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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세이읽는남자 Nov 19. 2023

원하는 영혼의 사양을 고르시오

고객님의 ‘내 영혼 리콜 신청’이 정상적으로 접수되었습니다. 원하시는 리콜 사양을 말씀해 주시면 반영하여 출고 진행 도와드리겠습니다. 삐 소리 이후부터 쭉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삐 -


네, 지금부터 제가 받고 싶은 영혼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가장 먼저 저는 날씬한 몸매를 가지고 싶습니다. 음식을 먹거나 술을 마시는 것에 기분 좋아할 것이 아니라, 건강한 몸을 만드는 쪽으로 도파민을 많이 뿜어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의미입니다. 날씬하고 건강한 몸매를 유지하는 것에 성취감을 느끼고, 이것은 응당 꼭 그래야만 한다는 강한 신념을 가진 그런 영혼입니다. 왜냐면 인간에게 쾌락은 삶을 그쪽 방면으로 흐르게 하는 물줄기 같은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과하게 먹는 쪽으로 쾌락을 가진 자는 결국 각종 성인병과 같은 질병에 걸리는 쪽으로 삶이 흐르게 됩니다. 그런 삶은 원하지 않습니다. 기왕 쾌락을 느낀다면 발전적이고 성장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진행했으면 좋겠습니다. 운동이나 명상, 정돈된 일상과 감사하는 마음. 그런 것에 동기부여를 받고 쾌락을 느끼는 영혼을 요청드립니다.


그리고 돈을 좀 많이 벌고 싶습니다. 관찰력 좋고 센스 있는 영혼을 원합니다. 일찍이 내가 가진 재능을 빨리 발견할 수 있는 영혼입니다. 내가 무엇을 할 때 주변에 반응이 좋고, 사람들이 즐거워하며,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구나 하는 걸 감각적으로 알아채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나는 꼭 이걸 하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신념화하여 우직하게 한 길을 걸을 수 있는 덤덤한 자세도 옵션으로 부탁드립니다. 시대적 변화와, 새로운 지식과, 다양한 의견을 유연하게 받아들이면서 신념의 중심이 되는 코어를 계속 강화하는 그런 영혼입니다. 애매하게 설명하면 이해하기 힘이 들 수 있으니까 예를 들자면 이런 겁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무언갈 창작하고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걸 좋아했습니다. 중학생 때 인터넷 소설을 써서 당시 PC 통신에 업로드를 해보기도 하고, 집에서 신발 박스를 드럼 삼아 노래를 만들어 싱글 앨범이라며 친구들에게 선물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얼추 크리에이터에 대한 재능과 선호는 발견한 셈인데 ’이거다! 나는 이 길을 가야겠다‘라는 신념화에는 실패한 것 같습니다. 적당한 대학을 나와, 무난한 회사에 취직을 해서, 평범하게 가정을 꾸리고 살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가지고 놀았던 창작의 놀잇감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걸 하나 들고 있다가, 이것을 어른의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후회를 합니다. 모쪼록 리콜 신청이 잘 마무리되어 새 제품을 받게 된다면 앞으로 남은 인생 잘 한번 꾸려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성공의 달콤함은 찰나의 순간이 아닐까요. 원하는 것을 이루었을 때 느끼는 기쁨은 인생 전반으로 길게 놓고 봤을 때 아주 짧은 기간 동안만 유지됩니다. 대학을 얼마나 가고 싶었는데요, 취업은 또 어떻고, 꼭 저 여인과 사귀고 싶어서 온 세포가 안 달랬던 순간을 기억합니다. 결국 인생은 계속 걸어야 하는 길이자 과정이며, 그 와중에 행복감을 얻어 내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성공은 어쩌다 한 번씩 만나는 작은 이벤트 정도 되겠네요. 중요한 건 인생의 과정을 어떤 방식으로, 어느 방향을 향해,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번 리콜 신청으로 받게 될 새로운 영혼은 결과가 아닌 과정에 초점을 둔 제품이 되길 희망하고 있습니다. 건강한 신체를 유지하고, 정돈되고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며, 내가 가진 재능으로 사람들에게 이로운 것을 나눌 수 있는 사람. 그런 인간으로 거듭날 수 있는 막강한 영혼을 원합니다.


더 생각나는 것이 있으면 따로 연락드리겠습니다. 리콜은 되도록 빠르면 좋겠는데, 먼저 초기 프로토타입을 주시고 계속 업데이트하는 방안도 함께 고려 부탁드립니다.


영혼을 교체하면 신체도 변화하고 생활하는 주변도 달라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모든 이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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