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릴 때만 해도 학부모가 선생에게 돈 봉투를 주는 일은 흔한 일이었다. 특히나 성적이 상위권이라거나, 집이 부자인 아이는 성적을 상위권을 만들어서라도 돈봉투를 받곤 했다. 명목은 학부모의 학급 찬조금 등이었는데 뭐 누가 봐도 뒷돈이었다. 우리 집은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만 해도 형편이 괜찮아서 매월 선생에게 돈봉투를 상납했었는데, 초등학교 3학년이 될 때 즈음 가정 형편이 급격히 나빠졌다. 거의 먹고 살 길을 걱정해야 했고 엄마는 돈봉투를 주던 선생들에게 액세서리나 화장품 등을 들고 다니면서 팔기도 했다. 그 상황이 되니 학교 선생에게 돈봉투를 상납할 여유 따위는 감당할 수가 없었다. 보통 학년이 올라가면 돈봉투를 상납하는 학부모의 리스트를 서로 인수인계를 하는데, 우리 엄마는 당연히 그 리스트에 있었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다. 분명히 고가의 돈봉투를 상납한다고 되어있는 학부모가 학년이 바뀐 후 돈봉투가 딱 끊기고 나니 이 선생 입장에서는 월수입에 치명적 타격이 발생한 샘이다. 이후 안씨 성을 가진 이 안선생은 여러 가지로 불만을 표출했다. 학급에서 뛴다거나 걸상에 올라가는 행위 등에 각 벌점을 정해 놓고 위반 시 벌점을 줬다. 벌점이 누적되면 행동평가에 최하점을 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평생 남을 성적표에 나는 준법성에 최하점을 받게 되었다. 또한 공개적으로 ‘너희 엄마는 자식에게 얼마나 관심이 없으면 선생님을 한 번도 찾아오지 않느냐’고 타박을 주기도 했다. 또 운동회 때 이어달리기 팀별 단체복이 있었는데, 각자 그 단체복은 우리 엄마가 해 주기로 했다고 말해버림으로써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을 만들곤 했다. 그의 악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교통사고가 난 적이 있었는데 상병으로 인한 결석은 출석처리를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병원에 입원해 꼼짝도 못하고 있는 아이를 전부 결석처리를 해 버린 것이었다. 그 악행들에 질려버린 엄마가 안선생을 찾아갔다. ‘선생님, 아무리 그렇더라도 아이한테 어떻게 이러실 수가 있습니까? 그냥 그런 것도 아니고 저희 집 형편이 갑자기 나빠진 것을 선생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의 악행은 끝나지 않았다. 보통 운동회때 차전놀이를 할 때 대장들은 전교 회장 부회장 들이 했고 피아노나 음악을 잘하는 아이들에게는 꽹과리나 악기연주를 시켰다. 피아노를 매우 잘 치던 나는 당연히 악기연주를 할 것이라 모두 생각하고 있었는데, 웬걸 차전놀이의 제일 앞에서 들어 올리는 역할을 맡겼다. 평소 몸이 약했고 교통사고에서 아직 회복되지도 않은 나에게 그런 역할을 맡긴다는 것은 정말 너무한 처사였다. 또, 내가 시험에서 1등을 하고 내 라이벌이 2등을 한 적이 있는데 안선생이 학생들 앞에서 발표하기를 내 라이벌이 1등을 하고 내가 2등을 했다고 말해 버리는 것이다. 내가 조용히 찾아가 얘기를 하자, ‘왜 등수 적어서 뒤에 붙이기라도 해줄까?’라고 했다.
그 선생의 악행은 이루 말할 수가 없어서 여기 다 적을 수 없을 정도이다. 그 선생의 악행이 설마 나만을 향했을까? 악행을 당한 또 다른 학생의 엄마 중 한명이 교육청에 신고를 라고 난리를 쳤다. 학교에서는 조사에 나섰고 대부분이 사실로 밝혀지자 징계를 내려야만 했다. 그러나, 시대가 시대였던 만큼 중징계는 내려지지 않고 인근 학교로 전근 가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다.
참으로 참혹한 시대였다. 우리는 그런 교육을 받았고 세상을 너무 일찍 알아버렸고, 세상을 어려서부터 불신하는 우리들이 지금 이 세상을 이끌어 가고 있으니, 어찌 세상이 신뢰에 기반해 작동되기를 기대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