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담당교수님과의 첫 만남, 그리고 ‘건강하길’ 산책

by 꿈꾸는자

모든 게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마음 한켠에 불안이 크게 자리하고 있었지만, 위암 진단을 받은 그날부터 한국에 도착한 지금까지 아이들 학교 등록부터 각종 행정 처리까지, 하루하루가 정신없이 흘러갔다.


오늘은 삼성서울병원 암센터에서의 첫 진료가 예약되어 있었다. 긴장된 마음으로 병원으로 향하며 남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때때로 긴 침묵이 이어졌다. 병원에 도착해 '암병원'이라는 글씨가 적힌 건물 안으로 들어설 때 느껴진 묘한 낯섦과 무게감은 지금도 선명하다. ‘암병원’이라는 이름만으로도 마음에 짙은 그늘이 드리워졌다.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다는 사실이 새삼 무겁게 다가왔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 병을 진단받고, 갑작스럽게 환자나 보호자, 가족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 걸까. 그저 다른 세상의 일이라고만 여겼던 일이, 이렇게 가까이 다가오니 조금씩 실감이 났다.


병원에서는 대기 순서를 문자로 안내해 주어, 아직 시간이 남은 우리는 잠시 바깥으로 나와 산책을 하기로 했다. 암센터 옆, 작은 동산처럼 조성된 산책길이 있었고, 그 길의 이름은 ‘건강하길’이었다.


이름 하나에 마음이 울컥했다. 병원을 찾는 모두가 진심으로 바라고 있는 단어일 테니까. 건강을 기원하는 간절한 바람이 오롯이 담긴 이름이, 순간의 위로처럼 느껴졌다.


남편과 손을 맞잡고 그 길을 천천히 걸었다. 아이들 없이 둘만 이렇게 나란히 걸은 게 얼마나 오랜만인지 모른다. 곳곳에서 눈에 띄는 유난히 다정해 보이는 부부들.

“저 부부는 원래 저렇게 다정했을까, 아니면 우리처럼 이런 일을 겪고 나서 더 가까워진 걸까.”

농담처럼 던진 말이었지만, 우리도 그런 마음으로 서로를 더 꼭 붙잡고 있었다.


점심 무렵이 되자 병원 직원들과 환자들, 보호자들이 더 많이 나와 그 길을 거닐었다. 우리도 그 틈에 자연 속에서 조용히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앞날은 여전히 불확실하고 두려웠지만, 그 순간만큼은 마음이 조금 평온해졌다. 데이트하는 사람들처럼 손을 꼭 잡고, 잠시나마 복잡한 생각을 내려놓을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진료 시간이 다가와 다시 병원 안으로 들어섰다. 대기실은 여전히 북적였고, 접수를 마친 뒤 한참을 기다린 끝에 교수님을 만날 수 있었다.


지금까지의 검사 결과를 종합해 볼 때, 위암은 1~2기 정도로 추정된다고 하셨다. 수술은 5월 12일 입원 후, 13일에 진행하기로 결정됐고, 수술 방법은 복강경 수술로 정해졌다. 피부를 크게 절개하지 않고, 작은 절개 부위를 통해 기구를 삽입해 진행되는 방식이라 회복이 빠르고 통증도 상대적으로 덜하다고 한다.


진료를 마친 뒤엔 추가 검사와 위내시경까지 이어졌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금식하고 갔던 터라 한 번에 검사를 모두 마칠 수 있었던 것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남편이 내시경을 받는 동안 짧은 기다림조차 길게 느껴졌던 걸 보면, 내 마음도 많이 두렵고 지쳐 있었던 것 같다.


수술 날짜가 확정되니 그제야 모든 게 더 현실처럼 다가왔다. 이제 가장 중요한 건 수술 전까지 남편의 건강 상태를 잘 유지하는 것이다. 감기나 열처럼 사소한 증상이라도 생기면 마취가 어려워져 수술이 미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며칠은 특히 더 조심하고, 온 마음으로 건강을 지켜야 한다.


아직은 모든 것이 낯설고 마음은 무겁지만,

이제는 남편의 보호자로, 남편 손을 잡고 함께 이 시간을 견뎌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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