제대로 된 인간으로 키워내는 몫을 나는 의무로 떠안았다. 그러니 혹여 이 글을 보는 누구라도 '전업주부'라는 말에 묘하게 담겨 있는 경단녀, 능력없는 아줌마와 같은 뉘앙스는 풍기지 말 것.
하나의 생명을 제대로 키워내는 위대한 일이 내 직업이니까.
오늘도 그래서 10살짜리 막내를 태우고 재래시장을 들렀다. 이왕이면 노지에서 키운 야채들을 사러, 이왕이면 단골 정육점 사장님의 매상을 올려주러, 그러면서도 단 10분밖에 허락하지 않는 주차비 1천원을 아끼려 발도 손도 입도 분주하다.
주차를 시키고 잰걸음으로 단골 고기집에 "사장님! 찌개거리 많이~~" 를 외친다. 다시 내 발은 바쁘다.
달리고 달려서 가는 길목에 달래파는 할머니에게 “할머니 달래 2천원어치만 파시면 안돼요?”하며 애교부리며 현금을 투척하고!
가만. 달래를 된장에 넣어야 하나, 달래간장을 해야 하나? 뇌가 순간 엄청난 속도로 움직인다. 된장찌개는 어제 먹었으니까 오늘은 달래간장이랑 곱창김? 아하! 일거리도 줄어들고 아이들은 더 잘 먹고! 내친김에 곱창김도 한꾸러미 사고는 또 달려 고기집 사장님께서 맘껏 담아 주신 고기를 들고 주차장으로 헉헉대며 도착했지만 10분이 지났다!
1천원을 탕진해서 분통이 터지지만 어쩔 수 없다.
단골이란 건 1천원을 내더라도 의리로 뭉친 사이니까.
어쩌면 쓸데없는 인연에 골머리썩느니 단골가게 이웃들과 서로 먹거리를 공유하는 것이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항상 기분이 좋다. 의리를 지킨 내 정신도 기특하고 또 찾아줘서 고맙다며 양을 듬뿍 챙겨주신 마음도 고맙고 믿고 살 수 있기에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좋은 물건 고르러 다니지 않아서 이 또한 편안하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전업주부다.
전업.
전문직이란 말이다.
재래시장은 나의 데이터가 널려 있는 곳이다.
그러니 이 곳에서 나의 뇌는 가장 활발하게 움직인다.
아이들의 영양, 나의 일거리의 양, 비축해둘 식재료의 양까지 멀티로 뇌가 움직이지 않으면 재래시장은 한없이 고된 곳이지만 나의 뇌는 냉장고속까지 훤히 꿰뚫고 비워지고 채워지는 것을 정확하게 측량할 수 있기에 재래시장은 나의 카타르시스마저 느끼게 해주는 곳이다.
주부가 나의 전문적인 업으로 이미 프로가 되어 있는 지금 나는 나의 뇌를 더 풀가동시키며 또 하나의 전업으로 글쓰기를 택했다. 처음 아이들이 태어났을 때 이 녀석들에게 뭘 어떻게 해먹일지 몰라 헤매었던 시절처럼 글쓰기는 그 때의 나와 같지만 이 역시 프로가 될 것이다.
모든 것은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듯이 하나를 전업으로 성공시켜내었다면 다른 무언가도 그만큼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늘 멀티로 작동하는 나의 뇌는 글쓰기에서도 자기 능력을 있는 힘껏 발휘할 것이다.
주부로서의 데이터수집장소가 재래시장이듯
글쓰기 전업을 도전하면서 데이터는 책으로 수집한다.
장소와 공간만 다르지 모든 ‘일’은 ‘일’의 원리가 있다.
하고 또 하고
헤매고 또 헤매다
해내고 또 해낸다.
그러면 된다.
김치찌개 맛있게 끓이는 레시피를 찾아 헤맸듯이 아직은 글 하나를 쓰기 위해 나는 헤매지만 지금 뚝딱 김치찌개를 맛나게 끓이듯이 글 하나도 뚝딱 감칠나게 써내는 날이 곧 올 것이라 나는 믿는다.
모든 시도, 오류, 실수, 착각, 정열, 너의 사랑과 희망이 너의 목표 속에 남김없이 꽃을 피우도록 성휘하는 것은내 손에 달려 있다.(주1) 사실 전업주부도하기 싫어도, 피곤해도, 아파도, 도망가고 싶어도 매일 했기에 이만큼의 성과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작가의 길도 아마 매일 무념무상으로 하다보면 쌓일것이고, 쌓다보면 성과가 생길 것이고, 또 다른 멋진 계획들의 기회가 돌아올 것이라고 믿는다.나의 눈이 나의본질과 나의 인식의 어두운 샘밑바닥을 볼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강해져 있다면, 아마 그 거울 속에서 미래 문화의 먼 별자리도 보일 것이다.(주1)
그리고 고기를 찾으러 왔는데 하하하하
고기를 많이 달라는 내말에 사장님이 2근 넘게 썰어놨다.
김치찌개가 아니고 고기 찌개가 되었다. 김치는 살짝살짝 보이는 양념같은 존재…
김치찌개를 끓여도 고기만 싹 건져먹고 김치는 남는 우리집에 최적화네.
그래서 오히려 고기를 많이 넣고 끓여서 '너가 많이 먹니 내가 많이 먹니' 안해서 좋긴하더라.
시장에서 장보면서 느낀점을 잠깐 써봤다.
나는 아직은 전업주부이다.
전업주부의 '전업'을 이제 '작가'에 붙이고 싶다.
전.업.작.가.
지금 작가로 넘어가는 다리를 건너는 중이다.
지음 작가~ 성공~!!!
주1> 프리드리히 니체 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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