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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일은 다하고 다른 업무 참견하는 거니?

쓸데없는 얘기만 계속되는 회의, 통제의 환상

by 퉁퉁코딩

우리는 버튼 색깔 정하러 모인 게 아닙니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회의에서 핵심과 무관한 논의로 시간을 허비한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특히, 실무와 직접 관련이 없는 사람들이 자신의 전문 영역이 아닌 주제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다 보면, 정작 중요한 의사결정은 이루어지지 않은 채 회의가 끝나곤 합니다.


최근 저 역시 비슷한 상황을 겪었습니다.


서비스 사용성을 개선하기 위해 고객의 불필요한 인증 단계를 줄이는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였습니다. 회의의 목표는 명확했습니다. 제가 준비한 방안의 실행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었죠. 이를 위해 보안 리스크, 법적 이슈, 고객 이탈률, 서비스 온보딩 개선 효과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그 결과를 공유하고자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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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개발, 보안 실무자들이 모여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려야 하는 회의였습니다. 하지만 회의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실무자의 질문이 흐름을 깨뜨렸습니다.


"저 버튼 색깔은 파란색이 더 낫지 않을까요?"


그 순간, 회의의 분위기가 바뀌었습니다.


"버튼 문구는 ‘확인’보다 ‘다음’이 좋지 않을까?"

"취소 버튼 크기를 조정하는 것이 어떨까?"


이 회의는 디자인을 논의하는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더군다나 디자인 담당자조차 참석하지 않은 상황이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무자들은 자신의 전문 영역과 관계없는 디자인 관련 의견을 주고받으며 시간을 소비했습니다.


이런 일은 흔히 발생합니다. 기획 회의에서 디자인이 논의되고, 법적 검토 자리에서 기술적인 논쟁이 벌어지며, 데이터 분석 회의에서 마케팅 전략이 이야기되는 식입니다.


결국, 가장 중요한 의사결정을 논의할 시간은 부족했고, 회의는 본래 목적을 이루지 못한 채 끝나고 말았습니다. 이는 통제의 환상에서 비롯된 문제였습니다.


통제의 환상이란?

통제의 환상(Illusion of Control)은 사람들이 실제로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자신이 영향을 미치려 해야 더 안심이 된다고 느끼는 심리적 편향을 의미합니다. 이는 불확실성을 싫어하는 인간의 본능적인 심리에서 비롯되며, 자신이 상황을 어느 정도 조정할 수 있다고 믿을 때 심리적 안정감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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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제의 환상을 설명하는 대표적인 실험은 엘런 랭어(Ellen Langer)의 복권 실험(1975)입니다. 심리학자 엘런 랭어는 실험 참가자들에게 복권을 나누어 주고, 일부는 무작위로 배정된 번호를 받게 했으며, 다른 일부는 자신이 직접 번호를 선택하도록 했습니다.


실험 결과, 참가자들은 직접 선택한 복권을 더 높은 가치로 평가했으며, 심지어 복권을 되팔 때 더 높은 가격을 요구했습니다. 이는 사람들이 무작위적 사건에서도 자신이 선택권을 행사했을 때 더 큰 통제력을 느낀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일상 속 통제의 환상

우리는 일상에서도 통제의 환상을 자주 경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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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엘리베이터 버튼을 반복해서 누르기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 버튼을 여러 번 눌러본 적이 있나요? 사실 버튼을 한 번만 눌러도 엘리베이터가 도착하는 속도는 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여러 번 누르면 마치 자신이 엘리베이터를 더 빨리 부른 것 같은 착각이 듭니다.


2. 신호등 대기 중 횡단보도 버튼 누르기

횡단보도에서 신호등 버튼을 누르면 신호가 더 빨리 바뀔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이 버튼이 실제로 작동하지 않으며, 신호는 미리 설정된 시간에 따라 자동으로 변경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튼을 누르면 마치 자신이 신호를 바꾸고 있다고 느껴 안심하게 됩니다.


3. 부모나 직장 선배의 잔소리

집에서는 부모가 자녀에게, 직장에서는 선배가 후배에게 끊임없이 충고하고 조언하며 때로는 잔소리를 합니다. 그리고 흔히 이런 말이 따라붙습니다.

"이건 다 너 잘되라고 하는 소리야."
"거봐, 내 말만 들었으면 이런 일 안 생겼잖아."


하지만 이런 말들이 정말 상대방을 위한 것일까요? 사실 이는 부모나 선배가 자녀 혹은 후배의 행동을 통제할 수 있어야 더 나은 결과가 나온다고 믿기 때문에 나오는 반응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다릅니다. 그들의 경험이 항상 정답이 아니며, 상황에 따라 다른 해결책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언을 강요하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후배나 자녀가 자신의 뜻대로 행동해야만 자신이 불안을 덜 느끼기 때문입니다.


