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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관의 1년은 이렇게 흘러갑니다.

오늘도 공공기관의 시계는 돈다.


공공기관의 1년은 새로움의 계절인 3월과 함께 시작한다. 3월은 경영평가와 내년도 예산 신청 업무가 걸려있는 중요한 시기다.


공공기관 경영평가는 공공기관이 정부 지침에 맞게 사업을 얼마나 잘 수행했는지를 평가한다. 우리나라 약 350개 공공기관 중에서 누가 정부 정책을 얼마나 잘 이행했는지를 사업과 경영 부분으로 나눠 평가하고 등급을 매긴다. 경영평가 결과는 기관장의 해임 여부뿐 아니라 직원의 성과급과 직접 연결된다. 2월에 기획재정부(이하 ‘기재부’)에 제출한 경영평가 보고서를 바탕으로, 3월에는 평가위원들이 직접 공공기관에 방문해 보고서 내용이 사실인지 확인하는 질문을 한다. 기관의 순위를 결정짓는 일이기 때문에 회사 임원을 포함한 모든 직원이 긴장한다. 그래서 여러 차례 모의 실사와 리허설을 통해 철저히 준비한다.


3월은 내년 업무계획을 구상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농사로 치면 씨앗을 뿌리는 시기인 거다. 공공기관은 매년 얼마 큼의 예산을 쓸지, 기재부에 요청하고 그 타당성을 심의받는다. 이를 위해 기재부는 내년의 살림살이에 대한 자료를 요청하는데 이게 바로 ‘202*년도 사업계획서’이다. 기재부에 5월까지 내년도 예산을 요구하기 위해서는 공공기관은 주무부처에 3월까지 내년에 진행할 사업의 내역서와 여기에 필요한 예산을 정리해 보고한다. 오와 열을 잘 맞춘 수백 개의 한글파일과 숫자로 가득한 엑셀파일을 정리하는 일에는 한 치의 오차가 허용되지 않는다. 숫자를 다루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기관의 작년 성과와 내년 살림살이에 대한 외부 대응을 하다 보면 3월이 훌쩍 지나간다.


내년도 예산은 올해 3월부터 계획한다.(출처 : 기획재정부)



4월이 되면 본격적으로 기관의 사업을 시작하기 위해 입찰 과정에 착수한다. 공공기관은 자체적으로 많은 숫자의 대규모 사업을 직접 하기 어렵기 때문에, 입찰을 통해 사업을 대신 수행할 기관들을 선정한다. 사업수행기관 선정은 보통 2~3개월이 걸리는 기나긴 여정이며, 매우 복잡하고 까다롭기 때문에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 작업을 튼튼히 해둬야, 하반기에 업무를 하고 예산을 쓰는데 문제가 없다.


5월은 기관의 식구를 늘리기 위해 애쓰는 때다. 공공기관은 기재부의 승인을 통해서만 전체 직원 수를 늘리거나 줄일 수 있다. (그렇다, 공공기관에겐 기재부가 왕이다!) 그래서 내년도 신입 직원 숫자와 직급별로 몇 명을 승진시킬 것인지에 대한 계획과 그 이유를 담아 기재부에 제출해야 한다. 직원 숫자는 인건비 예산과도 직결되기 때문에 아주 중요하다. 기재부 검토 과정에서 소위 말해 ‘까이는’ 걸 줄이기 위해 예산을 담당하는 팀장님들은 세종시를 몇 번이고 찾는다. 기관 예산을 쥐고 있는 실무자, 기재부 사무관을 단 10분 만나기 위해 왕복 5시간 이동을 감수해야 할 때도 있다. 목표는 예산도, 인력도 기재부에 처음 요구한 숫자에 최대한 가깝게 승인을 받는 것이다!


