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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사랑

달래해물된장찌개, 매콤우삼겹볶음

by 퉁퉁코딩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기숙사 생활과 자취를 오가며 독립하게 되었다.

밥을 챙겨 먹고 빨래를 돌리는 건 익숙해졌지만 명절만큼은 늘 본가로 돌아갔다.

군대에 있을 때를 빼고는 한 번도 거른 적이 없었다.

명절마다 본가에 내려가 전 부치는 냄새 속에서 나는 여전히 가족의 품 안에 있다는 안도감을 느꼈다.


그런데 올해 설은 달랐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본가에 내려가지 못한 것이다.

결국 설 당일에는 떡국 대신 전화기를 붙들고 가족의 목소리로만 명절을 맛보아야 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아쉬움이 묻어나는 목소리는 전화기를 넘어 고스란히 전해졌다.


설 연휴가 끝나고 본가에 다녀온 동생에게 연락이 왔다.

줄 게 있으니 저녁을 같이 먹자고 했다.

그런데 굳이 새언니도 꼭 같이 와야 한다며 못을 박았다.

뭔가 수상했다.


근처 식당에 마주 앉은 동생은 예쁜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아내의 것이라고 했다.

할머니가 따로 챙겨주신 용돈이었다.

게다가 동생에게는 특별한 당부까지 하셨단다.

이건 여자끼리 주는 거야.
오빠 통해서 주지 말고 꼭 새언니한테 직접 줘야 해.

동생은 할머니의 특급 미션을 완벽히 수행했다.


봉투 안에는 막 은행에서 받아온 신권 만 원짜리 열 장이 가지런히 들어 있었다.

할머니는 늘 용돈을 신권으로만 챙겨 주신다.

집에 돌아와 전화를 드려 감사 인사를 전했다.

아내가 먼저 너무 감사하다며 환하게 인사를 드렸고, 나는 옆에서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할머니, 그런데 왜 저를 거치면 안 되는 거예요?"

할머니의 대답은 간단했다.

"그냥, 여자끼리 주는 게 있어."

할머니의 방식에서는 손주며느리에게 가는 용돈의 유통 경로에 손자가 낄 자리가 없나 보다.



나는 일곱 살까지 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그때 우리 집은 넉넉하다고 말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할아버지는 전국을 떠돌며 지하철과 다리, 도로를 건설하는 작업반장이셨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집에 오실 수 있었고, 집안 살림은 오롯이 할머니의 몫이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께서 벌어오신 돈을 아끼고 또 아끼셨다.

집 앞 쓰레기 수거장에 덜 채워진 봉투가 보이면 우리 집 쓰레기를 들고나가 빈틈을 채우셨다.

지방에 사는 친척들과 통화할 일이 있으면 동전을 챙겨 공중전화 앞으로 가셨다.

얼마 되지 않는 쓰레기봉투 값, 전화비조차 아까워하셨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도 몇십 년째 가계부를 쓰고 계신다.

한글을 완벽히 배우지 못하셔서 가끔 맞춤법이 틀리기도 하지만, 그 장부 안에는 할머니의 모든 지출이 단 한 푼도 빠짐없이 빼곡히 기록되어 있다.

그렇게 모이고 쌓인 돈으로 할머니는 살림을 조금씩 더 키워 나가셨다.

결국 그것이 우리 가족의 든든한 밑천이 되어가는 과정을 곁에서 지켜본 어머니는, 며느리로서 할머니에게서 배운 점을 꼽으라면 단연 절약이라고 했다.


어린 내 기억 속의 할머니는 늘 아끼고 절약하셨지만, 그렇다고 내가 부족하게 자랐다고 느낀 적은 없다.

나에게만큼은 아끼지 않으셨다.

명절만 되면 꼭 새 옷을 입혀 주셨고, 식탁에는 늘 맛있는 음식이 차려졌다.

심지어 나를 위해 오랫동안 모아 온 돈을 꺼내 사회 초년생이던 아버지께 차를 한 대 뽑아주시기도 했다.

내가 태어나 돌도 지나지 않았을 무렵 크게 아파 병원에 입원했을 때였다.

그 이야기를 할머니는 아직도 꺼내신다.

너무 어려 혈관을 찾지 못해 이마에 링거바늘을 꽂았다고 한다.

