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삼겹 볶음면
요즘 우리 부부에겐 문제가 하나 있다.
부자까진 아니어도 먹고사는 데 지장은 없으니 경제적인 문제는 아니다.
아직 아이가 없으니 육아나 자녀 교육 문제도 아니다.
사소한 갈등이나 취향 차이도 아니다.
하지만 이건 일상의 리듬을 흔들고, 건강까지 위협한다.
바로 수면 패턴 문제다.
낮에는 좀비, 밤에는 박쥐.
인간으로 살아가는 건 하루 네 시간 남짓이다.
아침엔 졸려서 말수가 줄고, 점심을 먹고 엘리베이터 버튼 앞에 서면 몇 층을 눌러야 할지 헷갈린다.
저녁이면 도저히 못 버티겠다며 쓰러지듯 잠들고, 꼭 열한 시쯤 눈이 번쩍 떠진다.
결국 새벽 두 시쯤, 뒤척이다 옆을 보면 아내의 눈도 말똥말똥하다.
언제부터였을까?
곰곰이 떠올려 보니 문제의 시작은 바로 그날이다.
점심을 먹고 너무 피곤해 오후 한 시쯤, 잠깐 눈만 붙이자며 낮잠을 청했던 어느 주말이었다.
그런데 '잠깐'이란 생각은 너무나 위험했다.
눈을 뜨니 저녁 여덟 시, 창밖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그 이후로 수면 패턴은 산산조각이 났다.
처음엔 나만 고생했는데, 어느새 아내까지 옮아버렸다.
같이 살면 웃음도 닮고 습관도 닮는다더니, 하다못해 수면 패턴까지 공유할 줄이야.
요즘 들어 우리 부부는 야간 근무 동료 같은 사이가 되어간다.
커피를 마시는 것도 아닌데, 도대체 왜 이렇게 수면 패턴은 다루기 힘든지 모르겠다.
이 시간에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하면 좋으련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몸은 코끼리처럼 무겁고 정신은 마시멜로처럼 흐물흐물하다.
결국 우리는 책도 못 읽고, 밀린 일도 못 하고, 오직 스마트폰만 만지작거린다.
그러다 보면 또다시 새벽이 훌쩍 지나간다.
특히 주말에는 낮잠을 참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올림픽 금메달 역도선수도 못 드는 게 바로 눈꺼풀이다.
결국 우리는 또 낮잠이라는 덫에 걸려들었다.
눈을 뜨니 세 시간이 훌쩍 지나, 어느새 저녁이었다.
우리의 수면 패턴은 다시 무너졌다.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배가 고프진 않았지만, 문제는 저녁을 건너뛰면 곧 '야식의 악마'가 찾아온다는 것이다.
그 악마는 집요하다.
처음엔 치킨을 속삭이고, 그 유혹을 간신히 떨쳐내면 라면을 들고 나타난다.
겨우 참아내면 이번엔 족발, 그다음은 햄버거.
메뉴를 바꿔 가며 끊임없이 달콤하게 속삭인다.
만약 그 유혹에 넘어가면, 수면 패턴은 더 깊은 나락으로 빠진다.
부른 배를 안고 바로 잠든다는 건 애초에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조금이라도 수면 패턴을 회복하기 위해, 간단히라도 저녁을 먹기로 했다.
냉장고를 열어 재료들을 확인했다.
냉동실에는 마라상궈에 쓰고 남은 우삼겹과 짬뽕을 하고 남은 중화면이 자리하고 있었다.
신선칸에는 잡채밥의 흔적으로 각종 야채들이 뒤엉켜 있었다.
잠에서 막 깬 비몽사몽 한 상태에서, 긴 조리법은 사치였다.
이럴 땐 단순하게, 다 넣고 볶는 게 답이다.
오늘의 메뉴는 우삼겹 볶음면으로 결정됐다.
먼저 달궈진 팬에 기름을 두르고 파와 다진 마늘을 넣었다.
수십, 수백 번 맡아온 향이지만 이상하게 질리지 않는다.
곧장 우삼겹을 넣으니, 지글지글 기름이 튀며 본격적으로 식욕을 자극했다.
고기의 붉은 기가 사라질 즈음, 대기 중이던 야채들을 한꺼번에 쏟아 넣었다.
야채는 뭘 넣어도 괜찮다.