6월에는 작년 한 해 동안 열심히 밭을 일군 결과물을 수확하게 되는데 바로 공공기관 경영평가 결과가 발표다! 우리 회사는 어떤 등급을 받았고, 비슷한 기관들 중 순위가 몇 위인지, 또 사업 부분과 경영 부분 순위는 각각 어떤지 부서 단톡방, 동기 단톡방을 막론하고 실시간으로 공유된다. 경영평가 결과가 발표되어야 진짜로 작년 업무가 끝난 느낌이 든다. 경영평가 결과를 기반으로 성과급을 받으며, 개인의 근무평가도 경영평가 결과와 연계해 이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영평가가 끝났다고 작년 업무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 건 아니다. 예산 결산 업무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예산 결산이란, 국회가 기관의 한 해 동안 돈 씀씀이를 살펴보고 ‘지난해 예산 집행은 이제 완전히 종료야!’라고 도장을 꽝! 찍어주는 일이다. 국회의 심의를 받기 전 주무부처와 기재부에 보고를 하게 되는데, 7월부터 이 작업이 시작된다. 왜 작년에 예산을 이렇게 썼는지에 대해 소상히 설명해야 한다. 결산이 마무리되는 8월까지, 예산결산을 둘러싸고 대관업무를 하느라 바쁘다. (* 공공기관의 예산 결산 과정이 궁금하다면, 이 글을 읽어보세요! : https://brunch.co.kr/@fe560d11240045c/43)


8월은 정부에서 설정한 필수 지표를 이행하는데 집중하는 시기다. 정부에서는 주요 정책을 국가 전체적으로 실행하기 위해 정부조직과 공공기관에 주요 과제를 준수할 것을 요청하고 매년 그 결과를 평가한다. 대표적인 것이 행정안전부의 정부공개 종합평가, 국민권익위원회의 공공기관 청렴도 조사, 인사혁신처의 적극행정 우수사례 경진대회 등이다. 이를 위해 공공 데이터를 공개하고, 조사에 참여할 이해관계자 리스트를 제출하고, 부서의 성과 중 확산할만한 것들도 열심히 찾는다. 이런 지표들은 모두 공공기관 경영평가에 포함되기에 무조건 달성해야 한다!


9월은 국정감사의 계절이다. 국정감사는 국회가 국가기관의 일 전반에 대해 조사를 하는 것을 말한다. 입법기관이 행정기관에 견제와 감시를 하는 3권 분립이 실현되는 업무로 뉴스에서 국회 얘기가 주야장천 나오는 때가 바로 이 때다. 보통 국정감사는 매년 추석연휴 직후에 열린다. 그래서 국회의원 보좌관들은 우리가 맘 편히 쉬지도 못하게 항상 명절 전에 자료를 요청했었다. (올해는 웬일로 추석연휴가 한참 지난 10월에 국정감사가 열렸다. 참으로 다행이었다, 휴~)  


국정감사에서 지적사항이 나오면 꽤나 피곤해진다. 언론에 안 좋은 쪽으로 기사도 나온다. 사안이 심각할 경우 감사원에서 특별감사를 할 수도 있다. 그러니 국회 요구자료는 항상 신속히 대응하고 정확한 자료를 제출해야 한다. 일 년에 단 한 번뿐인 국정감사 날을 무사히 보내기 위해, 기관장 주재로 예행연습을 하는 ‘독회(讀會)’도 여러 번 한다. 자칫하면 기관에 대한 대외 이미지와 인식이 나빠질 수 있기에 조심스럽게 임해야 한다. 그러니 대관업무의 꽃은 바로 국정감사다.


