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야간 해상결전, 벌어지다!
전쟁의 끝으로 달려가는 1944년은 비단 독일에게만 가혹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유럽에서 독일이 지난 전쟁에서의 승리를 뒤로 하고 처절하게 부서지는 동안(...) 일본도 미드웨이 해전과 콰달카날 전역에서 잇따라 패배하면서 점차 전쟁의 무게추가 서서히 기울어지고 있었지요. 일본은 전쟁수행능력의 대부분을 동남아시아의 석유와 고무 등 자원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었고, 이를 지켜내기 위해 온갖 노력을 쏟아부었습니다.
게다가 미 해군은 진주만에서의 피해를 복구하고 건실한 해군력을 건설하기 시작했습니다. 새롭게 건조되는 항공모함과 신형 전함은 물론이고, 진주만에서 큰 피해를 입었던 구형 전함들도 수리를 끝내고 하나둘씩 최일선으로 복귀해오고 있었지요. 게다가 미군 잠수함들의 과감한 공격으로 인해 일본의 제해권은 점차 줄어들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의 가장 큰 문제는 아무래도 해상 운송로의 확보였습니다. 동남아시아에서 확보한 석유와 고무 등의 자원을 일본 본국으로 수송하는 것조차 매우 버거워지고 있었습니다. 일본이 국가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모든 수송선의 3분의 1이 미군에 의해 격침되었고, 유조선의 경우는 50%를 망실한 상황이었습니다. 미 잠수함도 일본의 전시경제를 끊기 위해 필사적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러한 계획의 완성을 위해, 미국은 이제 중부 태평양에서의 대규모 반격을 시도하려 했습니다. 바로 미국의 권역 아래 있던 필리핀에 대한 탈환작전이 그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탈환작전의 시작은 레이테(Leyte) 섬에 대한 상륙작전으로 시작될 예정이었습니다.
일본은 이러한 미군의 상륙작전을 거부하기 위해, 그때까지 아끼고 아껴뒀던 연합함대의 거대 전함들을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정규 항공모함이 모두 격침당해 즈이카쿠 단 1대만이 남아있던 일본 해군에게는 전함을 활용한 근접 결전만이 남아있는 유일한 방법 중 하나였습니다.
일본은 애초에 미국과의 전쟁에서 질 것을 알면서도 개전을 강행한 이유 중 하나였던, 거대 전함 함대로 해상 결전에서의 승리를 거둬 미국과의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 레이테 섬을 둘러싸고 있는 좁은 수로는, 사정거리가 짧은 전함들이 항공모함들의 항공기들로부터 안전하게 미 함대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드디어, 대체 언제 할 것인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일본 해군의 "해상결전"의 날이 밝아온 것입니다.
1944년 10월 중순이 넘어가면서, 미군의 레이테 만 상륙은 점차 현실화되었습니다. 홀시 제독이 이끄는 미 함대는 항공모함을 주력으로 완전한 개편을 마쳤고, 항공전력에서 일본 해군을 압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 함대는 매우 조심스럽게 접근하며 항공정찰에 열을 올렸는데, 아직까지 일본 해군의 전함 함대가 근거리에서 출몰할 경우 매우 위험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이러한 미군의 조심성을 타파할 일본군의 계획은 나름대로 참신(?) 했습니다. 먼저 오자와 지사부로(小澤治三郞) 제독이 이끄는 항공모함 함대가 레이테의 북쪽 멀리에서 모습을 드러내며 미끼 역할을 수행, 미 함대가 오자와 함대를 공격하러 북쪽으로 북상하는 바로 그 타이밍에 구리다 다케오(栗田健男) 제독이 이끄는 전함 함대가 좁은 수로를 통해 레이테 만의 미 수송함대 앞에 출몰, 모두 격멸해 버리는 작전이었습니다. 구리다 함대의 진입을 위해 니시무라, 시마 제독의 함대는 레이테 만 남쪽의 수리가오 해협을 통해 돌입, 지원할 예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일본 해군은 그 내부에서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오자와 제독의 항공모함이 미끼가 된 타이밍에 근접전을 벌일 함대가 돌입한다는 것까진 좋았는데, 연합함대 장관의 명령은 "적 수송함대 격멸"을 제1목표로 하라는 것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최일선의 제독들은 이에 대해 "적 수송함대 격멸이 아닌, 적 주력함대를 격멸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따져 물었고, 이러한 함대결전 사상이 과연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아무도 몰랐습니다.
