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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춘 Sep 30. 2024

서태지와 악마소동

카세트테이프를 거꾸로 돌려볼 생각을 누가 가장 먼저 했을까. 왜 했을까. 그걸 꼼꼼히 듣고 ‘피가 모자라, 나 배고파’라는 음성을 찾아낸 사람은 도대체 무슨 생각이었을까. 아직도 그게 참 궁금하다. 어쩌면 외국에서 그렇게 녹음하는 경우가 있다는 정보를 들은 누군가가 호기심에 한번 시도해 봤거나 아니면 정말 서태지와 아이들을 음해할 목적으로 처음부터 스토리를 그렇게 만들었거나. 정말 모를 일이다.


서태지와 아이들 3집 ‘발해를 꿈꾸며’ 앨범에 수록된 ‘교실 이데아’라는 곡이 화재였다. 스래쉬 메탈 밴드 ‘크래쉬’가 특유의 가래 낀 목소리로 부르는 파트가 있는데 그 부분을 거꾸로 들으면 마치 악마를 숭배하는 듯한 가사가 들린다는 것이다. 가십으로 끝내주는 소재라 당시 많은 방송 프로그램에서 다뤘다. 뉴스에도 나왔다. 악마 숭배자 서태지가 의도적으로 넣었다는 루머가 돌았다.


단연 학교에서도 화제였다. 카세트테이프를 거꾸로 재생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낸 친구들이 실제로 들어봤다며 영웅담을 늘어놓았다. 잡지에는 카세트테이프를 거꾸로 재생할 수 있는 방법을 그림으로 설명해 주는 내용도 실렸다. 나도 한번 해봐야지 싶어서 집에서 테이프를 분해해서 한번 꼬아서 뭐 어찌어찌 만들어보았다. 그리고 플레이를 해봤는데 테이프가 다 씹혀 버렸다. 아 나는 이런 손재주가 없지 하며 포기했다.


손재주 있는 친구가 만들어서 가져왔길래 같이 들어보았다. 티브이에서 몇 번 들어보긴 했지만 내 귀로 직접 듣고 싶었다. 플레이를 하고 숨을 죽였다. 악마의 가사가 들리기도 전에 벌써 뭔가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거꾸로 플레이를 하면 정말 어느 공포영화에나 나올법한 주문 같은 걸로 들린다. 으쒀 뭄쒀 아놘테나 쒀쒀 음봐지봐 뭐 이런 소리로 들린다. 문제의 ’크래쉬‘ 보컬 부분을 집중해서 들었는데, 음 난 안 들리는데 어디가 ’피가 모라라‘라는 거지. 다시 테이프를 뒤로 돌린 다음에 플레이했다. 으쒀 뭄쒀 아놘테나 쒀쒀 음봐.. 안 들리는데? 머리로 가사를 생각하며 찾아보니 몰라 좀 들리는 것 같기도 하고.


“들었어?”


“뭐가?”


“방금 피가 모자라 했잖아”


“응?”


“자 다시 들어봐”


(테이프를 뒤로 돌려서 다시 플레이)


“들었어?”


“(사실 잘 모르겠는데) 엇 진짜네”


“그지그지 와 대박”


뭐 이런 식이 었다.


테이프를 꼬아서 만들고 집중해서 들어보고 하는 일련의 과정이 마치 분신사바를 하는 듯이 악마의 흔적을 쫓아가는 행위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문제의 그 가사가 아니더라도 음악을 거꾸로 듣는 것 자체가 조금 오싹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티브이와 신문에서 ‘악마설’ 어쩌고 하는데 그럴 리가 하면서도 점점 서태지와 악마라는 단어가 합쳐지기 시작했다.


