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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운 놈 떡 하나 더 줄 거면, 차라리 미워해주세요.

잔소리꾼과 롤모델의 차이. 면허효과

by 퉁퉁코딩 Mar 15.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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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나를 생각해 주는 걸까?

"다 너 잘되라고 하는 말인 거 알지?"

"나는 내 사람에게 더 가혹해."

"내가 아끼는 사람 아니면 뭐라고 하지도 않아."


여러분도 이런 말, 주변에서 자주 듣지 않나요?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대개 우리와 가까운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직장 동료, 상사, 부모님, 배우자, 혹은 친구일 수도 있죠.

그리고 이들은 스스로를 조언을 아끼지 않는 배려 깊은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심지어 직장에서는 자신의 행동이 조직의 발전을 위해 악역을 자처하는 희생이라고까지 여기죠.

그런데, 이런 말이 정말 상대를 위한 걸까요? 아니면 그저 자기만족일까요?


브런치 글 이미지 1

제 직장에도 이런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잔소리꾼 선배가 있습니다.

본인은 이것이 조언이자 인생의 길라잡이라고 생각하지만, 후배들에게는 그저 잔소리, 간섭, 오지랖일 뿐입니다.


쉬지 않습니다.

누구든 한 번 걸리면, 한 시간 넘게 말을 쏟아냅니다.

간혹 큰 소리도 치고, 무례한 말을 섞기도 합니다.

그러고는 갑자기 인자한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말합니다.

"다 너 잘되라고 하는 말인 거 알지?"


그리고 한숨을 쉽니다.

마치 "너를 위해 이렇게 많은 에너지를 썼다"는 듯한 얼굴을 합니다.

체력이 소진된 듯한 표정을 지으며 뿌듯함을 느끼고, 곧이어 다음 타깃을 찾아갑니다.


브런치 글 이미지 2

이 시간이 도움이 되었다고 말하는 후배는 아직 단 한 명도 본 적이 없습니다.

대부분은 "한 시간 동안 들었는데,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며 역시 한숨만 쉽니다.


솔직히, 처음 이 선배와 대화했을 땐 ‘정말 나를 생각해 주는 걸까?’ 싶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깨달았습니다.

그 선배는 진짜 상대방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저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저런 말로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할 뿐이었죠.


아끼는 사람에게는 더 가혹해야 할까?

브런치 글 이미지 3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

이 말은 마음에 안 들지만 관계를 유지해야 하니, 억지로라도 챙긴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 속담을 변형해, 아끼는 사람에게는 더 가혹해야 한다는 논리가 직장에서 자연스럽게 적용됩니다.


만약 이 논리가 진실이라면,

부모는 사랑하는 자식에게 유독 심하게 대해야 하고,

선생님은 가장 아끼는 학생에게 따끔한 말만 해야 하며,

상사는 가장 신뢰하는 직원에게 가혹한 태도를 보여야 합니다.


하지만 다른 방법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배려와 존중으로 신뢰를 표현할 수 있습니다.

더 좋은 환경을 제공하여 사랑을 줄 수 있습니다.

성장을 위한 지원으로 직원을 아껴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아끼는 사람에게 더 가혹해야 한다는 심리가 계속 존재하는 것일까요?


다 널 위한 행동이니까

어쩌면, 이런 심리는 면허 효과(Moral Licensing)때문일 가능성이 큽니다.

면허 효과란, 사람들이 자신이 도덕적이거나 선한 행동을 했다고 믿을 때, 이후에는 다소 부정적인 행동도 허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심리적 현상입니다.


쉽게 말해, 나는 이미 좋은 일을 했으니까, 이제는 조금 나쁜 행동을 해도 된다는 심리적 면죄부입니다.

브런치 글 이미지 4

혹시 여러분 다이어트를 위해 열심히 운동한 후, 저녁은 안심하고 치맥으로 마무리한 적 없나요?

한 달 내내 절약하고, 월급이 들어오자마자 비싼 옷이나 식당으로 나에게 보상을 주진 않았나요?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오전 동안 집중해 공부한 후, 오후부터 저녁까지 유튜브보고 게임한 적은요?


이런 모든 사례들이 바로 면허 효과가 일상생활에서 나타나는 모습입니다.


"나는 차별하지 않는 사람이야"라는 착각 – 면허 효과 실험

면허 효과가 얼마나 강력하게 작용하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연구가 바로 Monin & Miller(2001)의 차별 실험입니다. 연구진은 참가자들에게 인사 담당자 역할을 맡기고, 특정 후보자를 채용하는 가상의 면접을 진행하도록 했습니다. 


