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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사유의 '함정'

16세기 종교개혁, 절대왕정, 엘리자베스 1세

by Rebecca
16세기의 거대한 변화
종교 개혁과 절대 왕정


16세기는 유럽 역사에서 가장 큰 변혁의 시대 중 하나였습니다. 종교와 정치가 뒤흔들렸고, 새로운 사상과 국가 체제가 등장했죠. 오늘은 종교 개혁과 절대 왕정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시작해보겠습니다.




종교 개혁
마르틴 루터와 ‘우연한 혁명’

1517년, 독일의 수도사 마르틴 루터는 가톨릭 교회의 부패에 맞서 95개조 반박문을 발표했습니다. 당시 교회는 ‘면죄부’를 팔아 돈을 벌고 있었고, 루터는 이에 반발했죠. 그는 "구원은 돈이 아니라 오직 신앙을 통해 가능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사건은 결국 가톨릭과 개신교(프로테스탄트)의 분열로 이어졌고, 유럽 전역에 전쟁과 갈등을 불러왔습니다.



출판 혁명이 종교 개혁을 도왔다?

사실 루터의 95개조 반박문은 처음에는 학문적 토론을 위한 글이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의 일이 벌어졌습니다.

당시 유럽에서는 구텐베르크의 인쇄술(1440년대 발명)이 퍼지기 시작한 시기였고, 누군가 루터의 글을 몰래 인쇄해 배포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루터의 사상은 순식간에 유럽 전역으로 퍼지며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만약 인쇄술이 없었다면, 루터의 종교 개혁은 이렇게 빠르게 확산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오늘날의 SNS처럼, 당시 인쇄술은 ‘정보 혁명’의 시작이었던 셈이죠.




절대 왕정
프랑스 루이 14세와 ‘가짜 궁전’

16~18세기 유럽에서는 국왕이 강력한 권력을 장악한 ‘절대 왕정’ 체제가 확립되었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프랑스의 루이 14세(1638~1715)입니다.

그는 "나는 국가다"라는 말로 유명하며, 궁전, 군대, 예술까지 모든 것을 자신의 권력을 위해 활용했죠. 그리고 지금도 세계적인 관광지인 베르사유 궁전을 건설했습니다.




베르사유는 왕의 함정이었다?

루이 14세가 베르사유 궁전을 지은 이유는 단순히 호화로운 삶을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당시 프랑스 귀족들은 왕권에 도전하는 강력한 세력이었는데, 루이 14세는 그들을 궁전에 불러 호화로운 파티와 사교 행사에 빠지게 만들었습니다. 귀족들은 정치보다 무도회와 연극에 몰두했고, 자연스럽게 왕에게 충성을 맹세하게 되었죠.


결국, 베르사유는 단순한 궁전이 아니라 귀족들을 정치에서 배제하고, 왕의 권력을 강화하는 ‘정치적 함정’이었던 것입니다.




영국 엘리자베스 1세와 해적의 황금시대

한편, 영국에서는 엘리자베스 1세(1533~1603)가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하며 영국을 해양 강국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녀의 시대는 ‘엘리자베스 시대’라고 불리며, 셰익스피어와 같은 위대한 문화가 꽃피운 시기이기도 했죠.




여왕이 해적을 키웠다?

엘리자베스 1세는 스페인과 경쟁하며 해군력을 키우기 위해 ‘해적’을 적극 활용했습니다. 그녀는 프랜시스 드레이크 같은 해적들에게 스페인 배를 약탈하도록 지원했으며, 이 해적들은 영국 왕실을 위해 엄청난 재산을 가져왔습니다.

특히 프랜시스 드레이크는 스페인 선박을 습격해 막대한 금과 은을 빼앗아 영국에 바쳤고, 엘리자베스 1세는 그를 기사(‘Sir’)로 임명하며 정식 해군으로 인정했습니다.

이 덕분에 영국은 해양 강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고, 이후 대영제국의 시대를 여는 기초가 마련되었습니다.







16세기는 단순한 변화가 아니라, 현대 사회의 기초를 만든 거대한 변혁의 시기였습니다.


종교 개혁은 가톨릭과 개신교의 분리, 신앙의 자유 확립시켰습니다.

절대 왕정시기에는 왕권 강화, 중앙집권화의 기초 형성되었지요.

해양 강국의 등장으로 불리우는 이 시기에 영국과 프랑스의 해양 패권 경쟁, 글로벌 무역의 시작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시기의 사건들은 결국 오늘날의 민주주의, 경제 체제, 국제 질서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당시의 변화를 이해하면, 우리가 사는 세계를 더 깊이 있게 바라볼 수 있습니다.


다음에도 더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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