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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지 않는 부서로 발령받았습니다.

회사에서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을 이겨내는 법


생각하지도 못한 부서로 발령이 났다. 그간의 근무경력과는 전혀 상관없는 곳이다. 공채 여자직원이 그 부서에 발령을 받는 것도 드문 일이었다. 참 많이 당황스러웠다. N년 동안 회사에 다니면서 웬만한 어려움은 다 극복했다고 생각했는데, 또 난관을 마주할 줄이야!


우리 회사는 순환보직 인사제도를 운영 중이다. 한 부서에서 1년 반 혹은 2년가량 근무하고 나면, 인사실에 이동을 희망하는 부서를 3개까지 적어 보낸다. 그리고 인사실에서는 다수의 직원들이 제출한 이 '희망전보서'를 검토한 후 직원들을 각 부서로 배치하게 된다. 원한다면 같은 직무의 일을 계속할 수 있겠지만, 주기적으로 직무와 업무 분야가 바뀌는 것이 보통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희망전보서를 쓸 때마다 거의 내 뜻대로 이동했었다. 3지망 중 꼭 원하는 부서에 근무하게 되었었고, 그게 다른 사람들에게도 보편적인 일인 줄 알았다. 게다가 얼마 전까지 나는 외부기관에서 파견 근무를 했었는데, 본사와 파견된 곳 모두에서 '일 잘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생활했다. 안 그래도 밖에서 고생하고 왔는데 잘한다는 평가까지 들었으니, 나는 당연히 내가 원하는 부서에 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난 더 높아지고 싶었다. 능력 있다고 평가받는 어느 선배들처럼 요직을 꿰차고 싶었다. 더 똑똑해지고, 더 능력이 있으며, 더 잘 나가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좋은 부서, 나쁜 부서가 어디 있겠냐마는 이왕이면 일 잘하는 사람들이 보다 많이 모인 곳에서 가고 싶었던 것이다. 따라서 희망부서 3개 모두를 회사의 핵심부서라 일컬어지는 파트에서 골랐다.


그러나 이렇게 위로만 높아지고자 하는 나의 계획은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내가 가게 될 부서는 회사 대표의 직속 부서이지만, 주요 사업 분야나 전략을 다루는 부서가 아니다. 게다가 상사도 민간에서 경력을 갖춘 분 중 뽑은 임시직인 데다, 직원들 사이에서 '별로 중요하지 않지만 문제는 많은 부서'로 인식되어 있는 곳이다.


인사발령이 난 것을 보자마자 동료들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혹시 너 그 부서에 지원한거야?”

"그 부서에 역량강화가 필요해서 A님을 거기로 보낸 게 아닐까요?"

"네가 에이스라 그 부서에 일 잘하는 사람 한 명 보낸거야.“


이렇게 말해주는 사람들이 고마웠다. 하지만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이해할 수 없는 인사(人事)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인사팀장님께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다행히 인사팀장님은 이전에 내가 직속상관으로 모신 경험이 있는 분이었다. 팀장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실 그 부서는 기관장 직속 부서이고 전사적인 역할을 해줘야 하는데, 그간 그런 부분이 부족했어요. A님이 그 부서에 가서, 그 부서 본연 역할이 활성화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리고 그 부서에 사실 연내에 꼭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어요. 내부감사에서 지적된 문제가 있는데, 그 문제에 대한 개선 없이 정부로부터 올해 예산 몇 십억을 받아온 상태예요.
 
하지만 A님이 가셔서 전 부서 대상 TF를 운영해  해결하면 될 테니 너무 걱정 마세요."


내부 감사에서 지적된 이슈를 해결하고, 정부로부터 받은 예산 몇십억을 집행하는 것도 이제 오롯이 내 몫이 되었다. '회사가 해결해야 할 문제를 왜 개인에게 온전히 떠넘기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해할 수 없는 인사발령, 그리고 시스템이 아닌 개인의 역량에 이 모든 것을 기대려 한다는 생각보다 더 걱정이 된 건 '앞으로 무슨 재미로 일하지?'란 생각이었다. 이번에 새로 가는 부서는 면밀한 계획과 시스템에 의해 움직이기보다는 갑자기 터진 일을 임기응변식으로 처리하는 부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평소에는 중요하게 인식되기 힘들고, 다른 부서에서 보기에 '저 부서에서는 대체 무슨 일을 하는 거야?'라고 생각하기가 쉽다. 일에서 얻는 보람과 성취, 그리고 성장한다는 느낌을 중요시하는 나는 이 업무를 통해 크게 배우고 성장할 것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상태로 다음 인사 시즌이 되기까지 최소 1년을 더 버텨야 한다는 사실에 한숨이 푹푹 나왔다. 그러다 갑자기 한 문구가 떠올랐다.



When life gives you lemons,
make lemonade!
(삶이 당신에게 레몬을 준다면,
그것으로 레모네이드를 만들어라!)


출처 : unsplash.com



어쩌면 이건 관리자가 되는 연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연차가 쌓여 부서장이 되면, 원하지 않는 부서로 갈 가능성이 더 크다. 실무자는 희망전보서를 통해 원하는 부서를 고를 수가 있지만 팀장 이상은 인사 발령에 무조건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관리자로서의 준비는 일을 잘하는 것보다 예측하지 못한 상황을 잘 다루는 것에서 길러질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부서장은 언제 어떤 이슈가 터질지 모른 상태에서 업무 성과에 대한 책임을 갖고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해결사' 이미지가 생긴 것이 달가운 일은 아니다. 앞으로도 복잡하고 난도가 높은 일을 담당하게 될 가능성이 있고, 그 문제를 어렵게 해결하고도 크게 인정받기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건, 또 한 번 지혜롭고 성실하게 이 시간을 버텨내는 것이다.

 

겨울을 겪어낸 양파가 봄에 심은 양파보다 몇 배나 달고 단단하다고 한다. 나는 그저 인생이란 긴 여정에서 새로운 임무 하나를 받게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회사 다닐 날은 많이 남았고, 인생이란 게임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까.


사실 난 이미 레몬을 레모네이드로 만든 경험이 있다. 이왕 이렇게 된 것 다시 한번 달달하고 상큼한 레모네이드를 만들어 보고 싶다. 언제나 그랬듯 지루한 일 속에서도 내가 만족감을 얻고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찾아내고 싶다.


그리고 믿기로 했다. 전혀 해보지 않았던 업무, 그간의 경험을 활용하기 어려웠던 이 업무가 나를 더 넓고 깊어지게 만들 것이라고. 이번에 만들게 될 레모네이드가 얼마나 맛있을 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작가가 레몬을 레모네이드로 만들어본 경험이 궁금하다면, 이 글을 함께 읽어보세요!

    : 어느 인정 중독자의 고백 (brunch.co.kr)


대문사진 출처 : Ets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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