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지의 컴백 중에 왕 컴백은 역시 은퇴 후 솔로 컴백이다. 4집 활동을 마치고 돌연 은퇴를 해버린 서태지와 아이들. 당시 대중들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저녁 뉴스에까지 거론됐을 정도로 사회적 파급력이 엄청났다. 나도 처음 그 소식을 들었을 때는 믿지 않았다. 거짓말을 하는 줄 알았다. 그럴 리가 없잖아 아니, 도대체 왜? 현재 대한민국에서 제일 잘 나가는 그룹이 해체라니, 아니 심지어 연예계 은퇴를 한다니 너무 극단적이잖아. 납득이 가질 않았다.
납득이 가거나 말거나 그들은 헬기를 타고 떠났다. 미국으로 간다고 했다. 절대로 본인을 찾을 수 없는 곳에서. 잘 살아 보겠다고 했다. 그게 가능해? 미국에도 한국 사람들이 많이 사는데 오며 가며 들키지 않을 수가 없잖아. 있었다. 서태지의 소식은 전혀 들려오지 않았다. 특종을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을 기자들에게도 걸리지 않았다. 말도 안 돼. 분장을 하고 다니나, 정말 못 찾는다고? 당시 인기 개그맨 이경규가 하는 코너 ’이경규가 간다‘에서 서태지를 찾으러 가겠다는 예고를 했다. 반드시 찾아서 인터뷰를 따오겠다며 호언장담을 했다. 역시 그러면 그렇지 뭔가 정보를 입수했나 보다. MBC 간판 프로그램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서 전 국민을 상대로 선포했으니 실루엣이라도 잡아 오겠거니 기대를 했다. 그 후로 한동안 언급이 없더니 시시하게 실패로 돌아갔다.
대한민국 연예계 정보력이 이 정도밖에 안 되나. 못 찾는 것인가 안 찾는 것인가. 의문 투성이었지만 서태지의 미국 생활 소식은 들을 수 없었다. 그리고 점점 잊혀 갔다. 1996년부터 하이틴 스타 H.O.T를 필두로 재밌는 가수들이 많이 등장했다. 그야말로 대중가요 춘추전국시대가 열렸다. 나도 당시 유행하는 음악을 들으며 내 생활을 알차게 채워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서태지의 컴백 소식이 들려왔다. 그전에도 컴백에 대한 루머는 많았지만 날짜까지 찍혀있는 포스터가 나올 정도니 이번엔 진짜였다. 그러면 그렇지. 솔직히 이런 날이 올 줄 알고 있었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예상했을 것 있다. 다만 그게 언제냐가 문제였지. 생각보다 많이 늦지는 않았다는 생각을 했다.
서태지 컴백은 활동 없이 앨범 발매만 있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뭐 뭐든 좋다. 이제 시작일 테니. 그리고 음반이 나오기 전에 사전 예약제를 실시한다며 레코드 가게 앞에 포스터가 붙었다. 살 사람은 미리 붙으라는 건데 나름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다. 발매일에 레코드 가게에 갔다가 허탕 칠일은 없을 테니까. 나도 얼른 학원 근처에 있는 조그만 레코드 가게에 가서 예약을 했다. 사장님이 노트를 가져와서 이름을 적었다. 시디로 선택하고 돈을 지불했다.
서태지가 솔로로 컴백을 한다면 어떤 음악을 가지고 나올 것인가에 대해 내 나름대로 예상한 것이 있었는데 바로 테크노였다. 그 단서는 소장하고 있었던 서태지와 아이들 1집 라이브 앨범 ’TAIJI BOYS Live&Techno Mix’ LP인데 거기에 스튜디오 이름이 테크노 태지 뭐 어쩌고 하고 적혀있는 걸 본 적이 있었다. 테크노의 스펠이 이렇구나 하며 마음에 새긴 적이 있었는데 그것 때문에 왠지 서태지가 솔로로 나온다면 왠지 테크노 장르의 앨범을 가지고 올 것 같았다(아! 테크노라고 해서 한때 유행했던 이정현의 ‘와’ 같은 뽕끼 충만한 그런 테크노 말고 다프트펑크나 케미컬 브라더스, 프로디지 같은 테크노) 일단 혼자 만들기 좋으니까라는 그럴싸한 근거도 덧붙였다.