조직에서의 통제의 환상

조직 내에서도 통제의 환상은 흔하게 나타납니다. 특히, 실무자들이 자신의 전문 분야가 아닌 영역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단순한 개인의 성향 문제가 아니라, 조직의 구조적 특성과 인간의 심리가 결합된 결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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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문성 과신 – ‘나는 이것도 잘할 수 있다’는 착각

사람들은 자신의 전문성을 특정 분야에 한정 짓지 않고, 유사한 맥락에서도 적절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고 믿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기획자는 자신이 디자인 감각이 뛰어나다고 생각하고, 엔지니어는 비즈니스 논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고 착각합니다. 이런 확신이 강할수록, 실무자들은 본인의 역할을 벗어난 영역에서도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며 개입하려 합니다.


2. 책임 회피와 존재감 증명 – ‘내 의견이 있어야 의미가 있다’

회의에서 조용히 있는 것은 기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누구도 ‘가만히 있는 사람’으로 남고 싶지 않기에, 자신의 역할이 아니더라도 의견을 내야 ‘회의에서 존재감을 드러냈다’고 느낍니다. 하지만 이러한 행동이 반복되면, 본질적인 의사결정보다 논의의 초점이 흐려지고, 중요하지 않은 요소들이 부각되면서 회의의 효율성이 저하됩니다.


3.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감 – ‘내가 개입하지 않으면 일이 잘못될지도 몰라’

통제의 환상은 불확실성을 회피하려는 인간의 본능에서 비롯됩니다. ‘내가 개입하지 않으면 잘못된 결정이 내려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강한 사람일수록, 자신의 전문 영역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의견을 내고 간섭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는 실제로 통제할 수 없는 영역에서도 마치 자신이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믿는 심리적 메커니즘과 연결됩니다.


4. 조직 문화의 영향 – ‘우리는 다 같이 논의해야 한다’는 착각

조직 문화가 지나치게 중앙집권적이거나, 모든 사안을 함께 논의해야 한다는 분위기라면, 실무자들은 자신의 업무 외적인 부분에도 개입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느낍니다. 이 과정에서 업무의 역할과 책임이 모호해지고, 불필요한 논쟁이 반복되며, 최종 결정까지 시간이 지나치게 오래 걸리는 악순환이 발생합니다.


결국 이러한 개입이 반복되면, 의사결정이 지연되고, 핵심 논의가 산만해지며, 결국 조직의 실행력이 저하됩니다. 조직이 원활하게 운영되려면, 실무자들은 자신의 역할을 명확히 구분하고, 리더들은 불필요한 개입을 줄이며 자율성을 존중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권위자 편향과 통제의 환상

통제의 환상이 이전 글에서 이야기한 권위자 편향과 결합될 때 그 영향력은 더욱 강력해집니다.

https://brunch.co.kr/@ttungcoding/23


조직에서 직급이 높거나, 경험이 많은 사람이 내린 결정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더라도 쉽게 받아들여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는 실무자들이 자신보다 높은 직위의 의견에 반박하기 어려운 환경을 조성하며, 비효율적인 의사결정이 반복되는 원인이 된다.


예를 들어, 회의에서 디자인과는 관련 없는 개발 팀장이 특정 디자인 요소를 바꾸자고 하면, 실무자들은 그 의견이 최선인지 판단하기보다는 '팀장님이 말했으니 맞겠지'라고 생각하며 받아들이게 된다. 이는 권위가 높은 사람이 내린 결정이기 때문에 쉽게 의심하지 않고 따르는 심리적 기제가 작용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결정이 때때로 본질적인 문제 해결과 무관한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결국 비효율적인 의사결정이 반복되고, 실무자들은 깊은 사고와 창의성이 억제됩니다.


회의시 통제의 환상을 극복하는 3가지 방법

회의에서 실무자들의 본질적인 논의에 집중하도록 만들려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1. 참석자의 전문성을 강조하여 개입 범위를 제한하자

회의 초반에 참석자의 전문성과 역할을 명확히 정의하면, 불필요한 개입을 차단할 수 있습니다. 이들이 왜 이 자리에 있는지 설명하는 것만으로도 논의를 본질적인 주제로 유도할 수 있습니다.