이렇게 입만 열 번 함대결전을 외쳐댄 일본 해군이었지만, 막상 결전에 들어간 전함들이 향후 레이테 만 해전에서 보여준 모습들은 졸전에 졸전을 거듭하는 엉망진창인 모습이었습니다. 명확한 작전목적을 가지고 공격해 들어온 미군이 보여준 분투와는 정반대로요.
이러한 작전 목적을 가진 일본 해군은 각자의 항구에서 출항, 레이테 만을 향해 항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구리다 제독이 이끄는 전함 함대의 임무였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전함인 야마토와 무사시를 중심으로 구성된 이 함대는 미 함대 주력이 비어있는 레이테 만에 돌입, 근거리에서 미 함대를 때려 부술 예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시작부터 미 해군은 강력한 공세를 퍼부었습니다.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전함 무사시가 미군의 항공기에 의해 공격받기 시작하였고, 이는 출항 전 일부러 눈에 띄는 밝은 색상으로 도색한 전함의 외관과도 시너지 효과를 일으켰습니다. 무사시는 거대한 몸집을 부둥켜 잡고 버텨내는 분투를 보여주었지만, 그렇기엔 너무나도 많이 두드려 맞아버려 회복하기 어려운 상태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결국 무사시는 1944년 10월 24일 19시 30분경, 시부얀 해의 깊은 심해로 가라앉기 시작했습니다. 구리다 제독의 적극적인 지시로 인해 구조활동이 펼쳐졌으나, 2,400여 명의 승무원 증 약 1,000여 명이 현장에서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여담으로, 이 무사시의 잔해는 지난 2015년 심해 속에서 발견되어 화제가 되기도 하였지요.
일본 해군의 결전 최종병기, 야마토와 무사시 중 무사시는 이렇게 허망하게, 미 전함을 만나보지도 못하고 격침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항공기에 의한 공격만으로 이렇게 거대 전함이 침몰했다는 점에서, 점차 해전의 양상은 변화되고 있었습니다. 아니, 이미 변화되었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리다 함대는 항진을 계속했고, 목표 수로를 향해 속도를 더욱 높였습니다.
미군의 경우에도 이러한 일본군의 움직임을 지속적으로 포착하고 있었고, 사전에 의도를 차단하기 위해 계속해서 작전을 수행했습니다. 그러나 미군은 지속적으로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는데, 결국 일본 해군의 항모전력을 찾아 격멸하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게다가 혹여나 기습적으로 근접전을 걸어올 일본 전함에 대한 걱정도 있었지요.
이러한 미군의 걱정이 하늘에 닿았는지, 홀시 제독은 이윽고 오자와 제독의 일본 항공모함 함대를 발견했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홀시 제독은 이를 일본 함대의 주력으로 판단하고 즉각 소수의 함대를 남겨둔 뒤 북상하기 시작했습니다. 소수의 구축함들과 경(輕) 항공모함만을 둔 채로, 미 해군 함대는 이렇게 일본의 미끼를 물어버린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니시무라와 시마 제독의 별동대도 수리가오 해협으로 항해, 같은 날 야간에는 해협에 돌입하여 구리다 제독이 레이테 만에 진입하는 북쪽과 더불어 양 방향에서 미 함대 잔존세력을 근접전으로 격파할 요량이었습니다. 미 해군 주력이 북쪽으로 가버린 바로 지금이 다시 오지 않을 찬스였습니다. 물론 수리가오 해협을 지키는 미 해군의 구식 전함이 있겠지만, 공격을 멈출 수는 없었습니다.
니시무라 함대를 발견한 미군은 즉각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했습니다. 수리가오 해협의 출구 부분에 비록 구식이지만 전함을 배치하고, 해협의 사이사이에 구축함과 어뢰정을 배치하여 근거리에서 일본 함대를 기습할 준비를 끝마쳤습니다. 이들 대부분은 진주만에서 가라앉았다가, 복수를 위해 수리를 마치고 돌아온 전함들이었습니다.
10월 24일에서 25일로 넘어가는 야간, 니시무라 함대가 수리가오 해협의 입구에 도착하여 일제히 돌입하기 시작했습니다. 전함 야마시로와 후소를 중심으로, 이들은 야음을 틈타 해협을 항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기습을 위해 절대적인 무선침묵을 지키고 있었고, 거기에 극도의 긴장감이 더해지며 후소가 자신의 좌현에 출몰한 의문의 함선에 오사를 하는 사고마저 발생하였습니다. 그 의문의 배는 같은 함대 소속인 순양함 모가미였지요.