이번에는 양파, 당근, 피망, 표고버섯, 목이버섯, 백목이버섯을 사용했다.
양념도 간단하다.
간장으로 깊이를 더하고, 굴소스로 감칠맛을 얹고, 올리고당으로 윤기를 입힌다.
소금과 후추로 마무리하고, 마지막에 식초 몇 방울로 산미를 얹어준다.
면은 삶아 바로 팬에 넣었다.
보통은 전분기를 빼려고 찬물에 헹구지만, 이번엔 과감히 생략했다.
꾸덕한 식감을 살리기 위해서다.
면을 반죽하듯 치대며 볶으니, 소스가 면발에 촘촘히 스며들었다.
마지막으로 참기름을 살짝 두르자 고소한 향이 퍼졌다.
완성된 면을 그릇에 담고, 반숙 계란프라이를 하나 올린다.
노른자는 젓가락만 대도 촉촉하게 흘러내리도록.
깨를 솔솔 뿌리니 비로소 완성이다.
반찬은 단출하게 김치 하나뿐이었지만, 간장과 굴소스의 맛이 중식집 못지않게 분위기를 채워 주었다.
간도 딱 맞았다.
우린 후루룩 소리를 내며, 배가 안 고프다던 사람이 누구냐는 듯 맛있게 흡입했다.
그런데 볶음면을 반쯤 먹었을 때, 아내가 갑자기 비장하게 선언했다.
9월의 목표는 수면 패턴 바로잡기야!
그 눈빛은 놀라울 만큼 진지했다.
마치 세계 평화를 결의하는 유엔 총회 대표 같았다.
하지만 그 결의에 찬 눈빛, 사실 낯설지 않았다.
아내가 새로운 계획을 세울 때마다 늘 보아왔던 바로 그 눈빛이었다.
아내가 취준생이던 시절, 자기소개서에 쓸 취미와 특기를 놓고 한참을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나는 그 옆에서 장난을 참지 못하고 끼어들었다.
취미는 계획 세우기,
특기는 취미 안 하기 어때?
아내는 '나 지금 진지하다, 농담 금지'라는 표정을 지었지만, 내 눈에는 그저 '귀여운 경고'로만 보였다.
대학생이던 시절도, 취업을 준비하던 시절도 아내는 계획 세우기의 달인이었다.
시험 기간 공부 계획, 다이어트 계획, 취업 준비 계획 같은 거창한 것들은 기본이었다.
게다가 영양제 챙겨 먹기, 자극적인 음식 줄이기, 청소 잘하기, 일기 쓰기, 예쁜 말 쓰기 같은 소소한 항목까지 다이어리에 꼼꼼히 적어 넣었다.
그 빼곡한 다이어리는 우주선 발사 계획표도 울고 갈 만큼 정교했다.
하지만 문제는 실행이었다.
작심삼일은 고사하고, 어떤 건 작심 하루도 안 가고 끝나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매번 당당했다.
이번에는 달라
그 표정은 진지했고, 눈빛은 불타올랐다.
뜨겁게 타오르는 횃불 같았지만, 실상은 심지가 너무 짧은 폭죽 같았다.
화려하게 '펑' 터지고 나면, 남는 건 나의 피식 웃음뿐이었다.
아침마다 꼭 챙겨 먹겠다며 대량으로 주문한 해독주스.
처음 며칠은 성실하게 마시는 듯 보였다.
하지만 어느새 냉장고 구석에서 자리만 차지하다가, 결국 소비기한이 다 되어 서른 팩이 한꺼번에 쓰레기통으로 향했다.
운동도 다르지 않았다.
열심히 해보겠다며 운동 인증 모임에 가입해 사진을 올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땀이 흥건히 젖을 만큼 열심히 운동한 뒤 뿌듯한 표정으로 인증샷을 남겼다.
그런데 2주쯤 지나자 사진은 계속 올라왔지만, 운동 시간은 점점 짧아졌다.
결국 남은 기간에는 1분짜리 스트레칭으로 버티며, 벌금을 피하기 위한 인증샷만 올렸다.
감사일기도 비슷했다.
매일 쓰겠다며 귀여운 돼지 캐릭터가 그려진 감사 노트를 무려 10권이나 사 왔다.
당장이라도 '감사의 여왕'이 될 듯한 기세였다.