그 일을 겪으신 후 할머니는 내가 아프면 지체 없이 병원에 데려가야 한다며 과감히 차를 사주셨다.

그 차는 대우에서 야심 차게 출시했던 '에스페로'였다.

90년대 초, 신입사원이던 아버지가 그 차를 몰고 회사에 출근하자 사람들의 모두가 놀란 눈빛으로 바라보았다고 한다.



할머니의 지갑은 돈이 나오는 건 고사하고, 지갑 자체를 구경하기도 힘들다.

그런데 요즘은 상황이 달라졌다.

그 귀하디 귀한 지갑이 이제는 손자가 아니라 손자며느리를 향해 활짝 열린다.

최근에도 할머니는 아내에게 따로 용돈을 챙겨주셨다.

올해 들어서만 벌써 두 번째다.

역시나 나한테 주면 안 된다며 꼭 아내가 직접 쓰라는 신신당부도 빠지지 않았다.

아마도 할머니는 본인은 아끼며 살며 입고 싶은 것 못 입고, 먹고 싶은 것 못 드셨지만 손자며느리만큼은 그러지 않길 바라시는 것 같다.


아내는 할머니가 주신 용돈을 책장 위에 잘 보이도록 예쁘게 올려두었다.

할머니의 사랑이 담긴 신권이 방에 있으면 왠지 좋은 일이 많이 생길 것 같다는 이유였다.

집에 도둑이 들면 어쩌나 까지 걱정하시며 현금과 귀중품은 늘 집 안 구석구석에 꼭꼭 숨겨두는 할머니가 보시면 기겁하실 광경이다.



할머니께서 용돈만 주신 건 아니다.

우리 집 냉장고만 열어도 할머니의 손길이 가득하다.

냉장실에는 구수한 된장이 자리 잡고 있고, 그 옆에는 풋고추와 청양고추가 줄지어 서 있다.

김장김치는 두말할 필요도 없다.

냉동실은 더 풍성하다.

달래, 호박, 파 같은 채소들이 가지런히 얼어 있다.

이 모든 것들은 할머니가 직접 담그시거나, 기르시거나, 아니면 산에서 채취해 오신 것들이다.

가끔은 나물 무침이나 볶은 고기까지 손수 만들어 보내주신다.

그래서 우리 집 냉장고는 웬만한 마트가 부럽지 않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마트의 상품에는 가격표가 붙어 있고, 우리 집 냉장고 속 채소에는 값을 매길 수 없는 할머니의 마음이 붙어 있다는 점이다.


오늘처럼 뭘 특별히 해 먹을지 떠오르지 않을 때는 냉장고 속, 할머니가 보내주신 재료들이 답이다.

할머니의 사랑으로 가득 찬 냉장고를 가끔 비워주어야 다음번 사랑이 들어올 자리가 생긴다.

먼저 달래해물된장찌개를 끓였다.

물에 코인육수를 풀고 된장과 고추장을 더한다.

물이 팔팔 끓기 시작하면 파, 양파, 호박, 고춧가루를 넣는다.

이어서 새우와 조갯살, 청양고추가 차례로 합류한다.

국물은 점점 깊어지고, 냄새는 점점 참기 힘들어진다.

어느 정도 끓으면 두부와 달래를 넣어 마무리했다.


옆에서는 아내가 우삼겹도 볶아 달라며 주문을 넣는다.

하나뿐인 단골손님의 부탁이니 들어줘야 한다.

땅콩 고추기름에 마늘과 파를 볶아 향을 내고, 우삼겹과 양파를 넣는다.

소금과 후추로 간을 맞추고, 고기가 노릇노릇 익을 즈음 깻잎을 찢어 넣는다.

마지막으로 화조유를 한 바퀴 두르자 매콤우삼겹볶음이 완성됐다.

그림2.jpg



완성된 요리에 할머니표 김장김치를 곁들이니 상차림이 더없이 든든해졌다.

찌개 맛을 보니, 역시 시판 된장은 감히 따라올 수 없는 구수함이었다.

할머니가 직접 담근 된장 속에서 모든 채소와 해물이 제자리를 찾은 듯 어우러졌다.

쌉싸름한 달래까지 합세하니 한 숟가락에 땅과 바다가 동시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이 귀한 된장은 아까워서 수육 같은 요리에 쓰지 않는다.

오직 된장찌개용으로만 허락된다.


