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장소, 환대가 사라진 후에

벨로주 홍대 폐업이 남긴 질문들에 대하여

by 이예진
벨로주 공연장 내부. 관객을 기다리던 객석. © 벨로주 SNS

사람, 장소, 환대에 대해 생각한다. 2015년 김현경 인류학자가 발행한 이 책은 인간이 태어나 사회 안에서 기능하기 위한 기본 조건으로 이 세 가지를 제시한다. 사람은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자신이 속할 장소가 있고, 그 장소에 모인 집단으로부터 환대받을 때 비로소 사회적 의미의 ‘사람’이 된다.


벨로주의 폐업 소식을 듣고 많은 이들이 아쉬움을 표한다. ‘추억이 담긴 곳’, ‘인디 아티스트들이 설 무대’, ‘젠트리피케이션’ 같은 말들이 곧바로 뒤따른다. 동시에 어쩐지 기시감이 든다. 2020년 DGBD(구 드럭)을 비롯해, 홍대 상권을 중심으로 개인이 운영하던 공연장이 문을 닫는 일은 이미 여러 차례 반복됐다. 한 개인이 월 몇백의 임대료를 감당하며 공간을 유지했고, 그 과정에서 대중음악 씬에 의미 있는 궤적을 남겼다. 그리고 그 끝에 남는 것은 소모된 개인이다.


그렇다면 이 소모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한국 대중음악 씬에서 이 공연장이 갖는 의미를 알고 있으면서도, 각종 리스크를 이유로 문화 지원의 바깥에 두어온 기업들인가. ‘홍대’라는 문화예술 집결지를 소비하며 그 운영의 부담은 오롯이 개인에게 맡겨온 사회인가. 아니면, 이 모든 구조를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결국 상황을 애도로만 받아들이는 우리 자신인가.


벨로주가 폐업하면 ‘사람’ 즉, 아티스트는 설 수 있는 공연장 하나를 잃는다. 동시에 ‘벨로주’라는 이름이 지녔던 정체성은 공중에 흩어진다. 어떤 음악이어도 좋으니 그저 ‘좋아하는 사람에게 음악 테이프를 선물하는 마음으로’ 공간을 운영해 왔다는 2017년도 사장님의 인터뷰가 말해주듯, 그 안에서 오랜 시간 이어져 온 ‘환대’ 역시 함께 사라진다.


벨로주의 가치는 장르와 규모를 가리지 않고 새로운 음악을 무대에 올려온 기획 방식에 있다. 소규모 라이브 음악들이 실제 공연으로 이어질 수 있는 구조를 오랜 시간 유지해 왔다. 인디, 재즈, 포크가 한 공간에서 공존할 수 있었던 이 공연장은 대관장이라기보다 뮤지션 인큐베이터에 가까웠다.


해외는 이 문제를 어떻게 다루고 있을까? 롤링 스톤스와 섹스 피스톨즈가 거쳐 간 라이브 음악 클럽 100 Club은 2020년 임대료와 재산세 급등으로 폐업 위기에 놓였다. 이에 영국 사회는 ‘역사적, 문화적 가치가 큰 소규모 라이브 하우스를 어떻게 구조적으로 보호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웨스트민스터 시의회는 이 공간을 ‘지역 음악 공연장’으로 특례 지정하고, 세제 개편을 통해 사업장 재산세를 전액 감면했다. 그 결과 클럽은 연간 수만 파운드 규모의 세금 부담을 덜고 운영을 이어갈 수 있는 조건을 확보했다.


영국에서는 이 공간을 사적 사업장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지역 문화 인프라로 볼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먼저 이뤄졌다. 웨스트민스터 지자체는 후자를 택했고, 그 순간부터 이 문제는 경영 실패가 아니라 공공이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전환됐다. 반면 한국에는 이 합의가 없다. 공연장은 끝까지 ‘개인 사업’으로 남고, 그 문화적 의미는 사후적으로만 인정된다.


더 중요한 점은, 영국의 100 Club이 예외적인 사례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미 라이브 음악 공간을 보호하기 위한 정책과 제도가 마련돼 있었고, 공공이 구조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통로가 존재했다. 한 장소의 존속은 개인의 희생이 아니라 사회가 분담해야 할 비용으로 다뤄졌기 때문이다.


반면 미국의 CBGB는 폐업했다. 우리나라의 학전 역시 다르지 않다. 역사적으로 ‘장소’가 특정 문화의 발원지가 되어왔다는 사실은 잘 알려졌지만, 정작 그 장소를 지탱해 온 이들이 고충을 말하면 사회는 이렇게 되묻는다. ‘당신이 좋아서 한 일이 아니냐’라고. 문화에 기대어 유지되어 온 사회가 결정적인 순간에는 개인에게 잔인한 책임을 묻고 있다.


운영자가 말하는 언어와 대중의 반응에 담긴 언어에는 온도차가 존재한다. 전자는 실패와 지속 가능성, 책임과 불확실성을, 후자는 꿈과 첫 무대, 성장과 추억을 말한다. 같은 공간을 두고 오간 이 언어의 간극만큼, 운영자의 고충과 감정 노동이 구조적으로 보이지 않게 쌓여왔음을 알 수 있다. 공연장의 폐업을 ‘추억의 상실’로만 받아들이는 태도는 어쩌면 그 공간을 지탱해 온 개인의 소모를 낭만화하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한국의 K팝 산업에는 막대한 자본이 집중돼 있다. 한편, 그 자본이 기대어 서있는 기초 생태계, 다시 말해 인디 공연장과 소규모 라이브 공간에 대한 사회적 환대는 점점 말라가고 있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한국의 K팝과 팬 문화 산업은 같은 ‘사람 사업’을 이어가는 자영업자들을 시스템의 보호 밖에 남겨두고 있다. 우리는 이 반복되는 소모적인 구조 속에서 한 장의 티켓을 구매하고 공연을 보며 추억을 쌓아왔다. 추억은 버티는 개인에 의지하며 형성돼 왔다.


‘스트레스가 재미를 압박하는 단계’에 진입했다는 운영자의 말은 2017년 스트리트 H 인터뷰에 이미 나왔다. 그 전에 세 번의 이사가 있었고, 그로부터 9년의 세월 동안 팬데믹을 포함한 여러 위기를 통과해 왔다. 그 긴 시간의 끝에 운영자는 ‘늘 그만두고 싶었다’라고 토로했다. 구조를 지탱해 온 개인에게 남겨진 씁쓸한 결과다. 벨로주는 끝났지만, 진심을 제도로 전환하지 못한 채 문화를 소비하는 관성은 현재진행형이다. 다음 세대의 박정용은 어떤 시간을 감내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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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헤이팝>(2026.03.09) 기고 글의 브런치 버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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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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