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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쏘사 Jun 22. 2022

술酒님 01. 깔라만시 소주

깔라만시 먹고 꽐라 되다





때는 2018년도였다.


유자, 자몽, 청포도 등 이미 한차례 과일소주 열풍이 지나간 대한민국에 새롭게 붐을 일으킨 것이 있었으니… 바로 깔라만시주酒 되시겠다. 깔라만시주는 깔라만시 원액을 사서 소주에 직접 타 먹는 레시피로 인터넷에 돌아다니며 사람들의 욕구를 자극하고 있었다. 너도 나도 SNS에 깔라만시주 마시는 사진을 올리고 있던 것을 보며 나는 입맛을 다셨다. 저건 꼭 마셔야 한다!


하지만 일에 치이다 친구와 술 약속을 겨우 잡았을 무렵엔 이미 대기업에서 둘을 합한 '깔라만시 소주'를 내놓은 상태였다. 투명한 병과 노란색의 라벨이 섞여 탄생한 상큼한 자태는 마치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너네 섞어 마시는 거 귀찮지? 우리가 섞어 놨어. 얼른 사서 마셔 봐!


그날 우리의 약속 장소는 한신포차였다. 한신포차의 필수 메뉴인 옛날 통닭과 국물 닭발을 시킨 우리는 비장하게 깔라만시 소주를 시켰다. 그렇게 부딪힌 한 잔, 두 잔은 한 병, 두 병, 세 병이 되었고 우리는 순식간에 너무나 행복한 사람들이 되어버렸다. 누가 무어라 하면 별 것 아닌 것에도 깔깔대며 웃고, 울고…. 어찌 됐든 우린 그 행복한 감정을 떠안고 무사히 각자의 집으로 흩어졌다.


집으로 와 무슨 정신으로 씻고 잠들었는지 모르겠다. 귀를 괴롭히는 시끄러운 알람 소리에 눈을 떴다. 이때 난 집 근처 파리바게트에서 오전 근무를 하고 있었기에 6시 20분 정도에는 일어나야만 했다. 그러나 바닥은 자꾸만 나를 당겨댔고, 나는 중력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계속해서 철푸덕 누워 있었다. 그러다 30분이 되고, 40분이 되어갈 무렵 '이젠 정말 일어나야 한다!'라는 생각과 함께 울상을 지으며 일어났다.


쭉 펴져있던 몸을 일으키자 숙취가 속절없이 몰아쳤다. 울렁거리는 속과 깨질 듯한 머리. 마음 같아서는 일이고 뭐고 다시 누워 자고 싶었지만, 나는 돈을 벌어야 하는 자본주의의 최하층 개미였기에 끓어오르는 속을 꾹꾹 달래며 어거지로 씻었다.


그렇게 겨우 일터에 도착했다. 잠긴 문을 열고, 어제 남은 빵들을 정리하고, 도착한 물류들을 정리하는데 식은땀이 삐질삐질 흘렀다. 오전 근무에 있어해야 할 일을 한 차례 끝마친 나는 의자에 털푸덕 앉았다. 정말 이때의 나는 누가 건드리거나 말만 걸어도 토를 흩뿌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야. 너 괜찮아?"


같이 일하는 친구가 물었다. 누가 봐도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있었나 보다. 나는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안 괜찮아…. 입을 열자마자 토가 나올 것만 같아 그저 속으로만 말했다.


그때 출입문이 열리며 손님이 들어왔다. 앉아있던 몸을 일으키는데… 'X 됐다.'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지금 당장 화장실로 달려가 토악질을 하고만 싶었다. 그러나 같이 일하는 친구에게 민폐를 끼치기 싫어 나는 엄지손톱으로 손을 꾹꾹 눌러대며 겨우겨우 참아보았다.


손님이 몇 개 되지 않는 빵을 가져오고, 나는 말없이 포스에 그 내역을 찍었다. 원래라면 다 찍은 후 'XX원입니다. 봉투 필요하세요?'라며 물어야 하는데… 위에 말한 대로 입을 열면 금방이라도 토가 나올 것 같았기에 그럴 수 없었다. 나는 가격이 써져있는 포스기를 정중하게 가리켰고 손님은 아무런 내색 없이 카드를 내미셨다. 옆에선 친구가 빵들을 담아주었고 모든 과정은 속전속결로 이루어졌다. 손님이 나가고 문이 닫히자마자 나는 앞치마를 다급하게 벗으며 말했다.


"나 화장실 좀."


화장실로 달려가는 1분이 마치 억만 년의 시간 같았다. 재빨리 화장실 문을 닫은 난 그렇게 속죄의 시간을 가졌다. 명치는 꽉 막힌 듯 답답하고, 입에선 쉴 새 없이… 여기까지만 하겠다. 어쨌든 그렇게 쳐 마신 건 나였는데 괜스레 억울해서 눈물도 찔끔 났더랬다.


길고 긴 속죄의 시간과 억울함과 참회가 담긴 눈물도 한 방울 뽑아내자 울렁였던 속이 조금은 괜찮아졌다. 터덜터덜. 급박하게 달려갔던 아까와는 달리 힘없이 돌아오는 나를 보며 친구는 다시금 괜찮냐며 물었다. 나는 그런 친구에게,


"미안. 나 진짜 이제 일하기 전 날엔 술 많이 안 마실게."


라고 말했다. 상콤한 깔라만시에 속아 행복하게 꺾어마시던 어제가 너무나 원망스러웠다. 여태껏 술을 그렇게 쳐 마셔도 아무렇지 않게 출근을 했던 나였는데, 깔라만시 하나에 무너지다니. 퇴근 후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가자마자 나는 개지도 않은 이불에 누웠다. 바닥이 온몸을 잡아당겼다. 눈이 스르륵 감기고 나는 생각했다.


아, 진짜 깔라만시주 다시는 안 마신다 내가!!!


.

.

.


그러고 몇 년이 흐른 지금, 다시 마신 건 비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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