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뉴욕
빅키와 지구 한 바퀴
1년 넘게 준비한 나의 계획, 빅키와 지구 한 바퀴. 드디어 출발이다.
나는 항상 꿈꿔왔다. 돈 많은 멋진 남자가 나를 어느 멋진 곳으로 데려가 주기를 바랬다. 럭셔리한 호텔, 고급 음식과 와인, 아름다운 바다에서 배를 타고 샴페인을 터트리며 웃고 있는 내 모습, 시원한 과일주스, 예쁜 옷과 가방, 멋진 구두. 이 모든 것을 누리며 행복해하는 내 모습을 상상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와는 거리가 멀었다. 매일 바쁘게 일하지 않으면 텅 빈 지갑이 두려운 40대의 나에게는, 더 이상 그런 상상을 할 시간조차 없다. 꿈에서 깨어난 나는 백마 탄 왕자가 아닌, 사랑스러운 여중생과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그녀의 이름은 빅키. 곧 고등학생이 될 내 외동딸. 존재만으로도 빛나는, 내 생애 최고의 작품이다.
고등학생이 되면 긴 여행을 떠나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에, 여러 나라를 둘러보는 계획을 세웠다. 이번 여행에는 해외에 거주하는 몇몇 친구들을 꼭 만나겠다는 것과, 우리가 함께 보았던 미국 드라마 ‘길모어 걸즈’의 주인공 로리가 다니던 예일대학교에 가보고 싶다는 꿈도 포함되었다. 그리고 빅키의 취미 프랑스어 공부 그래서 '파리'.
짐은 미리 주문한 백팩과 기내용 캐리어 한 개씩. 여자가 한 달간 계절도 겨울에 떠나는 여행으로는 정말 공간이 부족했지만, 우리는 최소한의 짐으로 최대한 가볍게 떠나기로 약속했다.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 준비하는 동안 마음이 힘들기도 하고 설레기도 했다.
이 여행은 우리에게 많은 도전을 안겨줄 것 같았다.
여행일정 & 숙소
*출발 : 2023년 12월 10일
*도착 : 2024년 1월 9일 도착
- 뉴욕 : 12.11-12.14 BELVEDERE HOTEL
- 캐나다 : 12.14 ~ 12.26 첼시 (친구집)
- 네덜란드 : 12.27 - 29
머큐어 호텔 암스테르담 슬로터다이크 스테이션 (Mercure Hotel Amsterdam Sloterdijk Station)
- 벨기에 (브리헤) : 12.29-30 하위저 디 마너(Huyze Die Maene)
12.30-12.31 부티크 호텔 프라이하위스(Boutique Hotel 't Fraeyhuis)
12.31-1.1 't Hartje van Brugge
- 벨기에 (브뤼셀) : 1.1-1.2 이비스 브뤼셀 시티 센터(ibis Brussels City Centre)
- 프랑스 파리 : 1.2-1.8 아카시아 에토일 호텔(Acacias Etoile)
나는 N잡을 하며 중학생 딸을 키우는 워킹맘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학생 딸과의 여행준비는 쉽지 않았다. 특히 본업인 교육업과 동시에 다른 일들을 병행하는 상황에서 해외출장까지 다녀야 했기 때문에, 시차 적응과 피로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밤마다 시간을 쪼개 여행준비를 했다. 여행 경비를 벌기 위해 쉬지 않고 일했고, 모든 예약과 지불을 출발 전에 완료했다. 아이아빠는 계속된 사업 실패로 여행비를 지원할 상황이 아니었다. 심지어 5년 전 빅키와 함께 여행 가려고 모아둔 돈까지 빌려가서 갚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기대도 하지 않았다. 모든 준비는 나 스스로 해내야만 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드디어 우리는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라운지 이용이 가능한 좌석을 예매해 출발 전 라운지에서 신라면을 먹으며 여행의 시작을 실감했다. 비행기에서도 기내식을 챙겨 먹으며 영화를 보고 잠도 자는 동안 뉴욕 존 F. 케네디 공항에 도착했다. 뉴욕시간 오전 10시. 딱 좋은 시간이다.
