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누굴 탓하며 지내는가
100세 시대 사람과 함께 사회는 같이 늙어가지만 그들의 삶과 정신은 오히려 새롭게 젊어만 간다.
미국 올 때면 자주 거닐던 플래노 Legacy west 거리를 오늘 또 찾아와 거닐고 있다. 볼 때마다 점점 세련되어가는 거리와 오가는 사람들의 멋짐은 여전히 뿜뿜 하다. 그렇지만 이곳도 버스킹과 이벤트성 행사가 많은 것을 봐서는 전보다 장사가 잘 안 되는지 손님유치에 애를 쓰는 것 같다.
짧은 쇼핑 거리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명품삽과 편집삽 그리고 스쳐 지나는 인근 회사원들과 관광객들의 미묘한 경계의 사람에 취해 오르내리다가 배가 출출해지면 내가 좋아하는 CAVA에서 음식을 조금 사들고 편안한 감성의 Legacy food hall로 가서 퓨전타코와 함께 가벼운 식사를 즐긴다. 정말 오랜만에 맛보는 여유스러운 나름 고급감성에 녹녹히 늘어진다.
시간밖에 가진 것 없는 타지 여행객인 지라 또 지루함을 달래려 손을 이끌고 밖으로 나서면 이번엔 발갛게 익은 노을이 거리에 누워 사진을 부르고 있다. 스스로 호객꾼이 되어 홀깃거리다 보면 어느새 꼭 먹어야 된다며 기어코 줄을 서는 '아모리노 젤라또' 하나를 들고 서들고 걷는다.
당당 다당~
눈감은 감성을 울리는 베이스기타 소리에 이끌려 모퉁이를 돌아가니 한 무리의 사람들이 분주하다. 하얀 가발에 하얀 의상 그리고 백색 구두까지 모두 올백으로 치장한 남녀들이 함께 모여 어슬렁 거리며 웃고 떠든다. 왠지 곧 시끄러워질 것 같아 또 잡스러운 파티를 열렸는가 하면서 지나치는데 자세히 보니 남녀 모두 노인들이다. 나 보다 훠얼씬.
엥~, 다시 보니 심지어 지팡이를 짚고 계신 할머니까지 계신다. 한 손에 맥주잔을 들고 삐에로 같은 짙은 화장에 춤도 추고 전혀 주변을 의식함도 없이 다들 무척 즐거워 보인다.
소위 젊은 세대의 MZ가 있다면 지금의 노인들도 따지고 보면 MZ식 노인들이다. 그 말인 즉 예전 노인들과 삶의 형태와 생각들이 많이 다르다는 이야기며 새롭게 없던 젊음의 형태가 탄생했다는 이야기다.
돌이켜보니 나도 환갑이 지났지만 과거 어르신들이 하시던 것과는 전혀 다른 패턴의 삶을 산다. 만일 그 시대의 60대가 지금 나를 본다면 젤라토 아이스크림을 빨며 반바지에 너덜거리며 거리를 휘젓는 요즘 것들 하며 혀를 찰 일이다. 그렇듯 요즘 60대는 예전과는 생활 자체가 정말 다르다. 자신을 위한 일에 거침이 없다. 또한 출가한 자식들에게 얽매이지도 않으려 하고 자신의 취미생활에 몰두하며 여행과 건강에 열심이다. 다만, 모든 세대에서도 마찬가지겠지만 사정상 예외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MZ세대를 보고 혀를 차며 탓하고만 있을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 또한 그렇게 변했기 때문이다.
확실히 예전 60대 어르신들이 산전수전 경험을 밑천으로 에헴~ 하며 뒷전으로 물러앉아 점잖을 무기로 삼았다면 요즘 60대는 젊은이들과 격의 없는 대화에 참여도 잘하고 또 스스로 어른이기를 거부하기까지 하며 세월을 멈춰 세우고 지낸다.
그래 맞다.
100세 시대는 우리와 함께 사회도 같이 늙어간다. 반면 우리네 삶은 점점 새로운 느낌으로 젊어 지기에 멈칫거릴 필요가 없다. 아무도 안 간길 누가 누굴 탓하겠는가, 먼저 나서는 사람이 용자고 승자다. 쓸데없는 배려에 스스로를 위축시키지 말자. 다들 처음 가는 초행길이지 않는가.
여기 올백 드레스코드에 자신들을 과시하고 있는 미국 노인들. 아니, 그들 스스로 인정하는 새로운 절정의 삶이 곧 백색 춤사위에 얹혀 Legacy거리에서 온 세상으로 번져 나갈 것이다.
한참을 멍하니 쳐다보던 나도 슬며시 그 기운 한 줌을 두 손으로 꽉 움켜쥐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