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희

by Zarephath

<선희>


선희의 전화기가 요란하게 울린다. 스마트폰인지 뭔지로 바뀐 뒤부터 전화받는 것도 영 편하지 않다. “여보세요.”“엄마, 나, 태국이야.” 작은아들이다. 작은 아들이 의사가 될 적만 해도 어미를 편하게 모시려는구나 싶었는데, 무슨 WHO라는 데를 일찌감치 진로로 정하고서는 이렇게 어쩌다 전화통화하는 게 전부다. “형은 잘 지낸데?” 형, 첫째는 인생의 우여곡절이 많았다. 많은 우여곡절만큼 원망도 많이 쌓이고, 이젠 거의 인연이 끊긴 상태나 마찬가지다.

형의 안부를 묻는 둘째의 음성 둬로 선희는 또다시 그의 젊은 시절을 떠올린다.

선희는 그날도 학교를 가지 않았다, 아니, 가지 못했다. 한참 월사금 내는 때여서 월사금 못 가져온 선희는 또 교실에서 쫓겨날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월사금, 말해볼 데라곤 아버지 밖에 없는데 아버지는 노골적으로 엄마 아닌 다른 여자와 항께 월사금 없다며 소리 지르며 회초리질을 한다. 서러움에 복 받히기도 지쳐 선희는 월사금 철이 되면 엉덩이까지 박음질한 부끄러운. 교복을 입고 의례 산으로 갔다. 산에서 시간 보내다 학교 마치는 시간에 맞춰 집에 왔다.

엄마는 아빠한테 쫓겨난 지 오래지만 선희의 가슴속엔 생사를 같이 히지 않았다는 원망, 오히려 엄마에게 버림받다았다는 원망이 엉겅퀴처럼 자라고 있었다.

선희는 결국 아버지에게서도 쫓겨났다. 아이러니하게도 선희 이버지는 그 당시 신학공부까지 마친 인텔리엤다고한다. 여하튼 오갈 데 없는 선희를 가을걷이 키워준 건 선희의 친할머니였다.

선희의 일과는 물 긷고 시장통에 남은 시래기를 줏어다 오는 것이었다. 선희는 늙은 지금도 시래깃국을 가장 좋아한다. 어릴 때 익숙해진 맛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할머니의 슬하에서 자라던 선희에게 정말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다. 아버지랑 같이 살던 여자가 나가더니 엄마가 돌아온 것이다. “우리 다 화해했다. 니 몰랐더나?”엄마가 돌아오며 남긴 한마디였다. 선희는 뭔가 알 수 없는 분노로 온몸이 훠감겼다. 지네들끼리 싸우다 화해하면 그만인가? 그 돔 안의 나의 수치스러운 삶은. 무엇인가?

엄마가 돌아온 이후의 삶도 선희에게늗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달라진 거라곤 물 긷는 양이 많아졌다는 것과 주워오는 시래기 양이 말아졌다는. 것. 집에서 담배나 피워대는 엄아가 하는 유일한 일은 시어머니와 싸우는 일이었다

선희는 지긋지긋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원흉인 아빠보다 엄마르루더 원망하기에 이르렀다. 아무리 힘들었어도 딸인 자신을 버리고 간 엄마가 이해되지 않았다. 그리고 맘대로 돌아온 후 살아가는 모습들도… 선희는 죽이고 싶었다. 기회만 된다면… 그러나 삶이 항상 그렇듯 기회의 순간이 널렸어도 누군가를 쉽게 죽이게 되진 않는다. 선희도 긴 세월 살의를 품은 채 버티며 살아갔다.

선희는 취업을 해야만 했다. 월사금은 농구부를 지원하고 면제받는 걸로 해결하고-농구는 그때 처음 해봤다.-겨우겨우 여상을 졸업했다.

