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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롱혼 Dec 23. 2023

마스크를 숨긴 다람쥐

찬바람 조심하세요 독감이 또 유행한단다

갑자기 날씨가 추워졌다. 시베리아에서 찬바람이 내려왔다고 한다. 막고 있던 제트기류가 힘이 빠져 뚫렸다나 하며 지구 온난화를 탓한다. 침범한 것이다. 침범한 놈은 다른 세상구경에 좋을 것이고 당한 자는 새로운 경험에 당황한다. 


칭칭 동여매고 나선 길은 조심조심 내딛는 발걸음에 얼어붙은 땅을 긴장시키고 있다. 시베리아 바람 아니랄까 봐 연실 얼굴을 때려대는 찬바람의 꼬리에 코끝에 방울이 맺혔다. 독감도 유행한다는데 마스크를 써야겠다. 혹시나 코트 속에 손을 넣으니 고이 접힌 마스크가 있다. 다행이다. 




어릴 적 초등학교 교사 이셨던 아버지를 따라 첩첩산골 벽지학교에 잠시 다닌 적이 있었다. 뒤로는 부엉이 우는 깊은 산이고 앞으로는 구불구불 논이 펼쳐진 띄엄띄엄 조용한 곳이었다. 화전민이라는 소리도 여기서 처음 들어본 하늘아래 움푹 파묻혀 숨어있는 그런 신기한 곳이었다. 외지인이 아예 없다 보니 이곳 소들은 혼자서 달구지를 끌고 다녔다. 혼자 나둬도 잘 찾아간다고 했다.


이곳 가을이면 아이들과 밤이며 도토리며 지천에 깔린 나무 열매들을 주워 모으러 다녔다. 산간벽지 사방천지에 참나무다 보니 멀리 갈 필요도 없다. 앞마당에만 나서면 굴러 다니기에 그것도 상태가 좋은 튼실한 놈만 골라 줍는다. 여기 다람쥐들은 배가 불러 바닥에 굴러다니는 열매는 쳐다보지도 않고 나무 위에서 튼실한 놈으로 천천히 집어 가기에 우리와 경쟁할 필요도 없는 듯 사이좋게 지냈다. 


그런 추억의 도토리가 이제는 개발로 도시화가 살아남은 작은 동산에 외로운 참나무다 보니 다람쥐 걱정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가을 산행을 하다 보면 토토리를 주워가지 마시라고 곳곳에 현수막이 붙어있다. 부족해진 도토리에 사람까지 경쟁으로 힘들어하는 다람쥐의 겨울 채비를 도와주려는 마음이다.


다람쥐는 겨울을 나기 위해 도토리를 열심히 모은다 역시 하나의 저장고에만 의존하지는 않으므로 어느 정도 분산 저장하며 소량분산도 수시로 한다. 이를 쉽게 관찰하고 싶다면 집에서 다람쥐를 키워보면 되는데 서랍에는 대량으로 먹이를 보관하지만 동시에 바지주머니, 가방, 화분, 신발 등에도 소량 분산을 동시에 하는 걸 볼 수 있다. 먹이 저장고가 동족 내지 타동물에게 도둑맞았을 시에 굶어 죽는 리스크를 예방하기 위함이며 거리가 먼 곳의 음식을 저장하기 위한 예비창고도 운영한다. 때문에 다람쥐 역시 모든 음식을 기억하거나 찾아 먹지 못하므로 숲의 농부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여기 거들떠보지도 않다가 심한 황사때다 고급진 마스크나 찾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던 것이 개발이란 명목으로 야생동물 서식지의 파괴로 사람들과 밀접해지면서 그들에만 있던 바이러스가 사람에게 옮겨져 난리가 났다. 엄청난 재난에 놀란 사람들이 급하게 마스크를 찾는다. 정해진 시간에 줄을 서서 그것도 본인확인 까지 하며 한 장씩 배급받듯 구입하며 안절부절 어쩔 줄 몰라한다. 주변 곳곳에서는 마스크를 안 쓰면 배척을 해대니 난처할 때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러다 보니 어쩌다 마스크가 생기면 여기저기 쑤셔 넣기 바쁘다. 서랍 속에도, 주머니에도, 회사에도, 차 안에도, 보이는 대로 넣어둔다 더러는 잊어버려 찾을 수 없을 때도 있었다. 거리 곳곳에 마스크 사재기를 하지 말라는 현수막이 펄럭이고 사람들은 다람쥐가 되어 우후죽순 마스크 공장을 만들며 마스크를 모으러 다녔다. 

그랬었다.


여기, 시베리아 찬바람에 마스크 한 장 찾아내어 덥썩 쓰고는 움츠려 걸으면서 깊숙한 안주머니에 손을 넣으니 또 하나가 나온다. 여기저기 잘도 숨겨 놓았다. 졸지에 마스크 다람쥐가 되었다.


아마 여름옷에도 가을옷에도 옷이란 옷 속에도 서랍 속에도 마스크 하나쯤은 들어있을 것이다. 더러 잊고 있었는데 꼬깃꼬깃 나오면 놀랄 때도 있었으리


지금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걸어둔 옷 속에 손을 집어넣어 보시라

마스크 다람쥐가 거기에도 있다.


#자연파괴  #지구온난화  #난개발  #지구를 사랑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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