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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휘스토리 Mar 28. 2024

2부 : 개전 - 폴란드의 운명과 유럽의 행방

다시 시작된 "세계전쟁"

2차 세계대전의 시작을 알리는 유명한 사진. 독일 모터사이클 부대원들이 독일 - 폴란드 국경에 설치된 바리케이드를 치우고 있는 모습입니다. 폴란드 침공이 시작되었습니다.

다시 가동되어 버린 독일의 전쟁기계


  1939년 8월 31일 야심한 시각, 독일 - 폴란드 국경지대에 있는 작은 도시 "글라이비츠(Gleiwitz)"는 일련의 폴란드군에 의한 기습 공격을 받아 아비규환이 되고 맙니다. 이 폴란드 군인들은 라디오 방송국을 점거한 뒤 직원들을 모두 체포하였고, 직원을 강제적으로 동원하여 방송을 시작합니다. 그 방송의 내용인즉, 현재 처해있는 엄중한 안보상황에 대한 독일의 책임을 물으면서, 폴란드 정부의 독일에 대한 선전포고를 담고 있었습니다. 이 방송이 끝난 이후, 이 소동을 일으킨 폴란드 군은 유령처럼 사라졌습니다. 이들이 남기고 간 유일한 흔적은, 폴란드 군복을 입고 있는 몇 구의 시신들 뿐이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 밝혀진 바에 의하면, 이들은 독일 친위대 소속의 특수부대로서 폴란드 군복을 입고 자신들의 신분을 폴란드 군으로 위장한 뒤 가짜 선전포고문을 낭독한 것이었습니다. 즉, 폴란드 침공을 위한 독일의 교란작전이자 명분 만들기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현장에 남아있던 폴란드 군복을 입은 시신들은, 그 특수부대에 의해 폴란드 군복이 입혀진 채로 살해당한 수용소의 수감자들이었습니다. 당연하게도, 이는 폴란드 군에 의한 작전이었음을 주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거짓 증거들 중 하나였습니다.


  다음날인 9월 1일 새벽 4시를 조금 넘긴 시각, 독일은 폴란드를 향해 공격을 개시했습니다. 1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독일에 남아있던 몇 안 되는 구식전함인 "슐레스비히-홀슈타인(Schleswig-Holstein)"이 폴란드 군의 베스테르플라테(Westerplatte) 요새를 향해 자신의 구형주포의 불을 뿜기 시작한 것입니다. 1차 세계대전 당시에도 구형전함으로 분류되던 이 전함은, 이제 다음 세대의 전쟁에 동원되어 첫 포문을 열게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빠지게 된 것이었습니다.

단치히 항구의 앞, 베스테르플라테의 지근거리에 정박해 있는 "슐레스비히 - 홀슈타인"의 모습. 

  이 포문은 향후 6년간 계속해서 이어질, 수많은 포성의 첫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이 구식 전함은 수십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다시 전쟁의 최전선으로 보내지게 된 것이었습니다. 이렇듯 2차 세계대전의 첫 포탄은, 육해공군 중 가장 최약체였던 독일 해군에 의해서 발사되었습니다. 이러한 독일 해군의 재미난 비하인드 스토리는 뒤에 더 알아보도록 하고, 여기서는 다시 폴란드와 베스테르플라테 전투에 집중하도록 해보겠습니다. 




거대한 세계대전, 20년 만에 다시 시작되다.


  사실, 이미 전함 '슐레스비히 - 홀슈타인'은 단치히에 친선을 목적으로 하여 입항한 상태로 대기 중이었습니다. 이미 여기에는 즉각적으로 베스테르플라테 요새를 공격하기 위한 준비를 모두 마친 중대 규모의 공격대도 탑승을 마친 상태로 말이지요. 이들은 8월 26일, 전함의 주포사격의 엄호 아래 상륙하여 요새를 점령함으로써 단치히 진출을 위한 교두보 확보의 막중한 임무를 띠고 있는 부대였습니다. 그러나 8월 25일, 심상치 않음을 느낀 영국이 독일의 폭주를 제어하기 위해 폴란드와 군사동맹을 체결하자, 작전은 잠시 연기되었습니다. 


  이러한 영국의 외교적 노력(물론 많은 효과를 거두진 못했지만)과 폴란드의 항전의지 에도 불구하고, 독일의 움직임은 점차 노골적으로 변해갔습니다. 8월 26일, 항구에 정박되어 있던 슐레스비히 - 홀슈타인은 항구를 벗어나 이동하기 시작하였고, 강 상류를 향해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폴란드도 잔뜩 긴장한 상태로 이를 예의주시하고 있었습니다. 항구에서 벗어난 슐레스비히-홀슈타인은 특이한 군사행동 없이 며칠을 보냈습니다. 그야말로 폭풍전야였습니다. 