하지만 결국 한 권도 끝까지 채우지 못한 채, 나머지 아홉 권은 아내 방 어딘가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다.
덕분에 돼지 캐릭터들은 '방치'의 운명을 맞고 말았다.
하지만 모든 계획이 그렇게 짧게 끝난 건 아니었다.
몇 달은 꾸준히 이어지며, 아내가 눈에 띄게 행복해하던 시기도 있었다.
그것은 바로 '미라클 모닝'이다.
어느 날 아내는 새벽을 정복하겠다며 비장한 눈빛으로 실행을 선언했다.
그리고 곧바로 실천에 나섰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스스로에게 선물이 있으면 더 즐겁지 않겠냐며, 매일 저녁 거실 테이블에 티백과 간단한 다과, 영양제, 일기장 등을 예쁘게 차려 두고 잠들었다.
마치 자기 자신을 위해 작은 파티를 준비하는 듯했다.
그날부터 아내는 새벽 공기를 들이마시며 차를 마셨고, 일기를 쓰고, 공부도 했다.
창밖의 새벽 풍경을 배경 삼아, 혼자만의 드라마 주인공이 된 듯했다.
나도 일찍 눈이 떠졌을 때는 함께 새벽 산책을 나가곤 했다.
사람 하나 없는 카페 거리를 걷다 보면 물소리가 들리고, 참새와 까치가 아침을 깨우며, 고양이는 졸린 눈으로 우리를 힐끔거렸다.
운이 좋으면 오리 가족까지 합류했다.
그리고 일찍 문을 연 빵집이 보이면 망설임 없이 들어가 갓 구운 빵을 집어 들던 시기였다.
수면 패턴을 반드시 다잡겠다며 굳은 결심을 했지만, 정작 방법을 몰라 며칠을 헤매던 아내는 결국 예전의 즐거웠던 추억을 꺼내 들었다.
다시 한번, 미라클 모닝을 선언한 것이다.
그리곤 식탁 위에 또다시 자신만의 선물을 정성스레 차려 놓았다.
커피 드립백과 영양제를 가장 좋아하는 상자에 담아 두고, 그 옆엔 예쁜 커피잔, 귀여운 스탠드, 건강주스 한 팩까지 정렬해 놓았다.
그리고 밤 열한 시쯤, 아내는 꼭 일찍 잠들겠다며 침대로 향했다.
나는 옆에 누우며 일찍 일어나면 나도 깨워 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함께 있으면, 그곳이 불 꺼진 방의 침대라 해도 늘 즐겁다.
잠들기 전 수다를 나누다 깔깔 웃다 보니, 어느새 시계는 새벽 한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아내는 억지로 눈을 감고 잠들었지만, 나는 그 뒤에도 한참을 뒤척이다가 겨우 잠이 들었다.
그래도 아내는 계획을 지켰다.
예정된 시간에 일어나 미라클 모닝을 보냈다.
늦게 잠든 내가 너무 곤히 자는 바람에 차마 깨우지 못했다고 했다.
아침에 눈을 뜬 나에게는 아내의 미라클 모닝 인증샷이 기다리고 있었다.
과연 이번 계획은 얼마나 이어질까.
뭐, 길게 가지 않아도 괜찮다.
아내에겐 계획 세우기가 취미고, 지키지 못하는 게 특기다.
나의 특기는 그런 아내의 특기를 놀리는 일이다.
그저 내게 또 하나의 '놀림감 취미'가 생겼구나 하고 웃어넘기면 그만이다.
그럼에도 단 하나,
몇 년째 꾸준히 지켜지는 계획이 있다.
나와 결혼해, 함께 행복하게 살자는 그 계획.
그거면 충분하다.
아내의 후기
우삼겹 볶음면
★4.8점
마제소바의 꾸덕한 면과 중식 잡채가 동시에 떠오르는 맛이었습니다.
마제소바 같은 쫀득한 면발과 부드럽게 넘어가는 식감, 그리고 갖가지 양념이 어우러져 입맛을 자극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소스 맛은 중식 잡채에 더 가까워, 두 요리의 매력을 한 번에 느낄 수 있었죠.
마제소바와 중식 잡채를 모두 좋아하는 저에겐 최고의 조합이어서, 정말 맛있게 즐길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