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춘 Sep 26. 2024

서태지가 유일하게 곡을 준 사람은 원미연

아는 척 하나 해볼까. 서태지가 유일하게 곡을 준 사람이 있는데 누구냐면 바로 ‘이별여행’으로 히트를 친 가수 원미연이다. 이 정보를 알기 위해서는 원미연을 알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의외로 모르는 사람이 많다. 나는 원미연의 ‘이별여행’을 좋아했다. 그리고 원미연의 비주얼도 좋아했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서구형 외모보다는 볼살과 눈매가 특징적인 동양미를 더 좋아한다. 원미연이 딱 그랬다. 귀여웠다. 게다가 노래도 좋았다. 똑 부러지는 목소리로 ‘에이 좋은 추억 더 많이 쌓고 싶었는데 잘 안된 네. 내가 좀 많이 바랬나 보다. 잘 가라’ 하는 듯한 그 강하면서도 애잔한 분위기도 좋았고 무엇보다 멜로디가 정직하면서 귀에 쏙쏙 들어왔다. 티브이에 나오면 챙겨보는 가수였는데 어느 날 ‘이별여행’ 후속곡으로 댄스음악을 가지고 나온다고 했다. 그런데 무려 서태지에게 곡을 받았다고 한다.


응? 지금 가장 핫한 그룹 서태지와 아이들의 그 서태지? 아니, 어떻게?


당시에는 연예정보나 루머가 초등학생한테까지 뿌려질 정도로 정보가 활발히 공유되던 시절이 아니라서 그 내막을 전혀 알 수 없었고 자체 상상력으로 추측하는 건 하나 있었다. 서태지도 원미연을 좋아하나 보다였다. 그때는 ‘서태지는 바로 나’였던 시절이라 나를 대변하는 걸 뛰어넘어 내가 서태지가 되고 서태지가 내가 되는 몰 아일 체격 동질감이 형성되어 있었는데 서태지도 나와 같이 귀엽고 통통한 스타일을 충분히 좋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기 서태지 씨”


”아네?“


”저도 곡하나 써줄 수 없을까요?“


”아 곡이요. 생각해 보겠습니다“


”네 너무 노래가 좋아서요. 연락 기다릴게요“


그리곤 집에 가서 곰곰이 생각을 했을 거 아닌가. 써놓은 것 중에 뭐가 있나 보다가 이게 좋겠다 하고 혹은 생짜로 작곡을 얼른해서 연락을 하고 싶었을 것 같다. 그녀가 얼마나 좋아할까 기대도 됐을 것이고 나 이 정도 한다며 자랑도 하고 싶었을 것이다(당시 상상은 좋은 놀잇감이었다) 그래서 곡을 받았나 보다 하고 마음속 결론을 내렸다.


가장 최근에 원미연이 어느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서 이와 관련된 언급을 한 적이 있는데, 본인이 MC를 보던 어느 가요 프로그램에 새파란 신인 그룹 서태지와 아이들이 나오길래 이때다 싶어 얼른 곡을 의뢰했고 결국 약속을 받아냈다고 고백했다. 그 얘기를 듣고 나니 초등학생 때 상상했던 로맨스가 직장 내 갑질 선배 스토리로 사건이 재구성되었다.


”곡 좋더라 너“


”감사합니다. 선배님“


”나도 댄스 한번 해볼까 하는데 곡하나 써 줘라“


”네?“


”금방 쓰잖아. 언제까지 될까“


”그게 좀“


”너만 믿는다. 바로 연락 줘“


웃자고 만든 픽션이고 어쨌든 원미연의 순발력과 빠른 판단력으로 얻어낸 결과라고 생각한다. 지금이 아니면 앞으로 기회는 없다고 생각하고 들이 댄 거고 그게 어떻게 여러모로 타이밍이 잘 맞아서 곡을 받아 낼 수 있었을 것이다. 내 마음대로 추측한 로맨스와 갑질 중에서 나는 로맨스 쪽으로 무게를 많이 싣고 있다. 왜냐면 나도 그 당시 원미연을 좋아했거든. 아름다운 그녀가 부탁을 하는데 어떻게 거절을 하겠어 분명히 녹음을 핑계로 다시 보고 싶었을 거라며 멋대로 상상한다.


노래가 잘 됐으면 모르겠는데 서태지가 작곡해 준 곡이 인기를 많이 얻지 못했다. 원미연 본인도 서태지가 만들었으니까 100만 장은 거뜬히 팔릴 거라고 기대했다고 하는데 큰 화재성도 얻지 못한 채 금방 나왔다가 사라졌다.


서태지를 이야기 할 때 나만 아는 에피소드로 항상 써먹는 원미연에게 곡 준 썰이었는데 왜 곡을 주었을까 그리고 왜 다음부터는 그 누구에게도 주지 않게 되었을까를 상상하면 재미가 쏠쏠하다. 추억은 이렇게 사건을 재구성하면서 즐기는 맛도 있는 것 같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