  드디어 운명의 1939년 9월 1일 새벽 04시 47분, 석탄의 힘으로 움직이는 이 구시대의 전함은 새로운 전쟁을 위한 포문을 열었습니다. 베스테르플라테 요새 앞바다 500m까지 접근한 '슐레스비히 - 홀슈타인'은 자신의 28cm 2 연장 주포를 이용한 무지막지한 포격을 감행합니다. 통상 당시의 전함들이 육군보다 훨씬 더 큰 구경의 주포로 무장해 보았음을 감안했을 때, 그 파괴력과 충격은 어마어마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전함의 엄호사격 아래, 앞서 말씀드렸던 독일의 상륙조도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의 임무를 베스테르플라테 요새를 점거함으로써 단치히 항구의 도입부를 열어젖히는 것이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의 시작을 알리는 유명한 사진. 베스테르플라테 요새를 향해 첫 포격을 개시하는 슐레스비히-홀슈타인의 모습.

  이러한 선제포격을 받은 폴란드군은 즉각 본국에 전쟁의 발발을 보고하고 방어태세에 들어갔습니다. 이 베스테르플라테 요새를 지키던 폴란드 군은 절대적인 열세에도 불구하고 격렬하게 저항했고, 다른 전선의 폴란드군이 돌파당하는 와중에도 홀로 고립되어 전투를 이어나갔습니다. 약 200여 명의 폴란드군이 주둔한 이 요새는 3천 명이 넘는 독일군을 맞아 일주일간의 방어전을 펼쳤습니다. 그것은 아무래도 협소한 반도라는 지형적 이점과 더불어, 폴란드군의 가지고 있던 저항정신의 존재가 그것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독일군의 폭격으로 베스테르플라테는 거의 초토화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폴란드군은 항전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약 일주일의 시간이 지난 이후, 이 폴란드군은 결국 탄약과 보급품이 고갈되어 독일군에게 항복하고 맙니다. 독일군은 이러한 폴란드군의 용기에 감명을 받아, 그들이 제대를 갖추고 정렬하여 행진하며 항복할 수 있도록 배려하였습니다. 마치 나폴레옹 시대의 낭만적인 전쟁을 보는 것처럼, 폴란드군은 자신들의 군모를 착용하고 무장을 해제하지 않은 채,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요새 밖으로 나와 정식으로 항복했습니다. 전쟁 초반, 아직까지는 이전 세대의 기사도가 얼핏 살아있는 듯 보였습니다. 

처참히 무너진 베스테르플라테에 계양되는 독일국기. 2차 세계대전 초기 있었던 격렬한 전투 중 하나였습니다.

  이러한 소규모 폴란드군의 분전에도 불구하고, 폴란드군은 모든 전선에서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독일군의 강력한 공세와 공군의 폭격은 폴란드군은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었습니다. 물론 독일군도 탄약보급 문제에서 큰 골치를 앓고 있었고, 심지어 "탄약장관"이라는 직책이 새로이 생겨날 정도로 히스테릭한 반응을 보이기도 할 정도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의 전황은 독일군에게 유리하게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폴란드의 항전은 아무 의미 없는 발악과도 같아 보였습니다.


  9월 14일, 독일군은 드디어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의 외곽에 도달했습니다. 이후 독일군은 바르샤바를 포위하고, 자신들의 강력한 공군력을 이용하여 어마어마한 폭격을 시작합니다. 작은 규모의 폴란드 공군이 나름대로 분투하며 선전했지만, 전쟁의 큰 흐름 자체를 바꿀 수는 없었습니다. 독일 공군, 루프트바페(Luftwaffe)는 이미 스페인 내전에서 얻은 많은 교훈과 경험, 그리고 기체의 우수성을 바탕으로 폴란드 영공을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Bf 109는 독일군의 주력 전투기로서, 특유의 운동성과 우수한 신뢰성을 바탕으로 하늘을 지배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영국의 스핏파이어라는 호적수를 만나 영국 상공에서 겨뤄보기 전까지, 그야말로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독일 공군 루프트바페의 주력 전투기, Bf 109의 모습. 가히 메서슈미트社의 역작이라고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더욱 커다란 폭풍이 다가왔습니다. 9월 17일, 폴란드의 동부전선에서 약 60만의 소련군대가 물밀듯이 밀려왔습니다. 독일과 맺은 불가침조약에서 함께 확인한 폴란드 분할을 실현시키기 위한 공세였습니다. 폴란드군은 끝까지 저항했지만, 결국 9월 21일을 기점으로 폴란드군은 동부전선에서의 조직적인 저항을 모두 포기하고 후퇴하기 시작합니다. 독일군의 빠른 진격으로 인해, 결국 지연전도 실패한 상황에서 이는 폴란드의 몰락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폴란드는 9월이 채 가기도 전에, 약 3주 만의 시간만에 몰락하고 말았습니다. 