계속해서 전진하던 일본 함대의 사이로, 미군 어뢰정의 어뢰 공격이 양옆에서 쏟아졌습니다. 일본 함대는 이를 피하기 위해 회피 기동을 시도했지만 너무 좁은 수로에 몰려있어 여의치 않았습니다. 게다가 본 함대에서 뛰쳐나온 구축함들이 발사한 어뢰들까지 날아왔고, 이 공격에 전함 후소가 피격되어 대열에서 이탈하는 참사가 벌어집니다. 거기다 구리다 제독이 탑승한 전함 야마시로마저 어뢰에 맞아 속도가 느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럼에도, 구리다 제독은 해협 돌입을 계속 시도했습니다. 어떻게든 구리다 함대의 북쪽 돌입을 위한 여건을 자신이 마련해줘야 한다고 되뇌었습니다.
이윽고, 거대한 강철비가 니시무라 함대를 360도 모든 방향에서 강타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두운 해협에 순식간에 대낮처럼 환해지도, 육중하고 거대한 함포에서 발사된 포탄들이 일본 전함들에 정확히 떨어지며 폭발과 불길을 일으켰습니다.
니시무라 제독은 미 해군의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 자신의 전함에도 대응사격을 지시하였습니다. 그러나 레이더가 모자란 일본 해군은 그저 미군 전함이 발사하는 불빛을 보고 그곳에 대응하는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게다가 측면을 드러내두고 전포를 사격하고 있는 미군에 비해, 머리를 보이고 돌입하는 자신들은 전면부에 있는 포탑으로만 대응할 수 있어 화력에서 너무나 부족한 상황이었습니다.
니시무라 제독은 구리다 함대의 돌입을 지원하기 위해, 구리다 제독에게 마지막 전문을 송신합니다. 레이테 만으로 돌입하여 옥쇄하겠다는 내용의 전문은 그러나 구리다 제독에게 전해지지 못했습니다. 기함 야마시로는 이미 엉망진창이 돼버린 상태였기 때문이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격을 지속하던 야마시로는 결국 새벽 4시경, 미군의 어뢰를 맞고 전복되어 침몰하고 말았습니다. 니시무라 제독을 포함, 10명을 제외한 모든 승무원이 현장에서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이를 뒤따라 오던 시마 함대는 어마어마한 피해를 입고 박살 나는(...) 니시무라 함대의 모습을 보고 해협의 중간 부분에서 돌입을 멈추고 후퇴하기 시작했고, 약간의 피해를 입었음에도 겨우 후퇴하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수리가오 해협 전투는 이렇듯 미군의 완승으로 끝나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와 더불어 다른 곳에서도 일본군의 전황은 그리 좋지 못했습니다. 미끼가 되는 데엔 성공했지만, 그 대가로 미 해군의 주력과 맞붙어야 했던 오자와 제독의 함대는 어마어마한 피해를 입고 말았습니다. 특히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일본 정규 항공모함의 생존함이었던 즈이카쿠가 잇따른 미 항공기의 공격을 받고 결국 격침되고 말았고, 이밖에도 치토세 등의 경 항공모함도 침몰해버리고 말았습니다. 휴우가나 이세 등의 구식 전함이 남아있었지만, 수백 킬로미터 밖에서 날아와 때려대는 미 항공모함을 찾아내기란 불가능했습니다. 결국, 오자와 함대도 이렇게 큰 피해를 입고 퇴각하면서, 구리다 제독의 어깨는 더욱 무거워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전황은 일본 해군에게 아직 완전히 등을 돌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자와 함대는 미끼 역할을 완벽히 수행했고, 수리가오 해협에 미 해군 전함이 발이 묶인 틈을 타 구리다 제독의 주력 함대는 레이테 만의 북쪽에 전격적으로 출몰하는 것에 성공한 것이었습니다. 레이테 만에 남아있던 미 해군의 잔존세력은 경 항공모함과 구축함으로 이뤄진 소규모 함급 뿐이었습니다. 이들 눈에 갑자기, 세계 최대 크기의 전함인 야마토가 급작스럽게 출몰하게 된 것입니다.
