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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P 지시, 꼭 해야 하나요?

이런 지시는 언제든 환영입니다.



최악의 회의가 소집됐다. 금요일 퇴근 30분 전 회의라니! 그런데 상황이 조금 심각한 것 같다. 금요일 오후 5시 30분, 지금 이 시각 다른 부서에서도 삼삼오오 모여 회의 중이다. 팀장님은 어렵게 말을 꺼내셨다.


긴급 업무에 투입될 직원 명단을 오늘 당장 주무부처로 제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에 도착한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들을 김포공항에서 진천에 있는 공무원 교육원까지 호송하는 일이라고 했다. VIP 지시였다. 원래 주무부처에만 연락이 왔는데, 업무 관련성과 주무부처의 인력 사정을 고려해 급히 지원 요청이 왔다고 했다.

 VIP : 공직사회에서 대통령을 지칭하는 은어. VIP 지시사항, VIP 말씀, VIP 업무보고와 같이 쓰인다.


'주무부처에서 알아서 할 수 있는 거 아니냐', '우리가 여행사냐', '단순히 호송만 하는데 굳이 직원들이 차출되어야 하냐'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한창 급한 업무들이 돌아가는 와중에 업무일 하루를 통으로 뺀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코로나19 확진자가 최고치를 경신하던 2021년 8월, 감염 가능성이 높은 공항을 거쳐 대거 입국하는 인력과 접촉하는 것만으로도 위협으로 느껴지던 때였다. ‘과연 누가 갈 것인가?’가 관건이었다.


“제가 가겠습니다!”


나는 하늘까지 닿을 듯이 손을 들었다. 나는 꼭 이 일을 해야 했다. 이번에 한국에 오는 특별기여자 중에는 내가 담당했던 프로젝트의 현지 관계자들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세 번의 아프가니스탄 출장에서 마주쳤을지 모를 그들이 한국에 온다는데 내가 어떻게 나서지 않을 수 있을까?  






부서별로 차출된 우리들은 특별기여자들을 안전하게 호송하기 위한 작전을 짰다. 입국과정에서 육체적, 심리적으로 취약해졌을 그들 사이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랐다. 이동 중 이탈자가 나올 가능성, 특별기여자들의 입국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위협을 가할 경우 등 상상력을 총 동원해 시나리오를 짜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리는 그분들을 무사히 호송할 준비를 마치고 공항으로 갈 날을 기다렸다.


처음엔 당장 내일 공항으로 출발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입국하는 날짜가 계속 바뀌었다. 짐을 쌌다 다시 푸는 날이 반복됐다.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의 입국을 앞두고 수많은 언론 보도가 쏟아졌지만, 도착시간과 항로 등 정확하게 알려진 것은 없었다. 정보는 시시각각으로 변경되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 국제공항에서 명단에 없는 아프간 사람 1명이 확인돼 특별기여자들이 탑승한 군수송기가 카불 공항으로 돌아갔던 것이었다.


예정된 날짜로부터 4일 뒤 밤 9시, 진짜 그분들이 온다는 연락을 받고 김포로 향했다. 그런데 아뿔싸! 버스가 출발한 지 10분도 되지 않아 ‘돌아가라’는 연락을 받았다. 우리의 투입시간이 내일 새벽으로 변경되었다고 했다. PCR 테스트에서 음성으로 판명된 사람들만 진천으로 호송해야 하기에, 검사결과가 나오는 시간까지 기다려야 했던 거다. 잠옷도, 세면도구도 준비하지 못한 채 임시 숙소에서 한밤 중 대기가 시작됐다. 우리는 특별기여자분들이 있는 김포로 향할 7시를 기다리며, 두려움과 설렘 속에서 잠깐 눈을 붙였다.


다음날 아침, 버스는 김포에 도착했고 우리는 간이 화장실에서 방호복으로 갈아입었다. 딱 맞는 사이즈로 준비되지 않은 방호복이 혹여나 풀어질까, 끈으로 꽁꽁 싸매고 보호 안경과 장갑까지 착용했다. 이제 화장실을 갈 수도 없다.


