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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arephath Sep 17. 2024

정희의 일생

평범의 댓가

‘이 개 자식이, 네가 그러고도 남자냐? 네가 나한테 해 준게 뭐가 있어?’

‘그래 너 말 잘했다. 네가 여자가 맞기는 한 거니? 왜 나만 너한테 뭘 해줘야 하는데?’

매일매일 정희의 귀를 괴롭히는 이런 소음들은 도저히 적응이 안된다. 엄마 아빠는 왜 결혼을 해서 날 나은 걸까? 두 사람의 결혼이 나라는 생명체의 불행밖에 만든 것이 없지 않나? 정희는 헤드폰을 둘러썼다. 엄마 아빠가 싸우는 소리다 들리지 않을때까지 헤드폰 볼륨을 최대한으로 올렸다.


정희는 18살이다. 이제 좀있으면 고등학교를 졸업한다.  정희의 꿈은 독립하는 것이었다. 빨리 대학을 가건 취업을 하건 이 욕나오는 집구석에서는 빨리 탈출하고 싶었다.

정희는 계획까지 세워 두었다. 비슷한 환경과 갖가지 사정으로 독립해야 하는 친구들과 방세도 마련하고 같이 살기로 했다.

드디어 졸업의 그날, 정희는 엄마 아빠한테 간단한 메모를 남기고 집을 나왔다. 나와서는 친구들과 같이 살기로 한 집에 들어갔다. 그런데 들어갔더니 왠 남자들이 들어와 담배를 피고 있었고 각자 남자친구인듯한 사람들이 있었다. 남자 중 하나가 말했다.’얘가 걔냐?‘’응 병신 같은게 우리들 사는데 지가 돈을 보태겠다잖아. 좋다고 했지 뭐.‘

정희가 말했다.’늬들 누구야, 왜 여기 들어와있는 거야? 어서 나가 안그럼 경찰 부를 거야.‘’우리들이 누구인지는 천천히 알게될 거고, 너 우리랑 같이 살려면 해줘야 할 게 있다.‘ 그리고는 그녀에게 성매매를 강요했다. 도망갈 수도 없었다. 할 수 없이 그녀는 성노예가 되어 버렸다. 성노예가 된 정희는 죽고만 싶었다. 자신을 속인 년놈들을 다 죽이고 자기도 죽고 싶어졌다.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그녀는 성매매하러 오는 아저씨들을 붙들고 사정을 했다.’아저씨 살려주세요. 저 이런 일 하는 사람 아니예요. 친구들에게 속아서 이러는 거예요. 제발 경찰에 신고좀 해주세여.’이런 사정들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애초에 그들의 목적이 성매매 아니던가? 작전을 바꿔봤다. ‘당신네들 여기서 이러는거 다 적어놨어요. 앞으로 협박이 갈 거니까 알아서 하세요. 절 꺼내 주시면 얘기 잘해 드릴게요.’ 그러나 성매매하러 오는 남자 중에 실명을 밝히는 경우는 없었다.이래도 저래도 통하지 않으니 정희는 방법을 바꾸려고 했다. 모텔 창문을 통해 뛰어내려 도망치려 했다. 모텔 창문을 통해 뛰어내린 정희는 발목골절을 입었으나 필사적으로 뛰었다. 한참을 도망간 정희는 어느 한적한 시골 집에 이르렀다. 할머니 혼자 사는 집 같았는데 인기척이 나자 할머니가 나왔다. ‘주희야 밥은 먹었니? 들어와서 밥 먹어’ 얼떨결에 따라 들어간 정희는 할머니가 차려 주시는 집밥을 한그릇 비웠다. 그리고, 치매끼가 있는 할머니는 정희를 주희라 부르며 자신의 딸과 착각하는 것 같았다. 숨을 곳이 필요한 정희는 한동안 그 집에서 주희로 살기로 했다. 몇 개월을 그렇게 살다 보니 정희 자신도 자기가 정희인지 주희인지 헷갈렸다. 평화로웠다. 따뜻했다. 그렇게 죽을 때까지 이 집에서 주희로 살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번씩 의료급여 대상자 실태조사라는 걸 나왔는데, 그만 거기 걸리고 말았다. 할머니와 무관한 사람이 거기서 살고 있다는 제보가 들어간 것이다. 정희는 할 수 없이 정든 그 곳을 뒤로 하고 그 곳을 떠났다. 이제 여기서 떠난다고 갈 곳이 있는가? 마음이 참담했다. 발길 닿는 대로 절뚝거리며 걷던 정희는 어느 미용실에서 아르바이트를 구한다는 전단지를 보았다. 숙식제공 조건이었다. 별로 딱히 가고싶은 곳도 없던 정희는 거기나 들어갈 요량으로 찾아갔다. 주희미용실이란 곳이었는데, 성실히 하면 미용 기술도 가르쳐 준다고 했다. 정희는 성실히 일했고 기술도 빨리 배웠다. 주희 미용실에서 3년 정도 일했을땐 고정 고객이 생길 정도였고 돈만 있으면 당장 개원을 해도 될 정도였다. 미용실 주인 아줌마는 재능이 아깝다며 자신이 돈을 빌려줄 테니 개원을 해보라고 했다. 그렇게 해서 정희는 주희 미용실 옆에 정희미용실을  차리게 되었다. 이후의 정희의 인생은 평범하게 흘러간다. 좋은 남자 만나 결혼도 하고, 애도 낳고.

이토록 평범한 삶이란 어마어마한 댓가를 치러야 가능한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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