내 방에는 번화가 지하상가에서 산 서태지와 아이들 대형 브로마이드가 붙어 있었는데 어느 날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방에 들어갔는데 서태지와 눈이 마주쳤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살짝 미소를 머금고 있는 서태지가 마치 나를 보고 웃고 있는 거 같았다. 옆에 이주노와 양현석도 나를 보고 웃고 있었다. 순간 뭔가 싸한 기분이 나를 휘감고 지나갔다. 그들의 눈을 쳐다볼 수 없었다. 브로마이드를 얼른 떼버렸다. 그들이 악마 숭배자라는 사실을 믿지 않았고 록음악에 척박한 남한사회에서 일어난 유치한 해프닝 정도라고 생각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혹시’ 하는 의심 때문이었는지 내 생각과는 다르게 겁이 났다. 브로마이드를 둥글게 접어서 책상 저 아래로 넣었다.


당시 나는 록 음악을 꽤 즐겨 듣고 좋아해서 외국 데스메탈 밴드들의 기행을 조금 알고 있었다. 공연 중에 닭 피를 몸에 뿌린다거나 병아리를 밟아 죽인다거나 기타를 부수고 무대를 불태운다거나 그런 문화를 즐기지는 않았지만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어쩌면 항상 새로운 걸 들고 나오는 문화의 선두주자 서태지라면 그럴 수도…… 하는 마음도 있었다. 남들보다 한 발 앞서서 다른 사람들은 하지 않는, 그런 어떤 새로운 걸 시도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조금 있었던 것 같다. 어쨌거나 나도 어린 마음에 흔들렸다. 당시에는 너무 떠들어 대니까 나도 어쩔 수 없었다. 앨범보다 오히려 그게 더 화제였다. 교실 이데아는 그 참신한 아이디어와 당시 메이저 가요계에서 들을 수 없었던 사회적 메시지에도 불구하고 어둠의 헌혈송(피가 모자라)으로 전락해 버렸다.


 당시 나는 메탈 음악도 곧잘 듣곤 해서 서태지와 아이들 3집은 반가운 마음이 있었다. ‘교실 이데아’ 외에도 ‘제킬 박사와 하이드’, ‘내 맘이야’ 같은 곡들도 묵직한 기타 사운드와 경쾌하고 빠른 드럼 그리고 서태지의 가녀린 목소리가 어우러진 ‘아이돌 메탈’ 같은 느낌이었다. 드디어 록 음악의 시대를 서태지가 열어 줄 것만 같아서 먼저 그곳에 가있었던 사람으로서 어깨 으쓱한 느낌이 들었다.


록 음악의 새로운 세상을 열기는커녕 시작부터 서태지 악마 숭배설로 엮이면서 역시 록 음악은 퇴폐하고 폭력적이고 악마 같은 거 좋아하는 음흉한 음악으로 제대로 인식을 굳혀버리는 계기가 되어 버렸다. 그리고 몇 년 후에 어느 인디밴드가 티브이 생방송에 나와서 바지를 벗고 성기를 노출시키는 퍼포먼스를 했는데 거기서 또 아주 제대로 록 음악은 위험하고 저질이라는 인식을 전 국민적으로 심어주었다. 힙합 음악은 어느 오디션 프로그램이 대박이 나면서 엄청 유행도 하고 돈도 많이 벌고 했는데 록 음악은 이런저런 이유로 아직도 지하세계에 머물러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서태지와 아이들 2집 ‘하여가’가 엄청난 히트를 치면서 3집은 전 국민적 관심을 받고 있는 상태였고 그때 짜잔 하면서 가지고 나온 게 바로 록 음악이었는데 이 정도면 시나위 베이시스트 출신 우리 정현철 씨가 록 음악을 살려보기 위해 정말 신경 많이 써준 건데 그걸 악마설 따위 루머가 그냥 덮어 버렸다. 아쉽다. 너무 아쉽다. 이 정도면 국내 어딘가에 록 음악을 저주하는 단체가 있어서 록 음악의 부흥에 좋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조직적으로 움직이며 방해를 하는 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대신에 다인조 아이돌은 크게 남겼는데 세대를 거쳐가며 발전하여 현재까지 대한민국 음악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다(K-POP) 뭐든 뭐 발전했으면 됐지 싶기도 한데 그래도 록이나 인디는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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