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을 충족하지 못한 아직도 흔들리는 삶의 독백]
메뉴판에 적힌 한국식 삶의 끝에 유토피아가 있다면 기꺼이 주문하리라. 그 끝에 공허와 허무가 있다면 난 언제든 유턴한다.
하지만,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나도 내 아이에게 너도 같은 걸 주문하라며 메뉴판을 건네주는 부모가 될까?
우리는 모두 메뉴판에 적힌 삶을 살고 있다. 고등학교 때 경쟁해서 평균보다 높은 점수와 순위로 자신의 능력을 판단하는 중요한 지표로 내 위치를 헤아려 본다. 학부모는 무조건 내 자식이 공부를 잘하는 걸 자랑으로 여긴다.
학습된 경쟁으로 많은 학생들이 평균 점수 이상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중요한 지표인 수능성적이 나오면 의대, 치대, 한의대, 서울대, 카이스트, 포항공대, 약대, 수의대, 연세대, 고려대 등 상위 1%의 명문대, 상위 4%의 상위권 대학 마지노선, 상위 10% 좋은 대학 마지노선을 정해서 학교에 들어간다.
그 마지노선은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불편하다. 대학의 간판이 취업의 중요하게 작용하기에 누구보다 좋은 간판을 얻어야 한다.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연애도 하고 술, 담배도 하면서 성인의 자유를 느끼기도 전에 취업 준비를 한다. 목표는 대기업이다. 적어도 중견기업 이상은 들어가야 남들이 보기에 멋지다. 중소기업을 다니는 것보다 대기업을 준비하는 취업 준비생이 더 멋지다.
졸업하면 회사에 다녀야 하고, 회사를 다니면 와인, 미식, 여행과 같은 고상한 취미는 있어야 한다. 인스타에는 근사한 사진이 가득하다. 올라가는 좋아요에 잠깐의 행복을 느낀다. 신라호텔 뷔페 주말 저녁 가격이 18만 원이 넘어도 그 정도는 써줘야 사회적 인정을 받는 느낌이 든다.
취업이 힘들어 30대에 회사에 들어가도 남들이 누리지 못한 것을 누려야 한다. 연애를 해야 하고 결혼도 하고 결혼하면 아이도 낳으면 좋겠고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나이에 따른 평균 연봉이 신경 쓰인다. 결혼을 하지 않고 아이를 낳지 않으며 젊음을 즐기는 것도 현명한 개인의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차가 없으면 무시당하니 차도 있어야 하고 내 집 마련은 필수다. 메뉴판에 정해진 모든 메뉴를 시키고 제 값을 치러야 잘 살고 있는 느낌을 받는다.
지금까지 일했던 분야를 벗어나 코딩을 배워 IT에서 일하고 싶다고 이야기했더니 회사 동료는 대뜸 너무 늦었다고 한다. 그냥 하고 싶어서 공부를 좀 하고 싶었는데 돌아온 답은 너무 늦었다는 말 뿐이다. 아니, 그럼 언제 배워야 적절한 시기인가?
취업을 위해서 미친 듯이 공부하는 나라에서 공부를 한다고 하니 이런 소리를 듣는 것이 우습다. 100세까지 산다고 하면 아직 절반도 살지 못한 나이인데 좋은 학교를 나오지 못하면 삶이 끝이 났고 앞으로 답도 정해져 있다는 태도는 사회 전반에 가득하다.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고 지금까지 오래 일했지만 평균을 충족하지 못하는 흔들리는 삶을 살고 있고 돈 안 되는 일은 이것저것 열심히 하지만 가끔 주위 사람들을 보면 지친다. 온라인 커뮤니티, 뉴스, 주변 사람들 모두 내 나이에는 안정적인 삶을 살고 걱정 없는 일상을 보낸다. 아이가 없는 부부는 각자 차를 몰고 다니며 7천만 원이 넘는 제네시스 GV80을 타고 다닌다.
주위에 별로 경제 사정을 속 시원하게 말하지 않는데 회사 동료는 집 값이 바닥을 친 것 같다며 집을 매수하는 것을 추천한다. 가끔은 회사에서 밥 먹는 것이 지겨워 근처에 순댓국을 먹으러 가면 가격이 이미 12,000원이 넘는다.
손님이 예전보다 줄어든 것 같아 사장님의 얼굴에 근심이 가득하다. 누굴 걱정할 입장은 아니지만 코로나의 여파와 물가 상승으로 식당 운영이 힘들었으리라. 그런 이야기를 하면 요즘은 누가 칼 들고 식당 하라고 했냐며 좋은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누가 하고 싶어서 할까? 40대만 돼도 회사에서 나가야 하고 50대는 일할 자리가 없어 급한 마음에 먹고살기 위해 대출이라도 받아서 식당을 하겠지.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 40이 넘어서 자리를 잡지 못했다면 큰일이다. 투자 실패나 장사를 하다가 망하거나 하면 삶이 위태로운데 절벽에서 직접 밀어준다. 커뮤니티에 인생 망했다. 답이 없다. 다시 태어나라. 등의 댓글이 쏟아진다. 그리고 나락이라는 소리도 달린다.
정해진 한국식 삶을 벗어나는 순간 우리는 트랙을 벗어난 경주마처럼 비난을 받아야 한다.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고 사회의 기대치에 맞추면서 우리 인생이 아닌 메뉴판의 인생은 완성된다.
메뉴판의 메뉴가 늘어나고 다른 사람의 관심이 커질수록 시도를 두려워하고 실패를 용서하지 못하는 사회가 된다. 자신이 도와주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타인의 실패에 모른 척 응원해줘야 한다. 30대에 취업을 못했다고 삶이 끝난 것이 아니다. 40대에 회사에서 나가게 되어도, 장사하는 가게가 망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많은 국가와 문화에서도 나이대 별로 평균을 중요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국가나 문화의 다양성이 자본주의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 같아 씁쓸하면서도 메뉴에 없는 삶을 상상하면서 내 주위에는 생각이 열려있는 평균을 강요하지 않는 사람들로 채우고 싶다는 욕심을 부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