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노란색은 귀여워!!

냥냥카레, 치킨 가라아게

by 퉁퉁코딩

우리 집에는 서로의 취향을 꾹꾹 눌러 담아 각자의 영역을 표시해 둔 방이 하나씩 있다.

우리는 그곳에서 일도 하고, 공부도 하고, 때로는 취미랍시고 무언가를 시작했다가 방치하기도 한다.

두 방을 비교해 보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이 집에서 누가 더 개성 있는 사람인지 단번에 알 수 있다.


애초에 비교 자체가 무의미하다.

주인공은 당연히 아내다.

내 방에서 눈에 띄는 것이라곤 커다란 책상 위에 놓인 세 개의 모니터, 조금 사치를 부려 마련한 허먼밀러 의자, 그리고 좋아하는 책들이 빼곡히 꽂힌 책장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아내의 방은 다르다.

그 문을 여는 순간, 누구든 단숨에 그녀의 취향을 알아차린다.

아내의 방은 노랗다.



우리 집에 이사를 준비하던 무렵, 아내가 꼭 직접 고르겠다며 맡겨달라고 한 것이 두 가지 있었다.

첫 번째는 조명이었다.

아내는 화장실 불을 매번 켜고 끄는 일이 너무 번거롭다며, 반드시 자동 센서를 달아야 한다고 했다.

누군가에게는 화장실 불 켜는 게 큰 노동일 수도 있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오래전부터 로망이었던 간접등을 이번에 꼭 설치하겠다고 했다.

반드시 실현하겠다는 의지가 대단했다.

사실 그때만 해도 나는 간접등이라는 단어가 생소했다.

하지만 막상 설치를 해놓고 보니 은은하게 퍼지는 불빛 덕에 거실과 방이 한결 분위기 있어 보였다.

덕분에 나 역시 슬며시 그 빛에 기대어 쉬곤 한다.


두 번째는 커튼과 블라인드였다.

낮에 견적을 받고 돌아온 아내는 마치 인생 최대의 쇼핑 득템을 한 것처럼 들뜬 얼굴로 결과를 발표했다.

"거실 커튼은 이중이야. 벽지랑 비슷한 색깔의 암막 커튼이고, 속지는 하늘하늘한 흰색으로 했어. 주름이 얼마나 예쁘게 잡히는지 몰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아내는 나를 바라보며 칭찬이라도 해달라는 듯 말했다.

"오빠는 커튼보다 블라인드가 어울려. 그래서 오빠 방은 우드 블라인드로 했어. 오빠는 우드 인테리어 좋아하잖아."

나도 모르는 사이, 나는 이미 우드블라인드 방 주인으로 확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아내는 마지막으로 결정타를 날렸다.

"그리고 내 방 커튼은 노란색이야. 히히."

나는 멈칫했다.

"갑자기 웬 노란색? 그런 커튼도 있어?"

아내는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노란색 암막 커튼이 있는 업체가 딱 한 군데 있었어. 그래서 거기로 했어. 그리고 나 노란색 좋아해!"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그동안 아내가 파란색을 좋아한다고만 생각했는데, 그건 틀리지 않았다.

아내는 분명 파란색을 좋아했다.

동시에 노란색도 좋아했던 것이다.

단지 그 사실을 나는 커튼 색깔 하나로 뒤늦게 알게 되었을 뿐이다.



커튼과 간접등을 설치하고 난 뒤, 아내는 세상을 다 가진 듯 좋아했다.

세상에서 가장 애정하는 공간이 생겼기 때문이다.

방 안이 조금씩 더 노랗게 물들어 가며, 그 애정은 더욱 커져갔다.


먼저 벽 한쪽에는 가로 180cm, 세로 80cm의 노란 보드가 붙었다.

아내는 그걸 '해피보드'라 불렀다.

이름 그대로, 그 위에는 행복을 담은 사진들이 가득하다.

최근에 업데이트된 사진들만 봐도 구성이 다양하다.

맛있는 요리를 함께 먹던 장면, 여행지에서 찍은 엽서 같은 풍경, 집에서의 소소한 웃음, 친구들과의 추억, 지인들에게 받은 응원과 축하 메시지까지.

아내의 행복 연대기가 한눈에 펼쳐진다.


