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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해준 Jan 15. 2024

오쇼 라즈니쉬의 문제적 유토피아 - 채프먼 웨이

명상, 그 빛과 어둠의 기록

1981년, 미국 북서부 오리건주의 앤텔로프(Antelope). 이곳은 붉은 먼지만 날리는 척박한 불모지였다. 살고 있는 주민이라곤 50여 명의 보수적인 기독교인이 전부. 어느 날, 붉은 옷을 입은 이방인들몰려온. 그리고는 그들만의 왕국을 건설하기 시작한다. 야생의 황무지에 하나둘씩 들어서는 하얀색 건물들, 그리고 밤낮없이 오르가슴의 신음소리를 내자체 법령을 가지고 군사 훈련을 실시하는 사람들. 이 이상하고 위험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Wild wild country에서 펼쳐진다.


오쇼 라즈니쉬(Osho Rajneesh, 1931-1990)는 명상이나 종교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들어봤을, 20세기의 영적 인물 중 가장 논란이 되는 인물이다. 전통적 종교 교리와 기존의 사회 체제를 인간에 대한 억압으로 보고, 모든 개인의 자유와 개체성이 실현된 새로운 유토피아를 제시한 오쇼. 그는 특히 성적 억압을 노이로제의 근본 원인으로 보고, 그로부터의 해방을 부르짖었다. 이러한 사상은 정부에 커다란 위협으로 작용하여 고국 인도에서 활동이 제한당하자, 그는 비서 쉴라(Ma anand Sheela)를 앞세워 미국으로의 이주를 감행한다. 이 모든 과정을 전체 6부작, 총 러닝 타임 7시간으로 심층 취재한 다큐멘터리가 ‘Wild wild country’이다.



다큐는 당시의 풍부한 자료들로 구성된 건 물론이고, 이제는 노인이 된 여러 관계자들이 나와서 다양한 입장을 대변한다. 무엇보다도 백발의 완고해 보이는 여성 아래 '쉴라'라는 이름을 보았을 때, 나는 내 두 눈을 의심했다. 쉴라가 아직 살아있었단 말인가?지구상에? 게다가 양로원을 운영하다니! 마치 어린 시절 읽은 동화 속 녀가 생계를 꾸리는 모습을 뉴스에 본 것처럼 비현실적이었다. 물론 너무도 당당한 그녀의 주장을 받아들일지 말지는, 보는 사람 각자의 선택이다. 다큐멘터리 본연의 정체성대로 이 영화는 판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를 찍을 때 카메라가 롱테이크로 천천히 회전하며 주변을 촬영하듯이, 다큐는 한 사건을 바라보는 상반되고 다양한 시선들 모두를 공평하게 조명한다. 일반인이 이해할 수 없는 명상적 삼매의 황홀경을 전해준 오쇼에서부터 전통적으로 지켜온 미풍양속을 파괴당한 지역 주민들, 오쇼의 최측근으로 모든 문제의 중심에 서 있다가 갑자기 떠나버린 쉴라와 끝까지 오쇼에게 남아있던 충실한 제자들까지. 다큐는 각자의 입장과 심경이 펼쳐진 스펙트럼의 가장 끝에서 그 반대 끝, 그 사이의 각 지점들과 겹쳐진 미묘한 경계들을 오가며 문제의 복잡다단한 면을 보여준다.


우리 삶에 일어나는 수많은 사건 중, 완전히 옳거나 그른 경우가 얼마나 있을까? 전통적인 기독교인들이 살던 미개척지에 갑자기 나타난 이질적인 종교 조직(cult)은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그들이 표방하는 프리섹스와 기존 관습에 정면으로 반하는 라이프 스타일은 조용하던 시골 마을을 삽시간에 태풍의 눈으로 몰아넣는다. 반면 오쇼 코뮨의 지도층이었던 지식인들은 자본주의와 삶의 공허함에 절망하여, 인간을 억압하는 사슬을 끊고 자유롭기를 갈망하는 이들이었다. 선량한 주민들의 평화로운 일상의 수호와, 인습에 항거하는 구도자들의 혁명적 모험. 우리는 어느 쪽의 손을 들어주어야 할까?



이렇듯 첨예한 두 이상(理想)의 대립 뒤편에는, 더욱 무서운 현실이 독버섯처럼 자라나고 있었으니. 오쇼의 전적인 위임으로 막강한 실권을 쥔 쉴라는 마피아 조직이나 저지를 법한 범죄 행위들을 비밀리에 꾸미고 자행한다. 지역에서 축출당할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미 전역에서 부랑자들을 끌어모아 의회에 투표권을 행사하게 하는가 하면, 오쇼를 몰아내려고 한 오리건 주민들에게 치명적인 살모넬라 병균을 살포하고, 오쇼를 반대한 정치인들의 암살을 시도하며, 코뮨 내부에서도 자신의 파워를 잃을까 봐 오쇼를 도청하고 약물을 사용하는 행위를 서슴지 않는다. 이 행위들은 차후 FBI가 오쇼를 미국에서 추방시키는 데 필요한 모든 빌미를 제공한다.


