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는 몰라도 따뜻하게

떡국, 쪽파잡채, 매운고등어찜

by 퉁퉁코딩

2025년 12월 31일, 한 해를 보내는 마지막 저녁이었다.

퇴근과 동시에 한 해 동안 들고 다녔던 모든 짐이 한 덩어리로 뭉쳐 피로라는 이름으로 어깨 위에 얹힌 기분이었다.

배는 고팠다.

하지만 요리를 하기에도, 외식하러 나가기에도 기력은 이미 바닥나 있었다.

결국 아내와 나란히 앉아 배달 앱을 천천히 살펴봤다.

스크롤을 빠르게 올릴 힘조차 없는 듯 손가락은 느리게 움직였다.

결정된 메뉴는 김치찜.

밥은 금방 지을 수 있었지만 그마저도 무리였다.

배달 옵션에서 공기밥 포함을 선택했다.



몇 시간 뒤면 제야의 종소리가 울린다.

아내는 1월 1일을 맞이하는 그 타종 장면을 유난히 좋아한다.

어릴 때부터 해마다 빠지지 않고 챙겨봤다고 한다.

작은 일에도 행복해하는 아내의 비법은 단순하다.

세상의 많은 일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그 의미는 여기저기 흩어져 있을수록 더 좋다.

즐거움일 수도 있고, 귀여움일 수도 있다.

제야의 종소리는 즐거움 쪽에 속한다.

우리는 2025년 1월 1일의 종소리를 함께 들었다.

아내는 좋아하는 서울시 캐릭터 해치가 화면에 등장하자 카메라를 바쁘게 움직였다.

해치는 아내가 귀여움을 부여한 것들 중 하나다.

즐거움과 귀여움이 만났으니 행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장면은 사진으로 인쇄되어 아내의 행복한 순간을 모아둔 노란 해피보드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2026년의 종소리도 함께 들어야 했지만 문제는 체력이었다.

아홉 시쯤 되자 어깨에 있던 한 해의 짐이 눈꺼풀로 이사를 갔다.

결국 아내에게 "좀 있다가 깨워줘"라는 말을 남기고 먼저 침대로 향했다.

얼마나 잤는지는 모르겠다.

방금 누운 것 같기도 하고 아예 잠든 기억도 없었는데 아내가 귓가에 조용히 말했다.

"이제 곧 종 쳐."

억지로 깨우지는 않았다.

살포시 말해주고는 혼자 거실로 나갔다.

함께 보면 더 즐거울 테지만 피곤한 사람을 억지로 끌고 가지 않는 것, 그게 아내가 택한 방식이었다.

못 들은 척 그대로 잘까 잠깐 고민했지만 그래도 몸을 일으켜 소파에 앉아 있는 아내 옆으로 갔다.

겨우 눈을 붙잡고 2025년 1월 1일을 깬 상태로 맞이했다.

타종 장면을 동영상 촬영하던 아내는 카메라 렌즈를 돌려 우리를 비춘 뒤 "2026년도 행복하게 잘 살자"라고 말했다.

나중에 그 영상을 다시 보니 나는 눈을 뜨고 있다고 믿었을 뿐 실제로는 눈을 감은 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혼자 자취 중인 동생과 1월 1일 식사를 함께 하기로 했다.

함께 나눌 이야기도 있으니 초대해서 떡국을 먹자는 아내의 제안이었다.

우리 부부도, 동생도 사실 떡국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언제부터, 왜 1월 1일에 떡국을 먹는지도 정확히는 알지 못한다.

그저 대부분의 전통이 그렇듯 아마도 좋은 의미일 거라고 적당히 짐작할 뿐이다.

생각해보면 새해에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이고, 그 다음쯤에는 "떡국은 드셨어요?"가 온다.

새해의 떡국은 음식이기도 하고, 인사이기도 하다.

올해도 잘 지내길 바란다는 아주 간단한 안부 같은 것.

떡국 다음으로 많이 묻는 말은 아마도 "해돋이 보셨어요?"일 것이다.

보지 않았어도 괜찮고, 봤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것도 없지만 그래도 묻게 되는 말이다.

새해에는 이렇게 의미를 정확히 알지는 못해도 서로를 챙기는 말과 음식이 유난히 많아진다.

난 그저 가족들과 떡국에 소중한 마음을 담아 나눠 먹을 수 있으면 충분하다.