선희가 여상을 졸업하고 취업을 위해 처음 가 본 곳은, 직업소개소라는 곳이었다. 선희는 말 그래도 정말 직업을 소개해 주는 곳이라 생각하고 문을 두드렸으나, 그녀를 맞은 사람들은 소위 문신에 깍두기 머리를 한 사람들, 찾아오는 사람을 다방이나 유흥업소에 팔아넘기는 일을 하는 그런 곳이었다. 선희는 여상을 졸업했으니, 은행에 취업하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 이상한 사람들을 향해 '저는 제일은행에 취업하러 왔어요'라고 똑똑히 말해 주었다. 그 평범한 말 한마디가 그 인신매매 업소에선 꽤나 신선하게 울려 퍼졌고, 그 깍두기들 중 중탁이란 남자의 귓가엔 그 목소리가 떠나지 않았다. 그는 눈을 들어 천천히 선희를 바라봤고, 본능적으로 선희를 거기서 나가게 해야겠다는 생각에 선희의 손목을 끌고 밖으로 나갔다. "왜 이러시죠? 저는 제일은행에,,,""야 이 미친년아 여긴 그런 데가 아니야. 너 몸 팔고 살래?"그제서야 선희는 자기가 크나큰 위험한 실수를 했음을 깨닫게 되었고, 거칠지만 자신을 구해준 중탁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라고,,, 고마워요. 전 직업을 소개해준다기에...""됐어, 제대로 된 일 하면서 살고 싶으면 다신 이런 데 얼씬 거리지도 마."

아버지와 친할머니와 엄마와 선희가 같이 생활하는 공간은 어느 교회에서 내놓아준 큰 강당 같은 곳이었다. 피난민 수용소 비숫한 분위기였는데, 여하튼 갈 곳 없고 돈 없는 빈민들이 한 둘 비집고 들어와 공동생활을 하는 곳이었다. 나름 교회라서 그것도 관리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물 길을 때 순번 정하기나 잘 때 발에 깔고 잘 불에 구운 기왓장 나눠주기 같은 걸 담당했었다. 그런데, 이 사람 사무실이 묘하게 남녀공용 화장실이 직선거리로 보이는 곳에 위치해 있었는데, 선희는 용변을 뽈 때마다 그 관리인의 시선을 한 번도 느끼지 않은 적이 없다. 거의 배설하는 모습을 다 노출시킨 수치심을 매번 느껴야만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시선이 사라졌다. 선희가 화장실에 들어갈 때면 아무도 없었다. 웬일일까?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 중탁이란 깍두기 아저씨가 손을 쓴 탓이었다. 중탁은 선희를 처음 본 순간부터 그 백치 같은 멍청함이 너무 신경 쓰였고 화가 나서, 그녀의 주변을 맴돌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맴돌다 보니, 그 추악한 교회 관리자까지 손을 써버렸던 것이었다. 그러나, 중탁은 선희에게 함부로 다가가지는 않았다. 그저 맴돌며 바보 같은 일을 당할 때마다 남몰래 손을 써주곤 하는 게 다였다. 커피 한잔 같이 하잔 말은 가당치도 않았다. 그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었다.