땡! 락이었다. 모던록.
발매일이 되어 나는 레코드 가게로 달려갔다. ‘나왔나요?’, ‘아직’ 학원 수업을 다 듣고 저녁에 조금 느지막이 다시 레코드 가게로 갔다. 뭐, 난 예약을 했으니까 하고 느긋하게 마음을 먹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어느 여학생이 서태지 시디와 포스터를 받아 들고 나오고 있었다. 오케이 들어왔구나. 그런데 사장님의 표정이 묘하다. ‘예약했어요’ 하고 내 이름을 이야기하는데 잠시 노트를 보고 이름을 찾는 척하더니 ‘음 어떡하지. 다 나갔는데’ 예약을 했는데 다 나갔다니. 그래도 미안한 마음은 있었는지 노트를 계속 넘겼다 말았다 하며 나를 쳐다보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 가게 오픈 이후로 이렇게 문전성시를 이룬 것도 거의 처음이었겠지. 자꾸 손님들이 들어와서 물건을 찾아대니 들뜬 마음에 예약이고 뭐고 일단 다 팔아 버렸겠지. 노트에 적힌 예약이 서로에게 얼마나 신뢰가 있겠어. 속상은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예약금을 돌려받고 나왔다. 마음이 급해졌다. 다른 매장을 찾기 시작했다. 레코드 가게가 또 어디 있더라. 그런데 어라? 생각보다 쉽게 구했다. 근처 매장에 재고가 있었다.
내 손에 들어왔다. 서태지가 솔로 컴백 시디. 앨범 표지 사진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짙은 파란색 케이스였는데 좀 별로라고 생각했다. 아주 극적인 효과를 줘야 했을 것이다. 무려 서태지가 컴백을 했으니까. 그런데 좀 과했다. 케이스까지 서태지가 아이디어를 냈을 리는 없을 것 같고 디자인 팀에서 욕심을 많이 낸 결과라고 생각했다. 됐다 마, 중요한 건 그 안에 들어있는 음악이다.
첫 곡부터 한 땀 한 땀 모두 음미했다. 가사집을 계속 손에 들고 혹여나 땀이라도 묻을까 아주 조심하면서 한 줄 한 줄 읽어 내려갔다. 당시에는 나도 너 바나나 메탈리카 같은 록 음악을 듣고 있었던 시절이라 장르에 대한 거부감은 크게 없었다. 다만 우리가 기대하는 거 있잖아. 서태지 특유의 서정적인 멜로디가 가미된 노래방에서 부를 수 있는 노래. 사실 그런 게 없나 기대하고 있었다. 있다! TAKE FIVE! 이거지, 이 정도는 돼야 따라 부를 수 있지.
활동 중단과 컴백의 루틴 중에 가장 큰 화제성과 관심을 불러왔던 솔로 컴백. 그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그때는 참 재밌었고 신기했다. 음악의 신선도나 참신함을 떠나서 그런 이벤트 자체가 하나의 큰 즐길 거리가 되어주었다. 어쩌면 그런 게 바로 요즘 유행하는 팬덤 문화의 시작이 아니었나 싶은데 덕분에 ‘작품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즐거웠으면 됐지. 예술하는 사람이 대중에게 그 정도 재미를 준다면 된 거지 뭘 더 바랄 게 있겠는가. 지금은 팬덤에서 조금 멀찌감치 떨어져 그때를 추억하는 걸로만 만족하고 있지만 여전히 서태지의 새로운 앨범이 나오면 찾아서 듣는다. 물론 당시만큼 충격적이거나 감동이 있지는 않지만(나이가 들면서 심장이 굳은 탓도 있다) 그래도 아직 즐거움을 준다.
뭐 그럼 된 거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