참가자들은 무작위로 두 그룹으로 나뉘었는데, 첫 번째 그룹은 사전 테스트에서 흑인 지원자를 먼저 고용할 기회를 받았습니다. 즉, 이들에게는 "나는 인종차별을 하지 않는 사람이야"라는 도덕적 면허가 부여된 것이죠.


그런데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후의 채용 과정에서 이 그룹은 오히려 더 쉽게 차별적인 결정을 내리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반면, 사전 테스트 없이 바로 채용을 결정해야 했던 두 번째 그룹은 상대적으로 더 공정한 선택을 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이 연구는 사람들은 자신이 이미 도덕적이라고 인식하는 순간, 오히려 더 쉽게 비윤리적인 행동을 정당화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보여주죠.


면허 효과가 직장인에게 미치는 영향

바로 이 심리로 잔소리꾼 선배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나는 후배들에게 관심이 많고, 늘 도움을 주는 사람이야."

그렇기 때문에 강하게 말하는 것도, 오래 붙잡고 조언하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중요한 착각이 숨어 있습니다. 도움을 주었다고 해서 무제한 발언권이 생기는 건 아닙니다. 잔소리가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해도 된다는 면허를 발급받은 게 아닙니다. 이런 태도는 결국 일방적인 강요일 뿐입니다.


진짜 도움이 되는 조언은 듣는 사람이 원하는 순간, 필요한 만큼 제공되는 것이지, 도움을 줬다는 생각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설교가 아닙니다. 하지만 면허 효과에 빠진 선배들은 이를 인식하지 못하죠. 후배가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에 집중합니다. 후배들의 표정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 대화는 선배만 만족하는 시간이었다는 것을요.


롤모델은 말이 많지 않았다

브런치 글 이미지 5

제가 진짜 롤모델로 삼았던 선배는 말이 많지 않았습니다.

그저 자기 자리에서 묵묵히 일을 해냈고, 그 퍼포먼스는 감히 따라갈 수 없는 수준이었습니다. 잔소리 한마디 없이, 오로지 일하는 방식과 결과물로 후배들에게 많은 걸 가르쳐 주는 사람이었습니다. 바라보기만 해도 배울 것이 너무 많았고,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후배가 먼저 모르는 부분에 대해 도움을 요청하면, 본인의 시간을 기꺼이 내어 세미나를 열어주었습니다. 필요한 자료를 제공해 주고, 피드백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 피드백조차 "이건 이렇게 해야지!"라고 훈계하는 게 아니라, "왜 이렇게 했는지 설명해 줄 수 있을까?"라며 제가 스스로 고민하고 생각하도록 유도했습니다.


한 번은 선배와 같은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유관 부서와 희의를 진행할 때 이 선배는 늘 한 걸음 뒤에서 지켜보며 제가 회의를 주도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러다 제가 막히는 순간 혹은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는 순간, 꼭 필요한 한마디만 던져주고 다시 조용히 뒤로 물러났습니다. 저는 감시당하는 느낌이 아니라, 지켜준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더 주도적으로 회의를 이끌 수 있었고, 나중에는 스스로 더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선배라면 어떻게 했을지가 저의 업무 기준이 되었죠.


좋은 선배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는 선배였습니다.

그것이 후배들이 진짜로 원하는 롤모델의 모습이었습니다.


이 선배는 잔소리꾼 선배처럼 "내가 널 아낀다"는 말을 수시로 하지 않았습니다.

선배가 다른 부서로 떠나는 마지막 순간에야, 처음으로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너 정말 열심히 했고, 그래서 많이 아꼈어."


그 한 마디에 모든 것이 담겨 있었습니다.

잔소리보다 훨씬 깊은 울림이 있는, 진짜 선배의 말이었습니다.


후배들이 필요한 건 잔소리꾼이 아닌 롤모델

최근에 잔소리꾼 선배가 제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내가 후배들에게 아무리 잘해줘도, 대부분 그 고마움을 모르더라. 그래서 나도 후배들의 보답을 바라지 않기로 했다. 이제 마음을 비웠어. 그래도 후배들의 발전을 위해 계속 좋은 멘토가 되어 주려고 해."


그리고는 저의 롤모델인 선배에 대해 말을 덧붙였습니다.

"그 친구는 후배들한테 잔소리도 안 하고, 간섭도 안 하니까 애들이 좋아했지. 그렇게 자기 할 일만 하면 안 되는 거야."

그 말에서 엄청난 책임감과 사명감이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저는 선배에게 차마 직접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속으로 이렇게 되뇌었습니다.

브런치 글 이미지 6

"그만! 이제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세요."

"잔소리꾼이 아닌, 후배들이 닮고 싶은 롤모델이 되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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