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채워야 할 자리
아파트에서 안내 방송이 나온다.
"현재 설 연휴를 맞이하여, 세대간의 층간소음 민원이 많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다들 이웃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생활해 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이 안내방송이 건설회사에도 방송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우리 아파트는 특히나 방음이 잘 안되기 때문이다. 왜 시공사가 아파트를 이렇게 만들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기술이 우리 집 거실까지 들어왔지만, 누구도 그 책임의 매뉴얼은 주지 않았다. 층간소음이 발생하면, 누군가는 이웃을 욕하고, 누군가는 시공사를 욕한다. 윤리적 공백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윤리적 공백(ethical gap)은 한스 요나스라는 사회학자가 만든 개념으로 기술이나 사회의 변화 속도가 인간의 윤리적 판단과 규범 형성의 속도보다 빠를 때 발생하는 도덕적 판단의 빈틈을 의미한다. 새로운 기술이나 상황이 등장하면 사람들은 그것을 실제로 사용하기 시작하지만, 그 행위가 옳은지 그른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나 책임의 범위, 사회적 합의는 아직 마련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이처럼 행동은 가능하지만 가치 판단과 규범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가 바로 윤리적 공백이다.
특히 인공지능, 자율주행, 유전자 편집과 같은 현대 기술은 기존의 윤리 기준으로 충분히 설명하기 어려운 문제를 만들어 내며, 이로 인해 사회는 일정 기간 동안 혼란을 겪게 된다. 일반적으로 기술이 먼저 등장하고 사회적 사용이 확대된 뒤 문제가 발생하면, 그 이후에 윤리적 논의와 법적 제도가 뒤따라 형성되기 때문에 이러한 공백은 필연적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윤리적 공백은 급격한 변화 속에서 인간이 새로운 기준과 책임의 방향을 모색하는 과도기적 상태라고 볼 수 있다.
나는 바로 이 윤리적 공백이 바로 생각이 채워야 할 자리라고 생각한다. 동양화 등에서 그림의 주제를 돋보이게 하거나 상상력을 자극하기 위해 일부러 비워둔 공간에서 느껴지는 아름다움을 '여백의 미(餘白의 美)'라고 한다. 윤리적 공백 역시 인간이 스스로 의미를 발견하고 책임 있는 판단을 만들어 가도록 남겨진 공간으로 인간의 의미를 만들어갈 수 있는 ‘공백의 미(美)‘를 지니고 있다. AI와 관련된 윤리적 문제들은 기술의 발전 속도가 사회의 규범과 제도를 앞지르면서 더욱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는데, 생각해볼 만한 문제들은 다음과 같다.
먼저 책임의 문제가 있다. AI가 잘못된 판단이나 사고를 일으켰을 때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지가 불분명하다. 예를 들어 자율주행차 사고, 의료 AI의 오진, 금융 AI의 잘못된 투자 판단 등에서 개발자, 기업, 사용자 중 책임 주체를 명확히 구분하기 어렵다.
다음으로 편향과 차별의 문제가 있다. AI는 학습 데이터에 포함된 사회적 편견을 그대로 반영하거나 강화할 수 있다. 채용 AI가 특정 성별이나 인종을 불리하게 평가하거나, 범죄 예측 시스템이 특정 지역이나 계층을 과도하게 위험 집단으로 분류하는 문제가 대표적이다.
또한 프라이버시 침해 문제도 매우 중요하다. AI는 방대한 개인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과정에서 개인의 동의 없이 정보가 활용되거나 감시 사회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얼굴 인식 기술이나 행동 예측 기술은 편리함과 동시에 개인의 자유를 위협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내가 연구하는 분야는 AI의 의사결정 투명성, 즉 블랙박스 문제이다. 많은 AI 시스템은 왜 그런 판단을 내렸는지 인간이 이해하기 어려운 구조를 가지고 있어 의료, 사법, 행정과 같은 중요한 영역에서 결과의 정당성과 신뢰를 검증하기 어렵다. 마치 보이지 않는 상자 안의 물체를 확인하기 위해, 상자를 여러 방향에서 흔들어보고 소리를 듣는 과정과 같다. 이를 보완하기 위한 방법으로 나는 다양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가능한 경우의 수를 반복적으로 시뮬레이션하며 입력과 출력의 관계를 분석하는 접근을 제시할 수 있다고 본다.
민감도 분석(sensitivity analysis)이나 몬테카를로 시뮬레이션(Monte Carlo simulation)과 같은 방식으로 조건을 체계적으로 변화시키면 AI가 어떤 변수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어떤 상황에서 오류나 편향이 발생하는지 행동 패턴 수준에서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내부 구조를 완전히 해석하지 못하더라도 외부 반응을 통해 작동 원리를 과학적으로 추론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다만 이 방법에도 분명한 한계가 존재한다. 현실의 모든 경우의 수를 시뮬레이션으로 포괄할 수 없으며, 이는 어디까지나 입력과 출력의 관계를 통해 간접적으로 작동 원리를 추정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근본적인 설명 가능성을 확보하는 데에는 제약이 따른다. 또한 사용되는 데이터가 편향되어 있거나 충분한 대표성을 가지지 못할 경우 검증 결과 역시 왜곡될 수 있고, 경우의 수가 많아질수록 계산 비용과 시간 부담이 급격히 증가하는 현실적 문제도 발생한다. 따라서 이러한 접근은 블랙박스를 완전히 해결하는 최종 해법이라기보다, AI의 판단 경향을 경험적으로 점검하고 위험을 줄이기 위한 보완적 방법으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다.
그래서 나는 다시, 인문학이 필요한 시대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기술의 발전만을 향해 달려가던 시대는 이미 지나가고 있다. 우리는 이제 기술이 만들어 낸 편리함 속에서, 오히려 더 근본적인 질문들과 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AI는 놀라운 속도로 학습하고 예측하며 인간의 많은 영역을 대신하고 있지만, 그것이 스스로 의미를 묻거나 가치의 방향을 설정할 수 있는 존재는 아니다. 데이터와 알고리즘은 선택을 수행할 수는 있어도, 그 선택이 왜 옳은지에 대한 책임까지 떠맡을 수는 없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인간의 사유가 다시 요청된다.
인문학은 기술의 반대편에 서 있는 학문이 아니라, 기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비추는 질문의 언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AI가 스스로 질문할 수 없는 문제들, 예를 들어 무엇이 좋은 삶인지, 어떤 사회가 더 정의로운지, 인간다움이란 무엇인지와 같은 물음들을 끊임없이 제기하고 성찰해야 한다. 기술이 빠르게 발전할수록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은 더 중요해진다. 왜냐하면 기술은 가능성을 넓혀 주지만, 그 가능성을 어디에 사용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인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으로 펼쳐지게 될 AI 시대는 기술의 시대이면서 동시에 사유의 시대이기도 하다.
결국 우리의 과제는 AI를 두려워하거나 맹목적으로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드러내는 한계와 공백을 인식하고 그 자리를 인간의 생각으로 채워 나가는 것이다. AI가 스스로 생각할 수 없는 문제점들을 조금씩 개선해 나가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다시 인간다움의 의미를 배우게 된다. 그래서 나는 지금이야말로 인문학이 가장 절실하게 요청되는 시대라고 믿는다. 인문학을 통해서 우리는 윤리적 공백의 빈 곳을 채워가면서 데이터를 통해 사회를 아름답게 만드는 '데이터 아티스트(Data Artist)'가 될 것이다.
여러분이 서 있는 기술과 윤리의 공백은 어떤 생각으로 채워지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