쉴라에게 모든 것을 일임하고 3년간 침묵하던 오쇼. 그는 쉴라와 측근들이 제트기를 타고 떠나버리자, 돌연 입을 연다. 이 복잡한 사건과 인물들의 행태들을 숨 가쁘게 지켜보던 관객의 마음은, 하나의 질문으로 귀결된다.


오쇼는 쉴라의 행위를 몰랐을까?
그는 3년간 무엇을 했고, 왜 침묵했을까?

오쇼가 그녀의 범죄행위를 알고도 묵인하거나 부추겼다면, 그는 실로 위험한 교주일 것이다. 만약 너무 순진해서 쉴라에게 이용당한 것이라면, 대상을 꿰뚫어 본다는 그의 영안(靈眼) 제3의 눈은 거짓임이 분명하다. 아니면 3년간 외부세계의 인식을 잃어버리는 무상삼매에라도 들었던 걸까? 그도 아니면 쉴라의 만행을 알면서도 초연함이라는 교훈을 주기 위해, 모든 쇼를 그저 즐기고 있었던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의 행동은 미심쩍고 석연치 않다. 그럼에도 FBI에게 체포되어 수갑을 찬 채 연행되는, 한 인간으로서 마땅히 비참해야 할 상황에서조차 흐트러짐 없는 그의 우아한 몸짓 미소를 보는 순간, 오쇼를 사랑했던 제자들의 마음에  마음도 잠시 포개어짐을 느꼈다.


FBI에 의해 수갑이 채워져 끌려가는 오쇼


이 엄청난 스토리의 실제적인 주인공인 쉴라. 그녀는 16세의 나이에 오쇼의 가슴에 안겨 '죽음마저 받아들일 수 있는 완전한 받아들임 acceptance'을 험하고, 평생을 오쇼와 함께 하겠다고 결심한다. 그러나 아름다운 결심은 결코 아름다운 결말로 끝나지 않았다. 둘의 사이는 파국으로 치달았고, 그녀는 오쇼의 눈을 피해 도망다녀야 했다. 그러나 현재의 그녀는 여전히 오쇼를 사랑하며, 자신이 받아야 할 벌은 모두 받았으니 아무런 죄가 없다고 항변한다. 선악을 떠나, 절대적으로 강한 것은 경외심 불러 일으킨다. 그 젊은 30대 중반에 광활한 사막 위에 오쇼의 유토피아를 건설하고자 했던 그녀의 카리스마는 70을 넘긴 백발의 나이에도 건재하다.


사람들은 쉴라가 아주 영리하고 사람을 다룰 줄 알았다고 한다. 그녀 스스로도 자신이 법의 틈새를 이용했다고 한다.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사회를 유지하는 법질서와 각 개인이 지닌 고유한 자유와의 대립, 그리고 대다수가 지향하는 선량한 일상과 혁명가가 꿈꾸는 이상향의 간극을 첨예하게 보여주는 이 영화는, 결코 마음이 원하는 분명한 답안을 제시하지 않는다. 오쇼의 삶과 죽음이 그러했듯이, 어쩌면 인간의 삶과 역사가 이런 반대되는 것들 사이의 모순과 투쟁, 그 다이내믹한 운동의 정반합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 아닐까?


미국에서 추방되어 인도로 돌아온 오쇼는 1990년 세상을 떠난다. 그의 삶처럼 죽음 또한 수많은 의혹과 비밀 속에 남겨졌으니, 확실하고도 분명한 사실은 죽음뿐이었다. 그럼에도 오쇼가 차린 한 판에 20세기 지구상의 수많은 인간들이 연루되었고, 그가 남긴 강론들은 사후 30여 년이 넘은 지금도 베스트셀러로 사랑받고 있다.


I leave you my dream
나의 꿈을 당신들에게 남긴다

                                          

그도 갔고, 언젠가 우리도 갈 것이다. 이 지구라는 필드에서 각 생명의 꽃을 피우고 향기를 발산하다가 때가 되면 사라질 것이다. 오쇼와 관련된 모든 논란과 의혹은, 그가 우리에게 남긴 수많은 강론과 영상이 전하는 감동과 전율만큼이나 깊은 애증 메아리로 되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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