일본 해군의 최후 결전, 그리고 구리다 턴
북쪽 해협에서 모습을 드러낸 거대한 주력 전함 함대는 미군에게 공포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습니다. 거대한 전함 야마토와 전함 공고 등이 포문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미 잔존 함대를 이끌고 있던 킨케이드 제독은 즉각적으로 구원 요청을 날리고, 남아있던 모든 항공기를 동원하여 일본 함대를 공격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전함의 주포 사거리 안에 들어와 있던 상태, 이윽고 일본 전함의 포탄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비록 다른 지역의 전투에서 철저하게 패배해 버린 일본 해군이었지만, 소기에 생각하던 목적은 달성했습니다. 미 해군의 주력은 저 멀리 북쪽의 오자와 제독과 가까웠고, 전함들은 수리가오 해협에 있었습니다. 이 잔존함대를 모두 격파하고 상륙작전을 불가능하게 만들어버린다면, 해군 수뇌부가 생각한 "미국의 필리핀 탈환"을 막아낼 수 있었습니다.
미군의 경항공모함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보잘것없는 5인치 양용포를 쏘면서 끝까지 저항했습니다. 그야말로 손에 잡히는 건 모두 던져가면서 분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던 와중,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미군의 구축함이 거대한 전함을 향해 돌격하기 시작했습니다. 소중한 항공모함을 살리기 위해, 구축함이 전함을 향해 스스로 돌격한 것이었습니다.
이 구축함 4척은 한 척을 제외하고 모두 침몰했지만, 그들의 용기는 매우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전함에게 다가가 어뢰를 발사하였고, 이를 피하기 위해 회피기동을 하던 전함 야마토와 나가토는 회피하던 방향 그대로 전장에서 이탈해 버리는 참사를 겪고 맙니다(...) 어뢰를 피하고 나서 정신을 차려보니 너무 멀리 와버린 것이었지요. 야마토에 탑승해 있던 구리다 제독은 전황을 확인할 수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아직 전함 공고, 그리고 다수의 주력 순양함이 미 해군 항공모함을 사거리에 두고 있었습니다. 이들의 집중 사격으로 미 해군 항공모함 USS 갬비어 베이가 격침되었고, 점차 미 함대에 피격되는 함선이 늘어만 갔습니다. 이렇게 일본 해군의 승리가 다가온 듯했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맹렬한 기세로 공격하던 일본 함대가 갑자기 반전, 되돌아가기 시작했던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구리다 턴'이었습니다. 구리다 제독의 단독 판단으로 결행된 급작스러운 철수였습니다. 구리다 제독의 판단을 흐리게 한 요소는 다양했습니다.
미끼 부대가 되었던 오자와 함대로부터 미끼 역할을 성공했다는 연락을 받지 못했고, 또 구리다 함대의 후방에 새로운 미 함대가 발견되었다는 보고를 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게다가 구리다 제독은 현재 자기가 상대하고 있는 미 함대가 잔존 함대가 아닌, 주력 함대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리다 제독은 자신이 미 주력함대의 사이에 포위되었다고 착각하고, 승리의 바로 그 순간에 철수를 감행하고야 만 것입니다.
구리다 제독이 이 철수를 감행하면서, 다른 지역에서 엄청난 피를 흘리면서 성공을 기원했던 해상 결전이 모두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특히, 마지막 남은 정규 항공모함이었던 즈이카쿠를 희생시키면서까지 반드시 성공해야만 했던 레이테 만 돌입이었음에도, 그것을 성공해 놓고서도 눈앞에서 되돌아가버린 구리다의 판단은 두고두고 크나큰 비판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미군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천운이었습니다. 당시 생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젠 정말 죽었다고 생각한 바로 그 순간 일본 해군이 철수하기 시작했다는, 정말이지 영화와도 같은 장면이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미 해군의 분투를 바탕으로 미군의 레이테 상륙은 성공적으로 이뤄졌고, 나아가 필리핀 탈환도 성공하게 되었습니다.
이젠 일본은 필리핀을 망실하면서 동남아시아의 자원을 가져오는 모든 루트를 상실하였고, 게다가 지난 7월 잃었던 사이판 섬에서 날아오르는 B-29의 폭격으로 본토가 쑥대밭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바로 이 시점에서 일본이 전쟁을 그만두었어야 했다고 주장하기도 하지요.
아닌 게 아니라, 실제로 당시 일본 국내에서도 점차 전쟁을 멈춰야 한다는 여론이 고개를 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육군을 중심으로 한 강경파들의 목소리가 너무나 강력했고, 오히려 미군의 본토상륙을 기다리면서 죽창으로 무장하기 시작하는 광기를 보여주게 됩니다.
이제, 전쟁의 후반부가 시작되었습니다.
(20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