우리는 특별기여자 분들이 머물고 있던 숙소에서 차례대로 나오길 기다리다 담당하는 버스의 순서대로 이동했다. 드디어 특별기여자 32명이 내 관할 버스에 탑승했다. 주요 길목에서는 지역경찰서에서 원활한 교통을 위해 길을 터주셨고, 앞뒤로 경찰차의 호위를 받으며 진천으로 떠났다.


당시 현장 사진. 코로나19 감염 차단을 위한 방역조치가 중요했다. (출처 : 작가 본인 촬영)



버스는 너무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다. 어린아이들이 버스에서 용변을 볼 가능성을 대비해 준비한 물티슈와 비닐봉지가 아주 유용하게 쓰였다는 점만 빼면 우리의 업무는 계획대로 진행됐다. 중간에 들른 휴게소에서도 예상했던 최악의 시나리오는 벌어지지 않았다.






버스가 드디어 진천으로 진입했다. 횡단보도 한 귀퉁이를 막고 경례를 해주시는 경찰 분이 보였다. 저분도 분명 ‘내일 이 업무에 투입되도록 해!’라는 긴급 지시를 받았을 텐데… 쏟아지는 비를 온몸으로 맞으며 우리에게 인사를 건네는 그분을 보니, 이 일과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진심이 느껴져 괜스레 가슴이 뭉클해졌다. 곧 우리는 목적지인 진천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에 무사히 도착했다. 그리고 개발원 직원분께 특별기여자분들을 인계한 후 우리의 임무는 종료됐다.


그제야 이 일을 성공적으로 완수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의 정성과 노력이 있었을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국방부, 국무조정실, 외교부, 법무부, 출입국 관리소, 공군, 육군, 공무원인재개발원 등 많은 기관이 서로의 존재를 모른 채 각자의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진천에 도착한 그때, 그렇게 세상에 없던 얼굴들이 드러났다. 이 일은 ‘미라클 작전’이라는 거대한 계획의 일부였던 거다. 그 많은 사람들의 힘과 마음으로, 우리는 총 377명의 아프간스탄 특별기여자분들을 문제없이 인도할 수 있었다.






누가 나에게 ‘공공기관에서 일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을 말해보라고 한다면, 이 일이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것 같다. 나는 지금 하는 일을 사랑하는 만큼 공공분야의 한계도 많이 느끼고 있었다. 공익을 위해 일한다는 건 ‘보이지 않는 얼굴’을 위해 일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과를 보기까지 걸리는 수년의 시간 동안 내 일이 향하는 곳을 더듬더듬 짚어가며 일의 의미를 부여하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손에 잡히지 않는 일의 결과와 성과 속에서 보람과 만족을 알아서 찾아야 했다. 공공영역에서 몸담은 시간이 늘어갈수록 이런 부분의 아쉬움을 더욱 깊이 느끼며, 일로써 나를 증명하고자 하는 욕구도 점점 커지는 중이었다.


그런데 이 일은 달랐다. 건강한 몸과 마음만 있으면 되는 일이었다. 일의 결과 보다 ‘함께하는 것’이 중요했다. 크고 대단한 무엇이 되려 하기보다 '세상을 움직이는 데 필요한 작은 일을 그저 충실히 해내는 것'이 중요했다.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것이 공공분야 일의 본질이 아닐까?'






공공기관은 지금도 수많은 VIP 지시에 대응하고 있다. 나라를 떠들썩하게 한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 부산엑스포 유치 행사 같은 곳에도 동원된다. '예산을 늘려라 혹은 줄여라'하는 VIP 한마디에 기관 전체가 휘청거리기도 한다. 나라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솔직히 가끔은 ‘이걸 왜 해야 하는지’, ‘굳이 우리가 해야 하는지’ 의문을 품게 될 때도 있다.


하지만 이런 VIP 지시라면 난 얼마든, 언제든 해내고 싶다. 내가 '여기서 일하길 잘했다'라고 생각하게 해주는, 공공영역에서 일하는 사람들만이 경험할 수 있는, 일에 대한 감사와 충만함을 흠뻑 느낄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으니까.  




이미지 출처 : MBC 뉴스데스크(2021.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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