처음 오는 뉴욕은 낯설었다. 시차 때문인지 정신이 몽롱했고, 지하철을 타려다 살짝 겁이 났다. 빅키에게 “호텔은 어떻게 가지?”라고 물었더니, 빅키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때 붉은 조끼를 입은 공항 직원이 내 눈에 들어왔다. 그중 덩치가 큰 흑인 남자에게 호텔 셔틀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는 친절하게 안내를 해주었다. 덕분에 안전하게 호텔 셔틀을 타고 도착할 수 있었다.
{ 뉴욕은 공항에서 맨해튼 중심지의 호텔을 돌며 픽업과 드랍 서비스를 하는 호텔셔틀이 있다. 공항 내 안내 전화를 이용하면 무료로 통화를 할 수 있다. 모르겠으면 빨간 조끼를 입은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된다. 가끔 불친절한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은 무시하고 친절한 사람에게 다시 질문하기를 추천한다. }
* 뉴욕에서의 추억
타임스퀘어 & 근처 일본라멘식당
빅버스 & 자유의 여신상 허드슨크루즈
디즈니샵 방문
친구와의 저녁 식사 (스테이크)
크리스마스 장식
바나나 푸딩 맛보기
뉴욕 뉴욕
뉴욕에 있는 동안 "뉴욕~ 뉴욕~" 이 노래를 과장을 더해서 1000번도 더 들었던 것 같다. 뉴욕 어디를 가도 이 노래가 흘러나왔다. 걸어가는 게 더 빠를 것 같은 느린 빅버스에서도 하루종일 이 노래가 흘러나왔다.
빅버스 영업이 직업인 자넷이라는 흑인여자의 추천을 받아 타임스퀘어 맛집 일본 라멘으로 저녁을 먹고 빅버스에 올랐다. 내심 둘 다 시차 때문에 그냥 쉬고 싶었다. 그러나 뉴욕에서 단 2일만 머무를 예정이기 때문에 무엇이든 하고 싶었다. 잠에 들지 않으려고 기를 써보지만 쏟아지는 잠을 이겨낼 자신이 없었다. 빅버스에서 앉아서 우리는 추위에 덜덜 떨며 쏟아지는 잠을 이겨내지 못하고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깨면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숙소로 향했다. 호텔로 와서 곯아떨어졌다. 그리고 눈을 뜨니 뉴욕의 새벽이었다.
{ 만약 시차를 이기고 싶다면 비행기에서 숙면을 하길 바란다. 미국에서는 천연 수면유도제 멜라토닌이 합법이기 때문에 쉽게 구입할 수 있다. 멜라토닌을 구입해서 현지에서 시차를 조절하는 방법도 좋다. }
뉴욕 2일 차
뉴욕 중심지에서 새벽 4시도 전에 눈이 떠졌다. 아침이 되자 구글검색과 길 찾기 기능으로 브런치 맛집을 방문했다.(오믈렛 야채선택을 따로 해야 한다.) 뉴욕에서 음식점 대부분은 예약을 안 하면 먹을 수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바'에서 먹으면 된다. 역시 요즘 해외여행은 휴대폰과 신용카드만 있으면 가능하다.