그 옆에는 노란색의 대표주자, 심슨 가족 포스터가 걸려 있다.

부산 여행길, 우연히 들어간 소품샵에서 발견한 것이다.

아내는 그걸 구겨지지 않게 하려고 몇 시간을 소중히 다루며 집으로 모셔왔다.

또 다른 벽에는 황금빛을 즐겨 쓰는 구스타프 클림트의 그림이 걸렸다.

그 아래에는 작은 노란 테이블이 놓여 있는데, 스펀지밥과 노란 개구리가 다정하게 나란히 앉아 있다.

황금빛 연필깎이와 연필 세트도 함께 자리했다.


아내의 노란색 사랑을 알게 된 뒤, 나도 몇 가지 아이템을 보태주었다.

책상 위에는 노란 가죽 데스크매트를 깔아주었고 노란 멀티탭과 노란 실내화도 구해왔다.

책장에는 노란 금고와 노란 앨범을 올려두니 방 안은 어느새 작은 노란 왕국으로 변해갔다.

그림4.jpg

얼마 전 아내와 함께 카페에 앉아 책을 읽다가, 문득 궁금해 물어봤다.

근데 왜 그렇게 노란색이 좋아?

아내는 잠시도 망설이지 않았다.

노란색은 귀여워!!

마치 세상 모든 색을 한자리에 모아 배심원단 투표를 해도, 노란색이 만장일치로 '귀여움 대표'로 뽑힐 거라는 듯 확신에 차 있었다.


나는 그 말을 곱씹으며, 과연 내가 노란색을 귀엽다고 느낀 적이 있었나 곰곰이 떠올려 보았다.

곧 하나의 장면이 떠올랐다.

도쿄 우에노 공원에서 벤치에 앉아 있던 내 눈앞으로 유치원생쯤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 노란 모자를 맞춰 쓰고 줄지어 걸어가고 있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여웠던지, 나도 모르게 미소가 번졌다.


만약 파란 모자였다면? 아니면 빨간 모자였다면?

그때처럼 귀엽다고 느낄 수 있었을까?

아무리 상상해도 노란색의 귀여움을 따라가지 못했을 것 같다.

노란색은 귀엽다.

인정한다.



이런 아내를 위해 오늘 준비한 요리는 바로 카레다.

노란 요리답게 카레는 아내의 취향을 완전히 저격한다.

오늘 저녁이 카레라는 한마디에 아내는 벌써 기뻐한다.

요리 시작 전부터 이렇게 반응이 좋으면, 이미 절반은 성공한 셈이다.


먼저 버터에 양파를 볶는다.

중불에서 천천히, 그리고 오래오래 30분 동안 쉬지 않고 저어야 한다.

어느새 양파는 갈색으로 변하며 매운맛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대신 강렬한 단맛만 남는다.

흔히 캐러멜라이즈드 어니언이라 부른다.


양파를 따로 덜어내고 목살을 겉이 노릇노릇해질 때까지 굽는다.

목살도 덜어두고, 이어서 감자를 살짝 볶아준다.

그리고 양파와 목살을 다시 합류시킨 뒤 물을 붓고 5분 정도 보글보글 끓여준다.


오늘 사용한 카레는 고형 카레다.

뜨거운 물에 풀어 넣고, 카레가 뭉치지 않게 저어가며 끓인다.

여기에 토마토소스를 더해 산뜻함을, 체다치즈를 더해 풍미를 입힌다.

이렇게 카레는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완성된 카레의 색깔은 아내가 좋아하는 상큼 발랄 귀여운 노랑과는 거리가 있다.

좀 더 묵직하고 탁한 색에 가까웠다.

그래서 나는 부족한 귀여움을 보충하기로 했다.

밥을 고양이 틀에 꾹꾹 눌러 담고, 김 조각으로 눈과 수염을 붙인다.

그 순간, 냥냥이가 나타난다.

카레 위에 냥냥이가 얹히는 순간, 평범한 카레는 단숨에 '냥냥카레'로 진화한다.

그림2.jpg


함께 먹을 또 하나의 요리는 치킨 가라아게다.

가라아게는 고기에 밑간을 하고 전분을 입혀 바삭하게 튀겨내는 일본식 튀김이다.

먼저 닭다리살을 소금, 후추, 생강, 마늘, 맛술, 간장, 참기름으로 밑간 해주었다.

