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과 일하기 전에 당신이 반드시 알아야 할 네 가지
일하기 전에는 몰랐다. 업무를 통해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될 줄이야! 공공 영역의 일은 삶의 여러 면을 다루기 때문에 같은 공공기관, 정부부처에서부터 사기업, 비영리조직, 국제기구 등 많은 종류의 기관과 함께 일한다. 일 외적으로도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나는 공공영역의 일이 민간의 일과 많이 다르다는 걸 느꼈다. 그건 ChatGPT에게 물어보면 툭 튀어나오는 대답과는 달랐다.
가장 큰 차이점은 '결과의 가시성'이다.
지인과의 모임에서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N년 동안 일했는데도 내가 일한 결과가 눈에 안 보이더라고. 그래서 내가 뭘 했는지, 어떤 능력을 갖춘 사람인지 정리하고 싶어 글을 쓰기 시작했어."라고. 그러자 화장품 회사에서 일하는 지인이 “나는 내가 일한 결과가 바로 숫자로 나와.”라고 말했다. 마케팅 일을 하는 그 친구는 일의 성과를 실시간 판매 수치로 알 수 있다고 했다.
기관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공공기관에서 내가 담당하는 프로젝트 기간은 보통 5년이다. 순환근무로 담당자가 자주 바뀌기 때문에 한 프로젝트를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히 담당하는 것은 구조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먼 훗날 ‘굳이’ 내 일의 결과를 찾아보는 수고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내 일의 성과와 품질을 확인할 길이 없다. 담당하고 있는 프로젝트의 기간 중 눈에 띄는 변화를 만들어내지 않는다면, 그 일에 내 지분이 얼마인지 구분하는 건 모래알 속 진주 찾기와 같다.
일의 결과를 바로바로 알 수 있다는 건 일의 보람과 좌절을 더 쉽게 느낀다는 뜻이다. 열심히 일했는데도 숫자로 증명되지 않는다면 빠르게 절망할 것이고, 또 생각보다 결과가 좋을 때는 한껏 더 기뻐할 수 있을 것 같다. 또 어떤 점 때문에 결과가 좋고 나빴는지가 명확하니, 일하며 성장하기 위해 피드백도 즉시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공공기관의 일은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제때 그 일을 회고하고 다음 업무에 반영하기가 쉽지 않다. 또 내가 성과의 기반을 잘 만들어두더라도 후임자가 그걸 이어가지 않는다면 내가 기울인 노력은 헛수고로 남는다.
‘일의 결과가 바로 눈에 보이느냐 아니냐’는 ‘누구를 바라보고 일하는가?’와도 연결되어 있다. 내가 회사밖 사람들을 끊임없이 만나며 또 하나 느낀 건, 바로 ‘고객 지향성’이다. 내가 함께 일했던 사기업들은 일의 대상이 분명했다. 사람들의 행동변화를 이끌어 내야 하므로, 정확하게 타기팅 한 대상에게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한다. 하지만 공공에 있는 사람들이 일할 때 떠올리는 얼굴은 추상적이다. ‘OOO시민 전체’나 ‘OOO 학생 전체’와 같이 공공영역이 지향해야 할 대상은 더 넓고 먼 곳에 있다. 그러니 마켓컬리의 브랜드 페르소나인 “바쁘지만 잘 먹고 싶은, 먹는 것에 있어서 만큼은 깐깐하고 신중한 3040 직장인 기혼 여성”처럼 공공서비스의 페르소나를 정하는 건 매우 까다롭고 복잡한 일이다. 공공영역이 제공하는 가치는 시장과 고객이 명확하지 않아 수혜자를 특정하고, 그 결과물을 숫자로 환산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민간의 일이 소수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면, 공공의 그것은 다수를 위한 것이다. 그래서 공공영역에서는 성과를 달성하는 것보다 ‘목적을 달성하는 방식’에 집중한다. 기회는 평등하게 제공되는지, 과정은 공정한지, 결과는 정의로운지 같은 것 말이다. 너무 많은 사람들을 위해 일하기 때문에 누구를 위해 일하는지, 그 업무로 인해 어떤 변화가 있을지 떠올리는 건 개인의 몫으로 남는다. 하지만 이런 것이 요구되는 곳이 아니기에, 사업 담당자는 굳이 특별히 떠오르는 얼굴 없이 일하기도 한다.
또 다른 점은 '업무의 경계'다. 이건 직장인을 위한 교육프로그램을 살펴보면 잘 알 수 있다. 사적 영역은 브랜딩, 마케팅, 유통, 영업, 품질관리, CS,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직무가 다양하고 교육과정도 체계적이고 전문적이다. 그러나 공공영역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교육은 직급(직원, 대리, 팀장, 부장 등) 혹은 리더십 교육이 대부분이다. 감사 등 특정직무에 한해 심화된 교육이 있다.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에서도 정책기획력, 소통역량, 갈등관리, 디지털 역량 같은 것을 직무교육의 일환으로 제공하고 있지만, 사실 공통 소양 과정에 가깝다. 공공영역은 스페셜리스트를 양성하는 곳이 아니다. 그러므로 직무 전문성을 뾰족하게 벼리고 싶다면, 민간에서 하는 교육을 찾아 듣거나 자격증을 따는 수밖에 없다.