아내는 낮에 일이 있어 떡국은 저녁에 먹기로 했다.

저녁시간까지는 아직 한참 남은 오후 두 시쯤, 동생에게서 연락이 왔다.

"오빠, 낮맥 한잔 할까?"

점심을 차려 먹기엔 늦었고 그렇다고 그냥 넘기기엔 배는 고픈 시간.

간단히 맥주나 한잔 하자는 아주 솔깃한 제안이었다.

나 역시 점심을 먹지 않았기에 별다른 고민 없이 그러자고 했다.

잠시 뒤 동생은 맥주 네 캔과 꽃등심 한 팩, 부채살 두 팩을 들고 우리 집에 도착했다.

전날 먹고 남은 치킨도 야무지게 싸 들고 왔다.

동생 역시 2025년 한 해의 짐이 꽤 무거웠던 걸까.

한 해의 마지막 음식은 배달로 해결했던 모양이다.

사실 그보다는 동생이 요리를 잘 하지 못한다는 쪽이 조금 더 정확한 설명일지도 모르겠다.

치킨을 데우고 부채살 한 팩을 구워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해는 바뀌었지만 특별한 대화거리는 없었다.

올해도 크게 달라질 건 없겠지, 그래도 어떻게든 살겠지 같은 남매 사이의 시큰둥한 말들만 이어졌다.

한 살 더 늘어난 나이를 떠올리며 나이 듦에 대해 이야기했다.

시간의 속도가 조금만 더 늦어졌으면 좋겠다는 그런 바람을 나누며 새해 첫날을 흘려보냈다.



간단한 낮술을 마치고 소파에 늘어져 있다가 아내가 도착할 시간에 맞춰 저녁 준비를 시작했다.

"도와줄 거 없어?" 동생이 물었다.

잠깐 생각해봤다.

동생이 무엇을 도와줄 수 있을지를.

하지만 딱히 떠오르는 게 없어 그냥 쉬고 있으라고 했다.

그게 요리에게도 가장 안전한 선택일지 모른다.


먼저 떡국을 끓였다.

보통 떡국은 사골국물에 끓이지만 이번에는 느끼하게 먹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코인 육수를 선택했다.

물에 넣고 끓인 뒤 간장과 소금으로 간을 맞췄다.

다진 마늘과 파를 넣고 조금 더 끓이다가 떡과 만두를 넣었다.

마지막으로 계란을 풀어 넣었다.

완성된 떡국은 떡과 만두가 들어간 계란국에 가까운, 조금은 가벼운 떡국이다.

그러다 문득 동생에게 맡길 수 있는 일이 떠올랐다.

비닐봉지에 김을 넣어 건네며 말했다.

"이거 조물조물해서 이따가 떡국 위에 뿌릴 수 있게 만들어."


잡채도 만들었다.

시금치 대신 쪽파를 사용한 쪽파잡채다.

쪽파는 흰 부분, 연두색 부분, 초록색 부분으로 나눠 썰어두었다.

흰 부분일수록 익는 데 시간이 더 걸리기 때문이다.

당근과 양파, 목이버섯과 팽이버섯도 미리 손질해 두었다.

팬에 기름을 두르고 굴소스와 소금으로 간을 하며 단단한 채소부터 볶기 시작했다.

볶아진 채소는 넓은 그릇에 펼쳐 잠시 김을 식혔다.

그 사이 간장과 소금, 설탕, 맛술, 후추, 참기름에 미리 버무려 두었던 고기를 고기에서 나온 물이 모두 사라질 때까지 볶았다.

고기도 덜어두고 마지막으로 불려둔 당면을 볶았다.

불지 않게 참기름으로 코팅을 하고 굴소스와 간장을 넣어 가볍게 뒤적였다.

조금 식은 뒤 모든 재료를 한데 모아 섞었다.

간을 보고 싱겁다면 소금을 조금 뿌려주면 된다.


냉동실에 남아 있던 고등어를 꺼내 매운고등어찜도 만들어 보기로 했다.

동생처럼 혼자 사는 사람이 챙겨 먹기 힘든 것 중 하나가 생선이기 때문이다.

해동한 고등어 위에 간장과 맛술, 참치액, 파와 마늘, 생강, 청양고추, 고춧가루를 섞은 양념장을 얹었다.