전분가루를 입혀 15분 정도 재운 뒤 기름에 튀겨낸다.

전분 덕분에 고기들이 서로 달라붙으려 하기 때문에, 하나하나 떼어내며 조심스럽게 튀겨야 한다.

바삭하게 튀겨진 가라아게는 이미 충분히 간이 배어 있어 굳이 소스를 찍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카레 옆에 놓고 한입 찍어 먹으면 또 다른 별미가 된다.

산뜻함을 원한다면 마지막에 레몬즙을 톡톡 뿌려주는 것도 좋다.

그림3.jpg



KakaoTalk_20250909_203053961_02.jpg

아내는 완성된 요리를 이리저리 각도를 바꿔가며 사진 찍느라 분주하다.

그 모습을 보니, 눈과 수염을 붙이겠다고 김 조각을 하나하나 집어 올리며 땀을 삐질삐질 흘리던 시간이 단숨에 보상받는 기분이다.

아내의 "귀여워!"라는 탄성이 곧 오늘 최고의 인센티브다.


카레도 다행히 아주 맛있게 되었다.

한 입 맛본 아내는 송도에서 먹었던 맛집 카레 같다며 행복해한다.

왠지 다음번 아내의 해피보드에는 오늘의 냥냥카레 사진이 올라갈 듯하다.


그러다 아내가 불쑥 물었다.

"근데, 오빠 회사 사람들은 오빠가 집에서 이렇게 귀엽게 노는 걸 알까?"

나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당연히 모르지. 알 필요도 없고."


회사에서의 나는 굳이 표현하자면 눈빛에 살기가 도는 전투적인 모습에 가깝다.

카레 만들 때의 내 모습은 누구도 상상하지 못할 거다.

하지만 사람이 어떻게 그런 모습으로만 살겠는가.

가끔은 귀엽게, 천진난만하게, 밥으로 고양이를 빚으며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같은 방법으로 카레를 만든 적이 없다.

그때그때 냉장고 사정과 기분에 따라 레시피는 늘 달라진다.

카레는 참 대단하다.

소고기를 넣어도 맛있고, 돼지고기를 넣어도 맛있다.

닭고기, 양고기까지 가리지 않는다.

심지어 고기가 하나도 없어도 괜찮다.

감자, 당근, 양파, 시금치, 토마토, 옥수수, 콩까지.

어떤 채소를 넣어도 제 몫의 맛을 뽐낸다.

감탄할 수밖에 없는 카레의 포용력이다.

그 모습은 마치 나의 모든 모습을 묵묵히 받아주는 아내와 닮아 있다.

살기 도는 눈빛이든, 김 조각 붙이며 진땀을 흘리는 얼굴이든 말이다.



어느덧 9월, 해가 지고 나면 선선한 바람이 불어 산책하기 좋은 저녁이 된다.

걷다 보니 작고 노란 꽃 한 송이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말없이 손가락으로 그 꽃을 가리켰다.

손끝을 따라 아내의 시선도 꽃으로 옮겨갔다.

귀여운 노란 꽃을 발견한 아내는 미소를 지으며 휴대폰을 들어 사진을 찍는다.


길을 걷다 노란 꽃을 발견하곤, 저것 좀 보라며 가리키는 나.

나도 미처 몰랐던 내 모습.

그건 오직 귀여운 노란색을 좋아하는 아내만이 볼 수 있는 나의 모습이다.

KakaoTalk_20250910_233350778.jpg


아내의 후기

냥냥카레
★5.0점
귀여운 것을 사랑하는 저에게는 최고의 요리였습니다.
눈, 코, 귀, 수염 모양으로 김을 잘라 붙이는 신랑의 모습도 정말 사랑스러웠습니다.
한참을 붙였다 떼었다 하면서 뭐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아쉬워하는 모습마저 귀여웠습니다.
처음 시도해 본 캐러멜라이즈드 어니언 덕분에 맛도, 비주얼도 최고였던 카레였습니다.

치킨 가라아게
★4.5점
제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신랑표 닭튀김!
처음으로 냉동 닭다리살을 사용했다고 했는데, 그래서인지 평소보다 촉촉함은 조금 아쉬웠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정말, 정말 맛있었습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