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Y ON (1) 키키, 쿤디판다, XG

1월 4주차 - 귀에 남은 트랙들

by 이예진

매일 신보를 챙겨 듣다 보면 어느새 음악을 ‘듣는 일’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필연적으로 피로가 쌓이고, 모든 음악을 같은 감흥으로 느끼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장벽을 깨고 “아, 이 곡 좋다”고 느끼게 만드는 트랙들이 있다. 이번 주에 귀에 남았던 곡들이 바로 그런 경우다. 앞으로는 이 곡들을 모아 디깅 일지처럼 기록해 보려 한다. 제목은 ‘STAY ON’. 굳이 재생하지 않아도 머릿속에 남아 있거나, ‘좋다’라는 감각이 유지되는 노래들이다. 지극히 주관적인 기록이지만, 매일 새로운 음악을 찾아 듣는 사람의 일지라는 점만은 분명하다.


키키(KiiiKiii) - ‘404 (New era)’

키키 (KiiiKiii) - 404 (New era) MV. (c) Youtube, Starship Ent.

첫 번째로는 키키(KiiiKiii)의 ‘404 (New era)’다. 듣자마자 예전 노래가 하나 떠올랐다. 마돈나의 ‘Vogue’였다. 긴장감이 서서히 조성된 뒤, 그 위로 엣지 있고 시크하면서도 발랄한 마돈나의 목소리가 펼쳐지는 곡. 손끝의 각을 세워 얼굴 주변을 훑는 보깅 댄스가 자연스럽게 그려지는 하우스 트랙이다. ‘404’ 역시 비슷한 결로 설계되어 있다. 키키는 스타십 소속 아티스트지만, 어쩐지 예전 SM 계열의 하우스 트랙들이 스쳐 지나가 크레딧을 찾아보게 됐다. 에프엑스(fx)의 ‘4walls’ 같은 트랙들이 떠오르는 이유에는 런던노이즈(LDN Noise)의 편곡이 주효했다. 비트 사이로 빛이 스며드는 듯한 감각이 익숙하다. 포인트만 정확히 짚는 전개와 깔끔한 전환은 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촌스럽지 않다. 어떤 음악은 점과 선으로 구성되어 있다면, 또 어떤 음악은 ‘면’으로 구성돼 패턴과 촉감을 모두 펼쳐 보인다. '404'는 레이저처럼 직선으로 필요한 부분만 정확히 쏘아 급소를 건드린다. 이런 미니멀리즘이야말로 시대를 타지 않는 미학의 한 방식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선공개 곡이자 첫 번째 트랙인 ‘Delulu’에도 이런 보깅의 전제가 깔려 있다. 편곡의 결은 다르지만, 기본적인 스타일은 같다. 하우스에는 오랜 시간 축적된 공식이 있다. 빌드업과 드롭이 명확하고, 그 순간이 안겨주는 쾌감이 확실한 편이다. 감정선을 플랫하게 유지하면서도 기분을 한 단계 들어 올리는 힘이 있다. 이 지점은 리스너가 K팝에 기대하는 감각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4walls’, ‘View’, ‘에너제틱’, ‘Violeta’. 하우스와의 접목은 수많은 명곡을 만들어왔다. ‘Delulu’ 역시 그 계보 위에 있다. 또렷한 윤곽만 남기는 방식. 그래서 이 곡은 듣는 순간 몸이 먼저 반응한다.


‘404’의 작사 크레딧에는 오메가 사피엔의 이름이 적혀 있다. 어쩐지 반항을 긍정하며 집단으로 따라 부르게 만드는 힘이 느껴진다. 제목부터가 오류 메시지다. 요즘에는 이 ‘오류 난 상태’에 너무 조급해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미완성의 상태를 견디는 일 자체가 앞으로 다가올 시간을 버텨내기 위한 기초체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곡의 가사처럼 백지를 내도 백 점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받아들이는 것. 억지로 활력을 올리려 애쓰는 것보다 그편이 오히려 나을 때도 있다. 좌표 밖에 있어도 괜찮다.

키키 (KiiiKiii) - 404 (New era) MV. (c) Youtube, Starship Ent.

쿤디판다, 스티치(STXXCH)

- ‘PARTYMONSTER’

쿤디판다와 스티치(STXXCH)의 <HOWANMAMA> 콘셉트 사진 (c) bvcklash

쿤디판다와 스티치(STXXCH)의 <HOWANMAMA>를 듣다 발견한 트랙은 ‘PARTYMONSTER’다. 정박에 정면으로 들어오는 전자음의 보폭과, 전환부에서의 완급 조절이 인상적이다. 요즘 레이지나 트랩 계열의 트랙들에서 종종 느끼게 되는 답답함과 달리, 이 곡은 리듬과 사운드의 싱크가 맞아 집중하게 만든다. 곡의 길이는 짧다. 오래 붙잡지 않는다. 무언가에 오래 매여 있기엔 일상이 너무 빠르게 흘러간다. ‘짧으니까 들어주세요’라는 태연의 앨범 소개글 한 줄이 문득 떠오른다. 변조된 보컬, 저음역에 지속적으로 깔리는 드론 베이스의 서늘함, 살짝 비틀린 곡의 분위기가 메탈 특유의 차가운 질감을 남긴다.

쿤디판다, 스티치(STXXCH) - PARTYMONSTER (c) Youtube

‘싸가지가없어지는병에자꾸걸려’라는 가사처럼, 조금은 병들어 있어야 버틸 수 있는 세상이다. 이 곡은 그런 감정의 배설에 가깝다. 앞서 들은 ‘404’의 에러 상태, 그리고 ‘정신 나간 소리’를 멈추지 않는 태도가 여기서 다시 오버랩된다. 정상으로 돌아가려 애쓰기보다, 어긋난 채로 버티는 감각. 이번에 귀에 남은 곡들에는 이상하리만큼 그런 정서 상태가 공통으로 흐르고 있었다.


XG - HYPNOTIZE

이어지는 하우스 트랙은 XG의 새 앨범 <더 코어 - 핵>에 수록된 ‘HYPNOTIZE’다. 트로피컬한 질감 위에 비트 사이로 보컬이 추임새처럼 얹히는 구성은 솔직히 말하면 전형적인 샘플에 가깝다. 그럼에도 이 곡이 귀에 남은 이유는 분명하다. 여전히 어떤 해방감과 시원함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지금의 나는 그런 감각에 꽤 목말라 있나보다.

XG – HYPNOTIZE MV. (c) Youtube

오전 내내 과거 음악들을 듣고 난 뒤에 만나는 ‘HYPNOTIZE’는 내게 즉각적인 모드 전환을 끌어낸다. 생각보다 많은 리스너들이 K팝에서 기대하는 것도 결국 이런 종류의 감각일지 모른다. 복잡한 해석보다, 고속도로 위에서 크게 틀어놓고 싶은 에너지. 이 시장이 그렇게 커져 온 이유 역시 그 지점에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번 주의 STAY ON은 이렇게 계속 켜두게 되는 음악들로 모아졌다. 선별했다기보다는, 골라졌다는 표현이 맞겠다.


이예진의 STAY ON | projectjinj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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