폴란드 침공이 마무리된 뒤 서로 만나 악수하는 독일군과 소련군 장교의 모습. 몇 년 뒤, 지금의 이 모습이 무색하게도 이 두 세력은 지옥도와도 같은 절멸전쟁을 벌이게 됩니다.

  그러나, 사실 폴란드의 이러한 저항은 아예 의미가 없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영국과 프랑스는 체코에서의 일, 그러니까 뮌헨협정에서 당했던 굴욕을 다시금 반복하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이것보다도 더 나아가서, 영국과 프랑스도 이젠 전쟁을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는 상황까지 치닫게 되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국내외적으로 자신들의 위신을 지켜야 하는 입장에서, 체코를 버렸을 때 국제사회의 싸늘했던 시선은 당시 세계질서를 주름잡는 그들로서는 굉장한 부담이 아닐 수 없었기 때문이지요. 이러한 배경 속에서, 영국과 프랑스는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했을 시 "독일의 즉각적인 군사행동의 중지"라는 내용의 최후통첩을 독일에 보낸 터였고, 독일이 이를 무시하자 결국 선전포고함으로써 전쟁의 불씨는 더욱 타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영국과 프랑스의 무반응 : 가짜전쟁 (Phoney war)


  히틀러와 군 수뇌부는 이러한 영국과 프랑스의 선전포고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동쪽의 폴란드를 아직 확실하게 제압하지 못한 상황에서, 서쪽에서 국경을 맞대고 있는 연합국의 선전포고는 독일 수뇌부에 어마어마한 패닉을 주기에 충분했지요. <전격전의 전설>에서 나온 것처럼, 히틀러는 망연자실한 상태로 외무장관 리벤트로프에게 "이제 어떻게 할 건가?"라고 되물을 뿐이었으며, 리벤트로프는 충혈된 눈으로 머뭇거릴 뿐이었습니다. 

폴란드 침공은 2차 세계대전의 첫 단추를 끼웠습니다만, 독일은 아직 전쟁준비가 제대로 되어있지 못했습니다. 

  독일은 장기전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았으며, 특히나 1차 세계대전의 과오에서처럼 양면전쟁을 수행할만한 전쟁 수행체계로의 전환이 늦어지고 있었습니다. 특히나 탄약에서의 준비상태가 매우 미흡했지요. 역사에 만약이라는 것은 없지만, 만약 이때 프랑스와 영국이 국경을 넘어 독일을 향해 총력전을 펼쳤다면 아마 2차 세계대전은 여기에서 종결되었을 확률이 크기도 합니다. (물론, 이런 것은 훨씬 시간이 지난 현시대의 우리들이 여러 가지 정보들을 취합했을 때의 결론이지요. 그때 당시로서는 누구라도 확언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과 프랑스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소규모의 프랑스군이 국경을 넘어 독일 내부로 약간의 진출을 했다가, 다시 국경을 넘어 돌아가 마지노선에 틀어박힌 것이 전부였지요. 프랑스 국경에 배치된 독일군의 수준은 제대로 된 전투를 치를 수 있는 인적 / 물적 준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독일의 입장에서는 실로 천운에 가까운 일이었습니다. 이후, 독일이 1940년 5월 10일 대대적인 공세를 펼치기 전까지의 약 8개월의 기간 동안 양측은 서로 대치만 하고 교전은 하지 않는, 전쟁이지만 전쟁을 하지 않는 '가짜전쟁(Phoney war)'이라고 불리는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참호에서 편안한 시간을 보내는 영국군의 모습. 가짜전쟁 시기의 대표적인 모습이었습니다.

  이때 독일군은 "공격받지 않는 한, 독일군은 먼저 공격하지 않습니다!"라는 팻말을 크게 붙여두거나, 군악대가 나와서 신나는 노래를 연주하는 등, 국경의 분위기는 나름대로(?) 부드러웠습니다. 나치의 선전장관 괴벨스는 심지어 영국군과 프랑스군을 반목시키는 내용의 전단을 살포하면서 그 심리전은 더욱 심화되어 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겉으로 보이는 전선의 모습은 매우 편안해 보이기 그지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아주 잠깐동안의 숨 고르기에 불과했습니다. 양측 모두 이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아까 기술한 바와 같이, 독일은 장기전에 대한 준비가 되지 않았습니다. 1차 세계대전의 경험으로 미루어보아, 해상을 장악한 영국은 다시금 독일의 해상교역을 차단할 것이 뻔했기에, 자원의 확보와 이를 위한 항구의 안정적 확보가 무엇보다도 중요했습니다.


이제 독일은 새로운 수를 준비합니다. 과연 그것은 어떤 수일까요? 영국과 프랑스는 이제 어떠한 대응으로 이를 막아내려 할까요?




(3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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