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꽃

by Zarephath

그들은 서로의 이름을 불러주었다. 그래서 서로의 꽃이 되었다. 그러다가 점점 한사람이 이름을 잃게 된다. 누군가의 아빠, 누군가의 엄마로. 이후로는 적어도 한 사람은 누군가의 꽃이 되지 못한다.

그런데 꽃이 되어서 무엇하리요?

꽃잎이 시드는 것은 이름을 불러주지 않아서 만이 아니다. 물을 주지 않아서, 사랑을 주지 않아서, 흙이 부실해서, 등등의 이유로 우리의 꽃잎은 시들어 버린다, 애초에 있었다면.

물도 안주면서 이름만 실컷 불러줘봐라, 꽃이 되는지.

부실한 흙에 꽃을 심고 이름만 실컷 불러봐라, 꽃이 되는지.

사랑을 주지 않고 이름만 실컷 불러봐라, 꽃이 되는지.

우리가 무언가를 꽃피우기 위해서는 존재론적 가치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이데아가 꽃이라 하더라도 현실에서 허덕인다면 그건 절대로 꽃이 될 수 없다.

존재만 꽃이면 뭐하나? 꽃이 꽃 다워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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