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녀 두 명이 왕의 법정에서 다툰다. 서로가 한 아이를 자신의 아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한 엄마가 잠결에 아기의 숨을 막아 아기가 죽자 죽은 아기를 다른 여자의 침상으로, 살아있는 아기를 자신의 침상으로 옮겨 놓았다. 왕은 생모를 감별하기 위해 아기를 반으로 잘라 주라고 한다. 이를 시행하여 아기를 나누자는 여자가 친모가 아니라 아기를 저 여자에게 주라고 한 여자가 친모임이 밝혀졌다. 아주 유명한 <솔로몬의 재판> 이야기 이다.
이 이야기는 단지 어느 유명한 왕의 영웅담 같은 것이 아니다. 사건의 발단지는 사창가이다. 개나 돼지 취급받던 사람들이 모여 살던 사창가, 거기서 발생한 살인사건, 경찰들도 가기 싫어했을 것이 분명하다. 게다가 그런 하찮은 인간들의 재수없는 불미스런 사건이 왕의 재판장까지 갔다는 것이 더 신기한 일이다. 왕이 이 재판에 임하기 전날 밤 꿈에 신이 나타난다. 내가 너를 왕으러 세웠으나 원하는 것을 주겠노라고 다짐하며 나타났다. 왕은 백성을 다스릴 지혜를 구했다. 백성을 다스릴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백성들이 살아가는 참상을 알아야 한다. 그 다음날 왕이 본 것이 바로 그 참상이었다. 왕이 맞딱뜨린건 이스라엘에 있어서는 안될 창녀들의 소굴인 사창가가 버젓이 존재한다는 것이고 그런 곳에서도 출산이 일어난다는 것이었다. 그가 다스려야 할 나라의 참상이 바로 이런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참으로 이상한 것은 창녀는 돌로 쳐 죽여야 마땅할 터인데, 두 창녀에 대한 처벌에 관한 내용은 전혀 언급이 없다는 것이고 그에 비해 친모의 마음이 타는듯 하여 자기 아들을 저 여자에게 주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저 난감하고 억울하기만 했던 살인사건의 피해자에서 타는 듯한 모성이 회복된 여성으로 거듭난 것이다.
이스라엘이 율법의 나라였다 해도 나는 모든 율법이 다 지켜졌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사창가도, 술집도, 그외 성서에서 금하는 많은 일들이 자행됐을 것이다. 그러나 율법의 기본 정신은 그런 것들을 다 처벌하기 보다 지혜로 다스려서, 그들의 하나님에 대한 타는 듯한 사랑이 회복되도록 하는 것이 지혜롭게 나라를 다스리는 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