선희는 취업을 해야만 했다. 매일 아침 시장통에 남은 시래기 죽어다 국 끓여 먹는 걸로는 식구들의 끼니를 해결할 수도 없을뿐더러,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는 없었다. 그래도, 여상까지 졸업한 책임감이란 것이 그녀를 그냥 두지 않았다. 그녀는 이런저런 일자리들을 알아보던 중, 군무원이란 것에 대해 알게 되었다. 군 관련 공무원 같은 것인데, 꽤 괜찮게 보였다. 그래서, 절차에 따라 지원을 하고, 결국 합격했다. 하는 일은 거의 장교들의 비서 같은 역할이었다. 그녀가 처음 배치된 곳은 헌병대장(2성 장군)의 비서 역할이었다. 꽤 파격적인 인사였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그 2성 장군이 직접 뽑아 갔다고 한다. 이유는, 선희의 외모 때문이었다. 헌병대장은 이미 이혼해서 자식까지 있는, 선희보다 20살은 많은 남자였다. 그럼에도 헌병대장은 선희를 매우 아꼈고, 직설적 표현으로 갖고 싶어 했다.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이던가? 때 마침 선희는 큰 병을 얻었다. 폐결핵이었다. 당시만 해도 폐결핵은 난치성 중증 폐질환으로 많은 생명을 앗아가는 무서운 질병이었다. 직장에 알리고, 선희는 치료를 받으러 정기적으로 병원엘 갔다. 그런데, 헌병대장이란 사람이 한낯 비서가 병원엘 가는데, 헌병대장용 관용차에 직접 태워 동승하여 병원까지 같이 가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주사 다 맞을 때까지 손을 꼭 잡고 그 곁을 지켜줬다. 선희에게 헌병대장은 아버지뻘 되는 사람이다. 그리고, 선희에게 각인된 아버지에 대한 이미지는 최악 그 자체였다. 그래서, 선희가 가장 약할 때 이런 식으로 다가온 헌병대장은 아버지이자 남자이자 의지할 어른이자 이 세상 모든 것이 되고 말았다. 선희의 마음이 넘어왔다는 걸 알게 된 헌병대장은 더욱 그 말과 요구들이 노골적이 되어갔다. 생모가 아기 낳아서 젖 물리는 걸 보고 싶다.(이혼하기 전에 얻은 첫째 아들은 부인이 불임이라 씨받이를 통해 얻은 자식이었다.) 꼭 결혼할 테니 제발 아이를 낳아 주기 바란다. 생각해 보면 참 웃긴 얘기 들이다. 결혼해서 애 놓으면 되는 그런 간단한 순리는 접어 놓고 이런 요구들을 하는 것은 그냥 혼인 빙자 간음일 따름임에도, 이미 헌병대장이란 존재 자체가 모든 세상이자 우주가 되어버린 선희에게는 그 어떤 상식적인 판단도 불가능해졌다. 선희는 헌병대장에게 아들 둘을 낳아줬다. 그때부터 헌병대장은 애 하나는 네 호적에 올리자는 등등의 애매한 말들을 하기 시작했고, 의붓딸이라면서 어떤 여자를 집안에 들이기 시작했다. 이미 마음이 떠나고 있음을 안 선희지만, 선희에게는 커다란 짐덩어리가 있었다. 바로 자신을 키워 준 친할머니와 자신을 버렸던 어머니였다. 헌병대장이 둘 중 한 명은 모셔도 좋다고 그랬기에, 선희는 고심이 깊었지만, 어쩔 수 없이 친할머니를 양로원에 보낼 수밖에 없었고, 엄마를 모시고 살 수밖에 없었다. 이미 삶이 모든 것이 헌병 대장의 수중에 들어온 상황에서 선희는 헌병대장이 주는 대로 받으며 사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선희에게는 헌병대장의 씨를 받은 두 명의 아들이 있었다. 그 어떤 상황도 이겨내게 만드는 아들들.

이제부터는 헌병대장은 자기 멋대로였다. 의붓딸이라며 집에 여자 들이기를 밥 먹듯 했고, 외박은 당연하고, 생활비를 주지 않는 등, 그냥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았다. 선희는 참았다. 언젠가는 아이들을 봐서 돌아올 것이라 믿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시장에 다녀오는 길에 중탁을 만났다. "어,,,???""잘 사냐?""잘 지내셨어요? 그땐 감사하단 말도 못 하고...""괜찮아,,, 근데,,, 결혼이란 건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야. 좀 생각 좀 하고 살아." 그러고는 사라졌다. 순간 멍해졌다. 선희는 지금껏 어떻게 살고 있었던 걸까? 지독하게 혹독한 운명을 이리저리 피하며 살아온 결과가 이런 것인가?

선희는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헌병대장이 결혼해 주겠다는 약속도 거짓말이라는 걸 사실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며, 집에 외간 여자 들이는 짓이 얼마나 못할 짓인지도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래, 계속 이렇게 살 순 없다.'선희는 결심했다.