어제 미리 사둔 빅버스 티켓으로 낮에는 빅버스에 탑승했고, 허드슨 크루즈를 타고 자유의 여신상을 보러 갔다. 다행히 날씨가 좋았다. 바람이 차갑게 우리 몸을 강타했지만 기분 좋은 설렘으로 바람쯤은 참을만했다. 허드슨 강에서 보는 뉴욕은 또 색다른 기분이 되어 내 눈과 마음에 담겼다. 드디어 자유의 여신상이 저 멀리 보인다. 재빠르게 사진을 잘 찍을 수 있는 곳으로 자리를 잡았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얼마나 클까? 가까이에서 보는 여신상은 어떤 모습일까? 뉴욕에 와서 자유의 여신상을 직접 보는 것이 좋은 추억이 될 것 같았고 후회 없는 선택이었다. 배를 타고 이동한 자유의 여신상 앞에서, 배에 탄 모든 사람들이 동시에 수백 장의 사진을 찍었다. 눈으로 직접 보는 웅장한 자유의 여신상은 내 마음을 설레게 한다. 뉴욕이구나.
크루즈 탑승이 끝나고 배에서 내리는데, 직원들이 사진 한 장을 보여주며 30달러라고 했다. 배에 탈 때 "여기 서세요" 하고 사진을 찍었고, 나는 그 사진이 단지 탑승확인용도라고 생각을 했다. 그래서 우리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먼 산을 바라보는 듯한 표정을 짓고 사진을 찍었다. 우리는 서로의 사진을 보며 동시에 큰 소리로 웃었다. 고민 끝에 거금 30불을 내고 사진을 샀다. 나는 사지 않는 것을 추천하지만 볼수록 추억이 돋으며 웃음이 나는 사진이다. 정말 잘 산 것 같다.
우리는 사진을 보며 크게 웃으며 바쁘게 저녁식사자리로 움직였다.
20여 년 전 서울대학교에서 만난 그녀와 나
20대 초반 나는 경제연구소에서 일을 했고, 그녀는 교수지원실에서 일했다. 그녀는 항상 영어공부를 했고, 그녀의 영향으로 나도 영어공부를 시작했다. 보통교수지원실에 방문하면, 그녀는 나에게 비싼 녹차나 홍차를 대접해 주었다. 우리는 함께 차를 마시며 영어와 미국이야기를 나눴다. 그녀의 관심은 항상 미국이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미국으로 떠났다. 그리고 몇 년 전 미국인 남편을 만나 결혼하고 지금 뉴저지에 살고 있다.
나는 그녀를 보면서 생각했다. '무언가를 진심으로 바라고 행동으로 옮긴 사람들은 대부분 원하는 길을 갔구나.'. 그녀는 매일 영어를 공부했으며, 독학으로 유창하게 외국인들과 대화가 가능했다. 그리고 용감하게 미국으로 떠난 그녀는 20년째 미국의 어느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우리는 함께 영어공부를 하고, 함께 산책을 하며 서로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지금, 나는 20년 만에 뉴욕에서 다시 그녀와 만났다.
미국 맨해튼의 한 스테이크하우스
그녀는 갑작스러운 나의 방문 때문에 휴가를 내지 못해서 미안하다며 뉴욕의 비싼 스테이크를 대접해 주었다. 공짜 밥을 좋아하지 않는 나였지만, 그녀의 호탕함에 기분좋게 밥을 먹었다. 오래전부터 미국에 가면 스테이크를 먹고 싶었는데 작은 꿈을 이뤘다. 20대로 돌아간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뉴욕의 스테이크는 정말 맛있었다.
밥을 먹은 후 그녀는 우리를 맨해튼 이곳저곳으로 마구 끌고 다녔다. 현지인과 다니는 골목골목은 정말 알찬 워킹투어였다. 타임스퀘어의 유명 바나나푸팅 맛집에서 바나나푸딩도 사 먹고, 크리스마스장식들이며 맨해튼 유명한 볼거리가 있는 곳은 모두 데리고 다녀줬다. 뉴욕의 2일째 밤은 그렇게 알차게 보내졌다.
나와 빅키는 내일 새벽에 예일대학교와 하버드를 보기 위한 보스턴으로 이동해야하기에 우리는 아쉬운 이별을 해야 했다. 20년 만에 보는 그녀와의 짧은 만남은 서로에게 긴 여운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