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
그에게 연신 주먹을 내리꽂고 있는 아이는 소위 동네에서 짱을 먹는, 아무도 건드리지 않는 그런 아이였고, 그 아이에게 주먹세례를 받고 있는 아이는, 소위 아버지 없는 가정에서 유약하게 자란, 모두가 건드려도 괜찮은 그런 아이였다. 대게는 서로 부딪힐 일이란 없는데, 오늘 이 생경한 광경이 벌어지게 된 이유는 바로, 아버지 없는 집 아이의 동생 때문이었다. 아직 세상 돌아가는 거 파악할 만큼 크지도 않았을뿐더러 형아한테 모든 걸 의지하며 살다 보니, 그 짱이란 아이의 부당한 행동들이 그만 동생의 울음보를 터뜨려 버렸고, 동생 울린 악마 같은 자식이 너무너무 무섭고 도망가고 싶었지만, 형은 그럴 수 없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의 반항을 시전 했고, 그 대가는 박자를 타고 꽂히는 그 짱의 주먹다짐이었다. 동생은 그 장면을 앞으로도 평생 잊지 못하게 된다.
둘은 그렇게 자라났다. 혼인빙자 간음으로 아들 둘을 낳고 혼인신고도 하지 않은 채 도망가 버린 육군 장성이 그들의 아버지였다. 엄마는 그래도 아빠를 사랑했다. 그래서 항상 아빠에 대해 좋게 야기했고, 아빠가 장군이라는 걸 자랑스러워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함께 살지 않는 아빠가 장군이면 뭐 하고 대통령이면 뭐 하겠는가? 두 아이들에겐 엄마가 전부였고 외할머니가 곧 아빠였다. 그 안에서 충분히 안정되었고, 아빠라는 존재는 그냥 거슬릴 뿐이었다. 학교에서 ’ 아버지 뭐 하시는가?‘라는 류의 조사를 하면, 뭐 항상 장군이라 얘기는 했지만, 처음엔 다들 놀라다가 결국 그 장군 아빠에게 버림받은 자식들이란 걸 알고 혀 차는 소리로 마무리되곤 했다. 그 담엔 그냥 미국에 갔다 러거나 그런 애매한 말들을 했지만 결과는 같았다. 대단한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자식들.
그 장군님께서 하루는 엄마를 상대로 대 협상을 걸어온 일이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엄마는 아빠가 돌아와 애들과 함께 살 날을 기대하고 있었지만,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거란 걸 애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 협상이란 것이, 교육비는 내가 낼 테니 양육비는 네가 알아서 해라는 것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거지만, 그 교육비란 것이 학교에서 공식적으로 발부되는 공납금 고지서 같은 것에 한정된다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그냥 공납금 정도 내줄 테니깐 애들은 알아서 키우라는 것이었다. 엄마는 아무런 항의를 하지 않았다. 왜냐면, 아직도 엄마는 아빠를 사랑하고, 삶을 애들과 함께할 날에 대한 기대를 저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여하튼, 협상은 순조로이 진행됐고, 장군님의 뜻대로 되었다.
첫째는 피아노에 천재적이었다. 초등학교 때 체르니 50번을 독파할 만큼 그 수준이 어마어마했다. 엄마는 첫째에게 피아노를 시키고 싶었다. 그러나 그 합의에 의하면 피아노 교육 같은 건 공납금 고지서 같은 것으로 나오지 않는다. 마침, 첫째가 공부를 잘했다. 중학교 들아갈 때부터 전교 1등을 놓치니 않을 정도였으니, 그냥 공부시키는 걸로 음악의 길은 일찌감치 포기하게 되었다.
둘째는 항상 형처럼 되고 싶었다. 피아노도 잘하더니 공부도 잘하고, 중학교 들어가니 집이 가난해도 전교 1등이라고 대접받고, 어린 시절의 유약함을 언제 다 벗어버리고 학교의 중심으로 성장해 갔다. 그렇지만, 동생은 형만큼 되지는 못했다. 항상 누구의 동생으로 불리고, 성적이건 뭐건 그 그늘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래도 동생은 자랑스러웠다. 영웅 같은 형의 동생으로 학교생활을 하는 것이 그렇게 신날 수 없었다. 그리고, 형처럼 되기 위해 매일매일 죽도록 공부를 했다.