선희는 자고 있는 애들을 깨웠다.. 그리고, 버리고 가고 싶은 엄마도,,, 깨웠다. 모두 데리고 그 크고 아름다운 집을 나왔다. 나오자마자 중탁이 기다리고 있었다. “갈 데는 있는 가야?” 선희는 놀라지도, 당황하지도 않고, 똑똑히 말했다. “데려다줘요. 안전한 곳으로. “중탁이 말했다.”내가 왜? 내가 네 기둥서방이라도 되니? 게다가 상대는 헌병대장이야. 내가 감당할 사이즈가 아니라고. 나보고 너 때문에 죽으라는 거야? “ 이때 뒤에서 낯익은 묵소리가 들려왔다. 헌병대장이었다.”허~~~ 이게 무근 장면인가? 야반도주라도 하시나? 뭐, 그새 바람이라도 피워 둔 건가? “ 엄마가 말한다.”아, 김장군 그게 아니라 얘가 갑자가 자는데 어딜 가자고,,, 절대 그런 거 아니네, 들어갈 걸세, 밥은 먹었는가? “선희가 말한다.”저, 떠날 거예요. 더 이상은 이렇게는 못 살아요. 애들은 제가 키우겠어요. 다신 날 찾지 말아요,“ 헌병대장이 말한다. “흠, 지금 결심이 그러하다니 일단은 가시오. 그러나 애들은 내 애들이오. 난 당신이 어디에 있건 당신을 찾아낼 거요. 난 내 걸 빼앗긴 적이 없는 사람이거든.”이라며 중탁을 쏘아본다.

그날, 선희는 가족들과 함께 중탁을 따라나섰다. 중탁은 예상이라도 한 듯 가족들이 기거할 만한 곳을 마련해 두었었다. 선희는 거기서 처음으로 안도감을 느끼고, 푹 잘 수 있었다.

그때부터 선희는 공포심과 강박증이 생겼다. 언제 헌병대장이 자기들을 찾아내 애들을 빼앗아 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잠시도 안심할 수가 없었다. 좀 우스운 얘기지만 의지할 데라곤 중탁밖에 없었다. 중탁은 선희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이왕 이렇게 됐으니 그냥 같이 살자고 하지도 않았고, 선희를 가지려 하지도 않았다. 그저 한 번씩 생필품과 식료품들을 사가지고 와서 채워 놓고 가는 게 다였다. 무식한 깍두기 깡패에게는 기대할 수 없는 신뢰와 호의를 선희는 느꼈다. 선희가 착각하고 있었던 게, 헌병대장이 말은 그렇게 했어도, 사실 그는 애들한테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그는 그저 자신의 쾌락적 삶에만 몰두할 뿐이지, 애들을 키운다거나 하는 책임 있고 힘든 일에는 전혀 관심 없는 사람이었다. 헌병대장은 선희를 찾지 않았다. 그걸 모르는 선희의 헌병대장에 대한 공포는 커져만 갔고 마침내 이성을 잃었고, 죽여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걸 부탁할 사람은 단 한 명, 중탁이었다. “중탁, 할 말이 있어,”“뭔데?”“헌병대장 죽여줘,”“…이 년아, 누구 인생 망칠 일 있니? 상대는 그냥 동네 양아치가 아니야. 헌병대장이라고. 그리고 우리 같은 사람은 누구 죽여 달라고 그러면 진짜 죽여준다고. 너, 그거 진심이니?”“응”“중탁은 두 번 묻지 않았다. 그리고, 헌병대장이 있는 곳으로 갔다. 그리고, 기회를 엿보다 대검으로 배를 관통해 죽이고 늘 하듯이 시체를 처리했다. 중탁은 선희에게 돌아왔다. ”죽였어. “ 한마디를 남기고 다시 사라졌다. 선희는 그다음부터 그나마 안심하고 살 수 있었다. 죽이고 싶지만 차마 못 죽이는 엄마, 두 아들, 그렇게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게 된다.

