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암이라는 소식 앞에서...

모든 게 멈춘 듯하지만 움직여야 할 시간

by 꿈꾸는자

아프신 아버지를 뵈러 잠시 한국을 방문 중이던 남편에게서, 호주로 돌아오기 3일을 앞두고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위내시경 조직 검사 결과가 나왔다며, 그는 짧은 말로 조심스럽게 말했다.


“위암이래.”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뭐? 그게 무슨 말이야?’라는 말만 되뇌었다. 무슨 상황인지도, 이게 현실인지도 전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고 한 번도 마음속에 그려본 적조차 없는 일이었다.


해외살이를 하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불안 중 하나는 한국에 있는 가족이 아프거나 위급하다는 연락을 받는 것이다. 다른 가족 소식도 아니고 남편에게서 그런 소식을 듣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단지 잠깐 한국에 다녀오는 길이었을 뿐인데, 그렇게 ‘위암’이라는 것이 아주 갑작스럽게 예고도 없이 우리의 삶을 덮쳤다.


급히 남편의 호주행 비행기 표를 취소했고, 남편은 더 큰 병원으로 옮겨 추가 검사와 수술 여부를 확인하기로 했다. 우리 가족에게 ‘암’이라는 단어가 찾아오다니. 남편은 얼마나 놀라고 불안할까.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머릿속은 걱정과 복잡한 생각으로 가득했다. 암에 대한 짧은 지식으로는 암 = 죽음이라는 단순한 등식만 떠올라 더 큰 공포로 다가왔다.


진단서를 다시 천천히 읽어보았다. ‘상세 불명의 위암’이라는 말과 함께 의심되는 병명으로 Signet Ring Cell Carcinoma(반지세포암종)라는 단어가 적혀 있었다. 검색해 보니 반지세포암은 암세포가 인장 반지(signet ring)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고, 드물고 진행이 빠른 위암의 한 형태라고 한다. 현미경으로 보면 일반적인 위암보다 더 많은 양의 점액을 생성하고, 이 점액 때문에 암세포가 주변 조직으로 더 쉽게 퍼질 수 있는 위암의 한 종류라고 한다. 그래서 더 깊고 빠르게 침투하며, 조기에 림프절이나 다른 장기로 전이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문제는 이런 특성 때문에 눈에 띄는 덩어리 형태로 보이지 않아 조기 발견이 어렵고, 증상도 늦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예후가 좋은 암은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수술로 절제할 수 있는 상태라면 결과가 그나마 나은 편이라는 말에 희망을 걸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그저 수술이 가능하기만을 바라고 있다. 남편의 마음을 생각하면 가슴이 저릿하고, 앞으로 우리가 마주해야 할 시간들을 떠올리면 두렵다. 그러나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단 하나, 남편 곁에 함께 있어주는 것이다.


곧바로 한국행 비행기를 알아봤고, 가능한 가장 빠른 일정으로 예약을 마쳤다. 앞으로 최소 두 달은 한국에 머물며 남편의 수술과 회복을 함께해야 할 텐데, 그전에 정리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았다.


작년부터 파트타임으로 상담학을 공부하다가, 올해는 네 과목을 들으며 풀타임 학생이 되었다. 학기가 3분의 2쯤 진행된 지금, 더 이상 이어갈 수 없게 되었다. 특히 대면 수업이 필수인 과목들이라 온라인으로 대체할 방법이 없을 것 같다. 또 다음 주부터는 대학에서 파트타임 근무를 시작할 기회가 생겼는데 부득이하게 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연락을 해야 했다. 참 하고 싶었던 공부였고, 오래 고민하며 준비하여 지원서를 내고 면접을 보고,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오기를 간절히 바랐던 일이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이, 갑자기 나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은 일처럼 느껴졌다.


공부를 마치지 못한 것도, 일을 시작하지 못하게 된 것도 아주 조금은 아쉬울 줄 알았는데, 막상 닥친 현실 앞에서는 그저 ‘빨리 한국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아이들 학교와 방과 후 프로그램에 연락을 돌리고 집을 정돈하는 일까지… 챙겨야 할 것들은 산더미 같았지만, 마음은 이미 남편 곁에 가 있었다.

마음이 복잡하고 믿기지 않는 순간들이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받아들이고, 움직여야 할 시간이다. 남편의 손을 잡고, 함께 이 시간을 견뎌내야 한다.


남편의 소식에 모든 것이 멈춘 듯하지만, 멈춰 있을 수는 없다. 지금은 일단 움직여야 한다. 마음은 무겁지만, 몸은 빠르게,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 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고, 감정은 그 뒤에 잠시 밀어두는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