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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arephath Sep 18. 2024

죽음을 앞둔 내가 남자친구가 있는 아내에게

나는 곧 죽소. 병원에서도 그렇게 얘기하오. 여기저기 겹친 병들에 합병증들까지 겹쳐 더 이상 손을 쓸 수가 없다 하오. 아프오. 아파 죽겠소. 뭘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를 만큼 아프오. 진통제를 종류별로 때려 넣어도 통증 조절이 되지 않소.

미안하오.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소. 살면서 못할 짓도 많이 했지만 내 마음은 항상 당신의 행복을 바라고 있었소. 지금도 마찬가지오.

얼마 전 당신의 남자친구를 보았소. 마트에서 팔짱을 끼고 같이 장을 보는데 꼭 신혼부부 같더이다. 보기 좋았소. 죽음을 앞두고 무슨 욕심을 더 내겠소. 그러나 죽고 나서 당신 걱정뿐이었는데, 그렇게 멋있고 늠름한 남자가 있다는 것이 너무 기뻤소. 마음 같아서는 인사하고 같이 식사라도 하고 싶었지만, 그럴 순 없었소. 내 죽고 나면 생명보험 사망보험금에 남은 유산 조금 더하면 새 풀발 하기엔 부족함이 없을 것이오. 한 푼도 다른데 쓰지 말고 둘을 위해 쓰시오.

얼마 전에는 둘이 모텔에서 나오는 것을 본 적이 있소. 다 죽어가는 놈이 여기. 저기 잘도 돌아다닌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죽을 때가 되니 한 번이라도 더 자기가보고싶고 자기가 어디서 뭐하는지 더 궁금해지더이다. 모텔에서 나오는 상기된 당신의 얼굴은 무척이나 행복해 보였소. 나는 몇 년 넘게 해 주지 못한 것을 그 남자가 해주다니 고맙다고 절이라도 하고 싶었소. 고맙소. 자기 걱정 없이 떠나게 해 주어서.

이젠 아파서 글도 잘 못쓰오. 이게 마지막 편지가 될 수도 있소. 그러니 다른 생각 없이 내 말들이 진심이라 생각하고 받아들여 주시오. 당신의 남자친구에게는 꼭 고맙다고 전해주시오. 그럼 이만 줄이겠소. 언제가 마지막이 될지 모르니 이렇게 인사하리다. 사랑했고 사랑하오. 영원이 있다면. 당신을 영원히 사랑할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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