두 형제는 곧잘 잘 자라 주었다. 어릴 때부터 힘든 일을 많이 겪어서 그런지 일찍 철이 들었고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건 공부를 열심히 해서 엄마를 기쁘게 해 드리는 것 밖에 없다는 걸 일찍부터 깨달았다. 형은 꽤 괜찮은 학교 영문과를 진학했고, 동생은 의대를 진학했다. 그런데, 때는 IMF였고, 형은 졸업을 해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에 반해 동생은 어엿한 의사로 사회에 첫걸음을 내디뎠다. 형제들 공부시키는 동안 가진 재산은 거의 다 탕진을 했고 유일한 희망이 동생이 의사가 되는 것이었는데, 정말 의사가 되니 이건 정말 움직이면 돈이었다. 어디 가서 야간 당직 해오면 몇십만 원, 취직해서 미리 한 달 치 받아오면 천만 원, 동생이 의사가 되는 순간 탕진된 재산이 그대로 보상되는 것이었다. 동생은 또 필요한 걸 아무런 어려움 없이 사 모으기 시작했다. 컴퓨터며 차며 등등,,, 그리고,,, 그때의 형의 얼굴의 서러움을 어렴풋이 기억한다. 형도 돈이 쓰고 싶었다. 그러나, 형 자존심에 동생에게 돈을 달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돈을 아주 쉽게 빌려주는 사채에 발을 담그기 시작했다. 수백만 원이 수억이 되어버리는 악성 사채를 쓰기 시작했는데, 쓰다가 발각되면 동생이 갚아주고, 쓰다가 발각되면 동생이 갚아주고,,, 그 악순환과 밑 빠진 독에 물 붙기는 끝이 없었다. 그래서, 동생은 집을 떠나고 싶었다. 그러나 무작정 떠날 수는 없는 일이었고, 나름 명분을 갖고 떠나는 것이 WHO에 지원해서 떠나는 것이었다. 동생이 떠나고 나니, 형도 집을 떠났다. 더 이상 자신의 밑 빠진 독에 물을 부어줄 사람이 없어진 때문이었다. 그렇게,,, 선희는 혼자가 되었다. 가끔씩 중탁이 찾아와 안부를 묻고 말동무가 되어주긴 했지만, 말 그래도 혼자 사는 여자가 되어 버렸다. 한 번씩 전화로 안부를 묻는 동생의 전화를 받는 것이 유일한 낙이 되어 버렸고, 형의 안부를 물으면 사실 어디서 어떻게 사는지 모르지만 잘 지낸다고 했다. 애들 아빠를 죽이고서 단란한 가정을 꾸미고 다복하게 사는 것이 너무 큰 꿈이었을까? 애초에 그런 복이란 없는 것이었을까? 선희는 혼자 사는 이 인생이 너무너무 싫었다. 내가 뭘 그리 잘못했던가? 그저, 나와 애들을 지키려 했을 뿐인데.

어느 날, 또 중탁이 찾아왔다. 차 한잔 하며 다과를 먹으며, 선희는 오랜 친구가 되어 버린 중탁에게 그동안 물어보지 못한 얘기를 물어봤다. "중탁, 중탁은 나한테 왜 그런 거야? 왜 나한테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모든 걸 다 해 준 거지? 왜 젊을 때 날 갖고 싶다고 하지 않았어?"중탁이 말한다."쓸데없는 소리. 넌 그냥 길 잃은 날다람쥐 같았어. 길을 잃다 나한테 안겨버린 날다람쥐. 그런 불쌍한 짐승에게 뭘 바랄 수 있냐? 그리고, 나같이 쓰레기 같은 인간이 어떻게 널 가져? 꿈도 야무지지."이미, 선희의 손은 중탁의 뺨을 만지고 있었다. 중탁은 선희의 그 손을 잡고 펑펑 울었다. 울다, 들은 서로 포옹을 했고, 시들대로 시든 서로의 몸을 탐하지 시작했다. 한참을 서로를 가진 후 둘은 천장을 바라보았다. 바라보며 실컷 웃었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선희가 말했다. "이제야 우리가 하나가 되었구나. 날 영원히 혼자가 아니게 해 줘서 정말 고마워" 중탁이 대답한다."아니야, 쓰레기 같던 날 구해줘서 내가 고마워" 둘은 그렇게 한참을 천장을 응시했다.

이전 09화형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