그리고 15분간 찌기만 하면 된다.



집에 도착한 아내, 그리고 동생과 함께 떡국을 먹었다.

함께 떡국을 먹다 보니 두 해 전, 동생이 다리를 다쳐 혼자 누워 있던 새해 첫날에도 아내와 함께 재료를 싸 들고 찾아가 떡국과 불고기를 만들어 먹었던 이야기가 자연스레 나왔다.

식사가 한창 무르익을 즈음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께 차례로 새해 인사 전화를 드렸다.

전화기 너머에서는 늘 그렇듯 "밥은 먹었냐"는 말이 먼저 나왔다.

새해 인사보다 식사 여부가 먼저 확인되는 것, 그게 내가 자라온 집안의 방식이다.

동생은 할아버지, 할머니께 오빠가 맛있는 걸 해줬다며 혼자 보내지 않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듯 평소보다 한껏 높은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아내는 아버지, 어머니께 남편이 이것저것 해줬다며 메뉴를 하나하나 읊어 내려갔다.

잘사는 게 보기 좋다며 앞으로도 잘 살라는 덕담이 돌아왔다.

멀리 떨어져 혼자 살고 있는 동생이 그래도 오빠 집과 가까운 곳에 살아 새해 첫날을 혼자 보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그리고 그런 동생을 떠올리며 먼저 떡국을 함께 먹자고 말해준 아내의 그 말 한마디에 가족들은 마음이 한결 놓인 듯했다.

전화가 끝나고 나니 떡국만으로는 느낄 수 없는 든든함이 집 안에 천천히 퍼졌다.



식사를 마치고 동생은 '오빠와 새언니'라고 귀퉁이에 적힌 하얀 봉투를 내밀었다.

청첩장이었다.

이제 곧 동생도 결혼을 한다.

신혼집은 이제 내가 사는 곳과 그리 가깝지 않다.

아마 내년 첫날은 남편과 함께 맞이하게 될 것이다.


문득 동생은 결혼이라는 일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하지만 묻지는 않았다.

나 역시 그 질문에 또렷한 답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많은 일을 정확한 의미를 알지 못한 채 시작한다.

왜 먹는지는 잘 모르지만 새해마다 떡국을 먹는 것처럼.

그렇게 해왔고, 그렇게 살아왔기에 굳이 의미를 묻지 않는다.

그저 떡국 한 그릇을 앞에 두고 가족과 마주 앉아 조용히 행복을 나눈다.

결혼도 아마 그런 일 아닐까.

정확한 정의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행복하게 잘 살아가는 것.

떡국을 나눠 먹을 가족이 하나 더 늘어나는 일.

우리 부부가 그랬던 것처럼 동생 역시 그러길 바란다.

떡국처럼, 의미는 몰라도 따뜻하게.


아내의 후기

떡국
★5.0점
새해 하면 떠오르는 떡만둣국.
떡국 한 그릇 먹고 야무지게 새해를 맞이했습니다.
새해에 먹는 떡국은 그 자체로 이미 최고죠.
행복한 새해였습니다.

쪽파잡채
★5.0점
시금치 대신 쪽파가 들어간 색다른 신랑표 잡채였습니다.
여전히 맛있더라고요.
특히 간이 세지 않아서 젓가락이 멈추질 않았습니다.
요리하다 보니 업소용 양만큼 늘어났다고 하던데, 제가 다음 날까지 다 먹었더라고요.
히히.

매운고등어찜
★5.0점
아가씨와 신랑, 셋이 함께 먹어 1인 1고등어로 즐겼습니다.
살이 정말 부드럽고 간도 딱 알맞았어요.
잡채와 마찬가지로 간이 세지 않아서 생선만으로도 꽤 많이 먹게 되더라고요.
아주 맛있었습니다.


P.S.

2025년, 제가 새롭게 시작한 일 가운데 가장 마음이 가는 것은 단연 브런치입니다.

어느새 해를 넘겨 이 글로 2026년을 맞이하게 되었네요.

본업이 바빠지며 요즘은 글을 연재하는 일이 조금 버겁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구독자님들의 글에도 자주 찾아뵙지 못해 마음 한편이 늘 무겁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글에 머물러 주신 분들께 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2026년에는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조금 더 편안하고, 조금 더 따뜻한 한 해를 보내시길 바랍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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