아내는 연신 맛있다며 된장찌개에 밥을 말아 고기와 함께 흡입했다.

그 모습을 보며, 이 장면을 할머니가 직접 보신다면 얼마나 뿌듯해하실까 생각했다.

밥을 다 먹고 나자 아내가 말했다.

"오빠, 이건 무조건 할머니께 전화드려야 해."

그 말투는 꼭 맛집 리뷰를 남겨야 직성이 풀리는 손님 같았다.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곧장 할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아내는 귀엽게 웃으며 연신 감사 인사를 전했다.

"할머니, 보내주신 달래로 오빠가 된장찌개를 끓여줬는데 너무 맛있었어요."

맛있게 먹었으면 다행이라며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할머니의 목소리도 한결 밝아졌다.

"곧 추석이잖아요. 그때는 꼭 같이 내려갈게요. 보고 싶어요."

무뚝뚝한 손자인 내가 평생 흉내조차 내지 못할 애교 섞인 말투로 아내는 통화를 마무리했다.



절약이 몸에 밴 할머니에게 전화는 늘 '용건만 간단히'였다.

요즘 휴대폰 요금제는 길게 통화해도 요금이 오르지 않는다고 설명드려도, 평생 이어온 습관은 쉽게 변하지 않았다.

연애 시절, 아내는 내가 할아버지와 할머니께 전화를 드리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두 분 모두와 대화를 나누고 전화를 끊자 아내는 벌써 끊은 거냐며 깜짝 놀라 물었다.

나는 평소처럼 한 건데 말이다.

그래서 통화 시간을 확인해 보니 17초였다.

호기심에 이전 통화 기록을 쭉 살펴봤더니, 50개가 넘는 통화 중 1분을 넘긴 건 단 두 번, 가장 짧은 건 무려 14초였다.


그런데 아내와 결혼한 뒤로는 할아버지, 할머니와 통화하는 횟수도, 통화 시간도 눈에 띄게 늘었다.

아내가 틈날 때마다 전화드리자고 권한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통화가 2분을 넘기는 일도 생겨났다.


이제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모두, 전화를 건 내게 "밥은 먹었니? 바쁘지?" 하고는 곧장 아내부터 찾으신다.

어떨 때는 전화를 받자마자 다짜고짜 아내와 같이 있는지부터 확인하실 때도 있다.

아내의 웃음과 할머니의 기쁨 덕분에, 하나밖에 없는 손주는 이렇게나 밀려나고 있다.


아내의 후기

달래해물된장찌개
★5.0점
할머니께서 보내주신 된장과 달래를 넣어 끓인 된장찌개는 정말 일품이었습니다.
각종 채소와 해산물, 두부까지 조화롭게 어우러져 깊고 구수한 맛을 냈습니다.
마치 식당에서 먹는 것 같으면서도 집밥 특유의 따뜻함이 느껴져 건강하면서도 굉장히 맛있었습니다. 몇 그릇을 리필해 먹었는지 모릅니다.ㅎㅎ

매콤우삼겹볶음
★4.7점
제가 특히 좋아하는 우삼겹에 고추기름과 화조유를 더하니 스트레스가 단번에 풀리는 맛이었습니다. 건강을 잠시 제쳐둔다면 매일매일 먹고 싶을 만큼 중독적인 메뉴입니다.ㅎㅎ


P.S.

내가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작고 아담한 아내를 보시곤 많이 먹어야겠다고 말씀을 하실 참이었다.

그런데 식사 자리에서 아내가 처음 맛본 향어 비빔회를 세 그릇이나 뚝딱 해치우는 모습을 보시곤, 그 말이 목구멍에서 도로 들어갔다고 한다.

이미 너무나 충분히 잘 먹고 있어 더 먹으라는 말을 차마 하실 수 없으셨던 것이다.

그 뒤로는 자꾸 뭐라도 하나 더 챙겨 보내시며, 이걸로 아내에게 맛있는 거 해주라고 하신다.

다행히도 손자가 손자며느리에게 밥을 얻어먹는 게 아니라 열심히 해주기만 해도 괜찮다고 여겨주시는 분들이다.

덕분에 나는 '요리하는 손자'로, 아내는 '밥 잘 먹는 손자며느리'로 사랑받고 있다.

집안의 역할 분담이 이보다 더 완벽할 수 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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