2024년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 사진(출처 : 경인일보)



험난한 국정감사의 산맥을 넘고 나면, 10월에는 5년 단위의 공공기관 중장기 경영목표를 기재부와 주무부처에 제출한다. 기관의 가까운 미래를 요약해 놓은 중장기 경영목표는 기관 경영평가를 하는데도 쓰인다. 중장기 경영목표에 정부의 정책방향을 잘 담았는지, 현실적인 이행계획이 담겨 있는지, 기관의 청사진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는지를 평가받기 때문이다.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 제46조 1항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제46조(경영목표의 수립)]
기관장은 사업내용과 경영환경, 제31조 제3항 및 제4항의 규정에 따라 체결한 계약의 내용 등을 고려하여 다음 연도를 포함한 5회계 연도 이상의 중장기 경영목표를 설정하고, 이사회의 의결을 거쳐 확정한 후 매년 10월 31일까지 기획재정부장관과 주무기관의 장에게 제출하여야 한다.


기관의 앞날에 대한 밑그림을 그리고 국정감사를 마무리하는 10월을 보내고 나면 이제 남은 일은 예산 집행과 성과 창출이다. 주어진 예산을 계획대로 집행하는 것은 공공기관의 의무이자 가장 큰 숙제다. 올해 예산을 다 못 쓰면 국회, 기재부, 감사원 등 각종 외부기관으로부터 시달리게 되고, 내년도 예산도 삭감될 수 있다. 또 예산 집행률은 기재부 경영평가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그래서 하반기가 되면 기관장이 직접 나서서 이걸 챙기는 경우가 많다. 사업을 하다 보면 꼭 예상치 못한 변수들이 생긴다. 그래서 예산을 100% 다 집행하는 건 생각보다 조금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말을 보다 행복하게 맞이하려면 11월에 조금이라도 돈을 더 써야 한다. 연말에 지자체에서 보도블록 뒤엎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다.


12월은 부서별 실적을 포장하고 뽐내는 때다. 12월에 '아름다운 부서 성과 보고서'를 제출하기 위해, 11월부터 부서와 조직의 성과의 최대치를 끌어내기 위한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정부에서 강조하는 국민소통 활동도 이 시기에 집중된다. 연말은 여러모로 참 소통하기 좋은 시기니까. 그리고 이걸 문서에 보기 좋게 담아내야 한다. 공공영역은 문서로 말하기 때문이다. 화려한 표와 기깔나는 구성을 갖춘 한글 파일에 명료한 언어로 1년간의 실적을 꾹꾹 눌러 담는 문서 작성능력은 이때 빛을 발한다. 그렇게 예산집행과 성과 마무리에 힘쓰는 12월을 보내고 나면 새해를 맞게 된다.


1월은 업무보고의 시즌이다. 부서별로 연간 업무 계획에 대해 기관장에게 보고해야 한다. 이렇게 새 업무를 시작하면서 국민과 공유하기 위해 연간 발주계획을 공유하기 위한 작업을 한다. 연중 언제 대규모 입찰이 진행될지를 대국민에게 공유해 우수한 사업수행자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것이다. 2월은 3월에 있을 기관 경영평가를 대비해 총력을 기울이는 때다. 기관의 전년도 성과를 담은 200페이지가량의 보고서를 부서별로 나눠 작성하고 검토도 여러 번 한다.


번외로 대학의 계절학기처럼 특별한 시즌도 있다. 바로 명절, 을지훈련, 총선 등 국가적으로 큰 일이 있을 때다. 이런 때는 이름만으로도 무시무시한 '공직기강'을 철저히 지켜야 하는 때다. 주로 금품이나 뇌물을 받는 것, 복무위반이나 음주·폭행 등 품위손상, 민원처리 지연, 보안 미비 등을 중점적으로 점검한다. 1년의 한 번씩은 중앙 정부부처의 형님 격인 국무조정실이 불시에 이를 점검을 하러 나오기도 한다.

엄정한 공직기강이라니, 보기만 해도 무시무시하다!(출처 : 저자 촬영)





이렇게 공공기관의 1년은 정부 정책을 이행하고 책임을 다하는 일로 꽉 차 있다.

그리하여 오늘도 공공기관의 시계는 계속해서 흐른다.






대문사진 출처 : unsplas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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