직무의 명확성은 곧 업무 범위와도 연결된다. 대부분의 사기업에서는 자기가 맡은 일만 잘하면 된다. 마케팅을 하는 사람이 부서의 자산을 관리하거나 대관업무를 직접 할 필요가 없는 거다. 공공기관도 부서와 직무에 따라 업무가 나눠져 있지만, 그것이 뚜렷한 성과나 목표체계와 연결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한 사람이 이 일도 하고 저 일도 하며, 직원이나 대리나 과장이나 하는 일에 크게 차이가 없는 경우가 많다. 나도 이전 부서에 있을 때 인사관리, 회계관리, 사업관리를 한 부서에서 담당했었다. 이런 점 때문에 공공에서 스타트업으로 이직한 지인은 ‘공공기관에서 일할 때보다 업무범위가 줄어든 것 같다’고 했다. 본인이 맡은 업무에 대해서만 강한 책임을 가지면 되기 때문이다.
‘계획의 유연성’에도 차이가 있다. 공공 영역은 주어진 예산을 ‘계획대로’ 집행했는지가 중요하다. 예를 들어 올해 A업무를 위해 E예산항목에서 100만 원을 쓰기로 했다면, E항목에서 그대로 100만 원을 쓰는 것이 예산집행률도 높이고 외부 지적 가능성을 줄이는 최고의 방법이다. 그런데 일을 하다 보면 더 적은 금액으로 그 일을 할 수 있는 경우가 생긴다. 예를 들어 시장조사를 한 결과 A업무는 50만 원으로 가능한 것이 확인되었다. 원래 예산의 절반인 50만 원으로 그 일을 해낸다면, 남은 50만 원을 아끼게 된다. 사기업이라면 더 적은 예산으로 똑같은 일을 해냈으니, 효율성을 높였다고 크게 칭찬받을 것이다.
그런데 공공에서는 반대다. E예산항목에서 100만 원을 써야 하는데 50만 원밖에 못 쓰게 되면, 남은 50만 원을 쓸 새 업무를 발굴해야 한다. 예산을 아꼈어도 결론적으로 예산집행률이 50%가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부서의 예산집행률 점수도 깎이고, 회사 예산 집행 총액도 낮아진다. 그러면 기획재정부가 주관하는 우리나라 전체 공공기관 대상 경영평가에서도 감점을 받게 되고, 심지어는 내년도 예산이 삭감될 수도 있다.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것은 ‘능력’이다. 사기업에서는 이런 능력이 높이 평가받을 거다. 하지만 공공기관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획한 것 그대로 이행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만약 계획에 차질이 생긴다면 ‘왜 기획이 미흡했냐’ 혹은 ‘다 쓰지도 못할 돈을 왜 받아 갔냐’고 지적을 받게 된다. 큰 일의 경우 담당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도 있다. 이러니 정부 조직과 함께 일하는 민간 파트너들은 조금 답답하다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렇게 경직성이 높은 것이 나라의 일인 것을.
마지막으로 공공과 민간은 ‘쓰는 언어’에 차이가 있다. 공공의 언어는 '온-나라 시스템'과 '한글 2020' 프로그램에서, 민간의 언어는 워드, 노션, 슬랙, 지메일에서 만들어진다. 공공의 언어는 예산집행률, 국정감사, 국민소통과 같이 정부 정책을 잘 이행했는지 확인하기 위한 수단이다. 반대로 민간의 언어는 생산성, 판매 플래닝, 영업이익과 같이 수익 창출과 극대화를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공공과 민간의 언어 사이엔 통역이 필요하다. 공공에서 민간으로 이직한 사람들은 스타트업 용어를 따로 공부한다고 했다. 민간에서도 정부 정책을 이해하려면 공공의 언어에 대한 해석이 필요하다. 요즘 민간기업에서 대관업무할 사람을 따로 뽑는 일이 많은 것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민관협력 사례가 늘면서 정부의 의도와 배경을 정확히 해석해 기업이 어떤 입장을 취할지 정하는 것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온-나라 시스템 : 문서결재, 지식관리, 메일과 영상회의 등을 위한 정부 전용 업무시스템
그러니 앞으로 공공의 사람들과 함께 일하려고 마음먹은 사람들이라면, 민간 영역과는 조금 차이가 있는 공공의 특별한 점들을 알아두면 어떨까? 당신도 언제 공공기관과 함께 일하게 될지 모르니. 무엇보다 ‘공공기관은 왜 이렇게 일해? 왜 이렇게 보수적이야? 공공기관 담당자, 왜 이렇게 답답한 거야?’라고 변하지 않을 것들을 탓하며, 낭비할 시간을 줄일 수 있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