세월이 지나 형은 고등학교를 가고 동생은 중학교에 남았다. 어느 날, 동생은 이런저런 공상들을 하고 사전이나 잡지들을 뒤적이다, 엉덩이를 까서 창문 밖에 보여주는 장난이 있다는 걸 배웠다.’어, 재미있겠는데.‘별생각 없이 실천해 보았다.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행위인데, 묘한 해방감과 쾌감이 있었다. 엉덩이를 깠을 때의 그 쾌감에 압도되어 엉덩이를 막 문질러 대고 그 행동을 그대로 창문 밖에 보여 줬다. 그런데, 그 동네 형 또래의 애들 두 명이 그걸 넋 놓고 보고 있었다. 화들짝 놀란 난 집 안으로 들어갔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그 짓궂기로 유명한 애들이 그 얘길 안 하고 넘어갈 리가 없다. 어떡하지. 할 수 있는 건 기도밖에 없었다. 하나님, 방금 일로 아무 일 일어나지 않게 해 주세요.
난 그걸 잊기 위해 더욱 공부에 전념하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덕분에 성적은 오르고 즉어라 공부만 하게 되었고, 내 영웅 형의 성적을 상회하는 영재급 성적의 반열에 들어서게 되었다. 그런데, 이상한 게, 그 일 이후, 형이 학교에서 안 하던 짓들을 하고 오기 시작했다. 누구랑 싸우다 손을 꿰매고 온다거나, 성적이 이해되지 않는 양상으로 떨어진다거나, 뭔가 형의 생활과 내면에 문제가 생긴 게 분명했다. 그렇다고 뭘 어떻게 물어볼 수 있겠는가? 게다가 최초로 얻은 형보다 나은 동생이란 이름에 흠뻑 젖어 즐거워해도 좋을 때였다.
세월은 그렇게 흐르고, 대입 시즌이 왔다. 형은 그냥 그런 중위권 대학 영문과에 들어가게 되고, 난 재수를 거쳐 의대에 들어가게 된다. 대학 시절이 가고, 졸업이 다가왔다. 때는 IMF, 형은 할 수 있는 게 없없지만 난 버젓한 의사로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다. 형은 돈이 없어 못 사는 것들을 난 아무렇지도 않게 컴퓨터며 뭐며 마구 사들였다. 그 시절 형의 얼굴에 서려있던 서러움을 난 아직 희미하게 기억한다.
가족회의를 하게 되고 형을 영어선생 만들자고 다 합의했다. 물론 학비나 기타 비용은 내가 낸다. 형도 뭐라 찬반을 말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라 그냥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계획은 잘 진행됐고 형은 어느 중학교 정교사가 되었다.
아, 근데, 형이 그동안 더 많은 돈이 필요했는지, 사채를 쓰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수백만 원이 수억이 되는 그 사채의 늪에 빠져 있었다. 기껏 선생 된 것 좋아했더니, 직장이 무너질 판국이었다. 워낙이나 악질적인 조직과 엮이게 된 탓에 경찰이나 공권력의 도움도 요원하기만 했다. 그야말로 법보다 주먹이 가까운 상황인 것이었다.
유약하기 그지없이 자란 두 형제, 서로 원망할 일들도, 비난할 일들도 있었겠지만, 동생의 마음속엔 그 예전 동네 짱에게 나 대신 맞아 주던 형의 모습이 생생하다. 그래, 이제, 내가 형을 위해 주먹을 쥘 시간이 된 것이다. 나름, 유역 한 육신을 단련한답시고, 유도니 합기도니, 검도니,,, 운동도 많이 했었다. 이제, 형과 날짜를 잡고 치러 들어가는 일 밖에 남지 않았다.
“형, 내일 가자.”“아냐 인마, 이건 내 문제야, 죽어도 나 혼자 죽어.”“그게 무슨 말이야, 형 일이 내 일이지, 히히”
하루가 지나고 둘은 모였다. 악질적인 사체업자의 사무실로 들어갔다. 웃으며 무시하는 놈들의 다리에 칼을 꽂고, 발차기를 하는 놈의 발을 잡고 아킬레스 건을 자르고, 덤벼오는 놈의 배에 칼을 밀어 넣고, 그다음은, 목이건, 눈이건, 뺨이건, 손가락이건, 발가락이건, 닥치는 대로 찌르고 베고 분지른다. 놈들이 지쳤다. “계약서 가져와” 가져온다. 계약서를 태우고, 그간 뺏긴 돈들 대충 계산해서 가방에 집어넣고 나온다. 형제는 피투성이다. 그래도, 형제는 하나다. 둘이 아닌 하나였다. 모든 것이 끝났다. “형 담부턴 이런 거 하지 말고 돈 필요하면, 나한테 말해. 아니, 말하기 전에 내가 알아챘어야 했는데 미안해.”“아니야 인마. 형이 못나서 이런 꼴 당하게 해서 미안하다. 근데, 기왕 이렇게 된 거 이 길로 나갈까??? 하하하하하하하하하”“뭐?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