"오늘 회의에는 개발과 보안의 전문가들이 참석해 주셨습니다. 개발 담당자께서는 제안드릴 방안의 기술적 구현 가능성을 검토해 주시고, 보안 담당자께서는 보안 리스크와 정책적 적합성을 고려한 의견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처럼 참석자의 역할을 명확히 하면, 기획자는 전략에 집중하고, 개발자는 기술적 구현을 고려하며, UX 담당자는 사용자 경험을 다루도록 논의가 자연스럽게 정리됩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전문성을 존중받을 때 더 신중하게 의견을 내고, 반대로 본인의 역할을 벗어나는 논의에는 부담을 느끼는 경향이 있습니다. 따라서 회의 초반에 역할을 확실히 구분해두면, 불필요한 개입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습니다.


2. 회의에서 반드시 결정해야 할 사항을 명확히 하자

회의가 산만해지는 가장 큰 이유는 논의의 방향이 불분명하기 때문입니다. 회의가 끝날 때까지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는지 명확히 설정하면, 참석자들은 본질적인 이슈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오늘 회의에서는 인증 절차 간소화 방안을 최종 결정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개발 일정이 지연되고, 제품 출시가 늦어질 위험이 있습니다."

이처럼 결정해야 할 사항과 그 이유를 분명히 밝히면, 참석자들은 논의를 핵심 주제에 맞춰 진행하게 됩니다.


때로는 상부의 지시를 활용하는 것도 효과적입니다.

"팀장님께서 오늘까지 결론을 내리라고 지시하셨습니다."

이러한 표현을 사용하면, 논의가 불필요하게 길어지는 것을 방지하고 결론을 내리는 데 집중할 수 있도록 유도할 수 있습니다.


핵심은 지금 결정을 내려야 하는 이유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마감 기한이 명확해지면, 참석자들은 자연스럽게 본질적인 논의에 집중하게 됩니다.


3. 결정할 수 없는 논의는 즉시 중단하자

지금 당장 결론을 내릴 수 없는 논의는 회의가 불필요하게 길어지게만 합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결정할 수 있는 주제만 다루고, 나머지는 과감하게 정리하는 것입니다.


"이 부분은 UX팀에서 최종 결정할 사안입니다. 오늘 논의 대상이 아니므로, UX팀이 검토한 후 다시 공유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 사안은 추가 데이터가 필요합니다. 충분한 자료 없이 논의하면 비효율적이니, 다음 회의에서 다루겠습니다."


논의가 산만해지려 할 때, 실무자가 명확하게 선을 그어주면 흐름이 본질로 돌아옵니다. 핵심은 회의에서 실질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것만 남기고, 나머지는 빠르게 정리하는 것입니다.



통제의 환상을 극복하면 커리어가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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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과 타인을 통제의 환상에서 벗어나게 만드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나부터 벗어나려 노력하는 것은 훨씬 쉽고, 무엇보다 의미 있는 변화가 될 수 있습니다. 통제의 환상에서 벗어나면, 커리어뿐만 아니라 업무 만족도도 극적으로 향상됩니다.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명확하게 의견을 제시하고 신속하게 의사결정을 내릴 때 업무 효율성이 극대화됩니다. 전문성이 없는 영역에 개입하려 하면 말만 길어질 뿐입니다. 각자의 역할을 명확히 구분하고 본인의 핵심 역량에 집중하는 것이 회의와 업무의 시간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이를 위해 조직은 역할과 책임(R&R)을 구분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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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을 억지로 조정하려 하면 처음에는 심리적 안정감을 느낄 수 있지만, 결국 한계를 깨닫고 무력감과 좌절감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러한 과정이 반복되면 오히려 더 강하게 개입하려는 역효과가 발생합니다. 통제할 수 없는 것에 집착하기보다, 내가 진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에 집중해야 합니다.


내가 먼저 다른 사람의 전문 분야를 존중할 때, 내 분야 또한 존중받을 수 있습니다. 실무자가 통제의 환상에서 벗어나면, 불필요한 피드백과 간섭에서 자유로워지고 진정으로 중요한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됩니다.


내가 주도하는 일과 결정하는 프로젝트가 늘어나면서 업무의 의미와 성취감이 커지고, 더 이상 ‘조직이 나를 통제한다’는 느낌에서 벗어나 ‘내가 조직을 움직이고 있다’는 감각이 자리 잡게 됩니다.


결국, 주어진 환경에 휘둘리는 사람이 될 것인가, 흐름을 주도하는 사람이 될 것인가는 나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통제할 수 없는 것에 얽매이기보다, 내가 진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순간, 커리어와 삶은 더욱 자유로워집니다.


이글을 영상으로도 만나보세요!

https://youtu.be/VGTQf3OTSj0?si=TNq7JQcuriAEKHB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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