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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춘 Oct 22. 2024

내가 지금 잘 살고 있는 걸까

인간은 불안감을 기본 옵션으로 달고 태어난다. 나를 위협할 수 있는 천적으로부터 스스로 보호하기 위한 자기 보호 시스템 같은 거다. 평온한 상태에서도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한다. ‘방금 무슨 소리 듣지 못했어?’, ‘무슨 소리야 아무것도 없는데 술이나 한 잔 마셔 좋은 날에 왜 이레’ 전자의 사람은 살아남았을 확률이 높고 둔해 빠진 후자의 사람은 역사의 거름이 되었을 확률이 높다. 그렇게 불안해하고 겁 많았던 원시인들이 대대손손 씨를 뿌려 우리의 조상되었다.


불안감이 적당하면 좋은데 가끔 흘러넘칠 때가 있다. 대부분 일어나지 않을 일에 대한 불안감이다. 지금은 크게 별일이 없다. 밥 잘 먹고 사람들 잘 만나고 객관적으로 주변을 돌아봤을 때 딱히 뭐가 문제가 있는 상태가 아님에도 뭔가 내 마음에는 불안감이 크게 자리 잡고 있다. 말도 안 되는 걱정이나 정체를 알 수 없는 답답함.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는 이 불안감은 그저 자기 보호 시스템의 오작동인가. 왜 오작동이 났는가.


불안하다. 직장은 잘 다니고 있지만 이것도 결국 시한부라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곧 내가 나가야 할 차례임이 피부로 느껴진다. 어느덧 주변에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늘어난다. 존경하고 좋아했던 잘 나가던 선배들이 죄다 퇴사를 했다. 이제 남은 건 나를 바라보는 후배들뿐. 직장인의 운명은 퇴사다. 다른 건 없음을 잘 안다. 그다음은 무엇인가. 직장인의 삶 그다음 인생 2회 차를 준비해야 한다. 준비하고 있다. 아 그러면 아마도 내 불안감은 바로 이 ‘준비’에 있는 것 같다.


이 길이 맞는 길인가. 내가 지금 괜한 허튼짓을 하고 있는 건 아닌가. 이게 되긴 되는 건가 식의 불안감인가 보다. 그렇다면 잘 타일러서 돌려보내면 된다.


뭐든 안 하는 것보단 낫다. 계속하면서 실력을 키워나간다고 생각하면 된다. 여러 가지 내가 할 수 있는 것 중에 가장 좋아하고 꾸준히 할 수 있는 걸 선택한 게 확실하다. 여러 가지 실험으로 이미 증명된 사실이다. 문제없다. 불안해하지 말고 하던 대로 꾸준히만 하면 된다.


다음은 타인과 비교. 이 비교가 바로 불안감의 핵심 종양일 경우가 많다. 우리는 주로 비교를 통해서 행복의 잣대를 만든다. 대한민국 교육의 커리큘럼이 줄 세우고 등수 매기는 쪽으로 되어 있다 보니 나도 그 틀 안에서 해방되지 못했다.


현재 돈이 얼마나 있나. 그리고 그 돈이 앞으로 늘어날 전망이 있나. 정리하자면 직장인의 삶은 시한부이고 돈이 늘어날 가망은 없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은 그리 돈이 될 만한 일은 아닌 것 같고, 그렇네 불안할만하네.


그래서인지 자꾸 술을 마시게 된다. 핑계는 다양한데 좋은 일이 있다고 마시거나 없다고 마시거나 놀러 갔다고 마시거나 안 갔으니 마시거나 생각해 보면 그게 전부 불안감 때문인 것 같다. 잊고 싶고 도파민 가득히 즐거운 기분을 느끼고 싶어서 술을 자주 마시게 된다. 자주 마시고 나면 결국 ‘이대로 괜찮은가 나는 지금 잘 살고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또 올라오게 된다. 돌고 돈다.


나쁘지 않다. 잘하고 있다. 막연하게 괜찮아 잘하고 있어 따위 위로가 아니라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 괜찮다. 잘 가고 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말해보겠다.


일단 나는 뭔갈 하고 있다. 실력을 쌓아가고 있는 일을 하고 있다. 아직 발휘하진 않았지만 그 결과가 나오진 않았지만 가만히 앉아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건 아니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뭐가 되었든 ‘준비’를 하거나 실력을 쌓아가고 있는 중이라면 일단 50점은 받아도 된다. 그 와중에 불안감이라면 ‘쉬 마려운 느낌’처럼 당연한 거라 방금 내가 한 것처럼 자주 내 마음에 호~를 불어주면 된다.


나머지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미래에 대한 공포나 타인과의 비교를 통한 내 신세의 한탄은 그래 가끔 그럴 수 있지. 그것만으로 술도 한잔할 수 있는 거고. 마시고 훌훌 털어내면 그만이다. 필요하면 자기 계발서도 읽고 에세이도 읽으면서 위로를 받으면 된다. 그런 먹구름은 삶을 살면서 충분히 발생할 수 있다. 늘 해만 비칠 수 있나 흐린 날 비도 오고 하는 거지. 그 정도로 치부하면 된다.


것보다 다른 거에 집중을 해야 한다. 주제를 확 바꿔서 내 삶에 작지만 행복한 면을 잡아낸다. 우리 부부는 사이가 좋다. 가끔 티격태격하지만 그래도 금방 화해하고 이제 나이 들고 서로 감정 소모 덜하고 에너지를 아끼자는 다짐을 하며 맥주도 한잔 마시고 했다. 회사에서도 입지가 나쁘지 않다. 3년째 팀장을 유지하고 있고 최근 성과도 냈고 인정도 받았다. 똘똘한 신입사원이 들어와서 팀 분위기도 한층 좋아졌다. 글쓰기도 비축분을 많이 모아두었다. 이제 하나씩 세상에 내보내면서 피드백받으며 더 재미있게 쓸 수 있을 것 같다.


최근에 저녁을 적게 먹고 3주 만에 3킬로그램 정도 감량했다. 얼굴도 부기가 빠지고 예전 모습을 찾고 있는 거 같아 만족하고 있다. 다만 술을 아예 끊지는 못했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로 마음먹고 있는데 한번 마실 때 많이 마셔서 문제 이긴 하지만 그래도 나름 잘 지키고 있다. 나쁘지 않다. 잘되고 있다.


그렇게 쭉 생각하고 나니 정말로 걱정할 이유가 별로 없다. 불안할 필요도 없어졌다. 물론 이렇게 대충 덮고 나면 또 먹구름이 밀려오면서 불안감이 엄습하겠지만 그때도 똑같이 생각하면 되지. 나쁘지 않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좋은 점이 더 많다며. 계속 반복하고 되뇌고 하면서 토닥토닥해주면 된다.


적당히 불안한 건 나를 더욱 채찍질할 수 있는 동력이 되어 주기 때문에 오케이. 그런데 너무 심하게 들이대면 ‘아 이거 아니잖아 적당히 하셔야지. 이러면 될 일도 안 되겠어. 대충 하시고 돌아들 갑시다’ 하며 정중히 사양해야 할 일이다.   


머리로는 안다. 그런데 계속 불안하고 걱정이 몰려오는 건 어쩔 수 없다. 이렇게 글로 쓰고 읽고 다짐하면서 돌려보내는 수밖에. 언제까지? 자주. 수시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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