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에 합격해도 저는 공공기관에서 일할 거예요!
이직도 능력인 시대에 여전히 연차가 무기인 직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나와 같이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다. 좋은 회사 다닌다고, 안정적인 곳에 있다며 사람들로부터 종종 부러움을 산다. 하지만 정년까지 쭉 한 곳에서 계속 일할 수 있다는 직업적 안정성은 나에게 회사를 선택하는 기준이었던 적이 없다. 그럼 나는 왜 여기서 일하게 되었나?
어릴 때부터 난 돈 버는 일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왜 인지는 잘 모르지만, 물질적인 것에는 도통 끌리지 않았다. ‘부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다. 귓가에 돈 소리가 들릴 것만 같은 ‘돈 많이 버는 법’, ‘재테크 잘하는 법’ 같은 말들은 아주 잠깐만 나의 이목을 끌 뿐이었다. 그것보다는 난 이런 데에 관심이 더 많았다.
‘세상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나는 세상을 바꾸는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어떤 일을 해야 다른 사람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까?’
취업을 준비하던 시절, 불안한 마음에 몇몇 대기업에 입사 원서를 쓴 적이 있다. 놀랍게도 그 유수의 회사들은 나에게 ‘보험’이었다. 감히 ‘제일 원하는 회사 떨어지면 가야지-’하고 생각했던 거다. 사기업에 원서를 써야 하는데 관심 있는 부서가 없어, 희망 부서를 모두 사회공헌팀으로 썼던 기억이 난다. 기업이 일하는 방식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기에, 사회공헌팀이 조직에서 어떤 위치에 있고 그 팀에서 일하면 어떤 커리어를 가지게 될지 알지 못했고, 알려고 노력하지도 않았다. 그러니 그 회사의 핵심 부서가 아닌 사회공헌팀을 썼을 수밖에.
‘삼성’에 합격해도 난 공공기관에서 일할 거야!
이런 당돌한 결정을 하게 된 건 중학교 시절의 결심 덕분이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하며 살아야 할까?’를 고민하다 갑자기 어릴 때 품었던 마음이 생각났다. ‘국경을 넘나들며 나같이 집안 사정은 조금 어렵지만 미래를 열망하는 학생들을 돕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그때를 떠올리며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꾸는 데 기여하는 사람'이 되자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이때의 다짐이 지금의 나를 있게 했다.
친구들이 고시공부를 하고 로스쿨 입시를 준비하거나 대기업에서 인턴을 하고 있을 때, 난 내가 하게 될 일을 미리 체험해 보는데 시간을 쏟았다. 국제 기후변화 청소년 포럼에 나가 한국 대표로 토론을 하고, 공익모금을 하는 비영리기관에서 인턴을 했다. 국제행사의 한국 조직위원회에서 홍보를 지원하는 일도 했다. 이렇게 다양하게 관심사를 뻗고 국제 사회에서 다루는 이슈들을 경험해 보고자 애썼다. 내 꿈을 이룰 수 있는 정확한 일의 좌표를 찾고 싶었다.
진짜 전문가가 되려면 바닥에서부터 시작해야 해!
내가 '사람들이 좀 더 나은 삶을 살도록 돕는 일'을 할 자격이 있는 사람인지를 시험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한 NGO활동가님의 "진짜 전문가가 되려면 바닥에서부터 시작해야 해."라는 말씀이 내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멋진 회의장에서 펼쳐지는 말들의 향연 속 숨겨진 치열한 현장의 모습을 알아야만 진짜 그 일을 아는 것이겠구나' 싶었다. 그 말을 따라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일을 찾았다. 해가 환히 비추면 학교가 될 콘크리트 바닥을 다지고, 하늘이 붉게 물들면 모래가 알알이 등에 박히는 캄보디아 시골마을 텐트에서 살았다. 황량한 모래사막을 넘고 체감온도 영하 40도의 겨울을 견디며, 몽골에서 자원봉사를 하기도 했다.
그렇게 마음에 품었던 일의 끝단을 체험해 보고 나서야, 난 스스로에게 '승인' 버튼을 눌러줬다. '이 일을 해도 되겠다!'라고 말이다. 그리고 그 일을 할 수 있는 최적의 회사를 찾았다. 공익을 위해 일하는 곳일 것, 업계의 동향을 파악할 수 있는 곳일 것, 그리고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를 대표할 수 있는 기관일 것. 이 세 가지를 충족하는 곳이 바로 내가 지금 10년 넘게 일하고 있는 공공기관이었다.
사람들은 보통 성적에 맞춰 대학 전공을 고르고, 월급과 워라밸이 보장되는 곳을 찾아 사회생활을 시작한다. 하지만 난 학창 시절 내 꿈을 북극성 삼아 철저한 현장 검증을 거쳐 이곳을, 이 일을 선택했다. 어릴 때부터 꿈꾸던 곳에서 일하게 되었다니 난 참 행운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일을 선택하는데 까다로웠을까?
그건 바로 일이 내게 주는 의미 때문이다. 내게 일은 ‘세상을 긍정적으로 만드는데 기여하는 사람’이라는 꿈을 이루는 수단이자, 나 자신을 완성해 가는 과정이다. 그래서 어떤 일을 할지 신중하게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선택한 일을, 이 회사를 아끼고 사랑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니 바라건대, 사람들이 적어도 나에 관한 한 ‘공공기관은 워라밸이 좋고 안정적이라 선택하는 곳’이라는 시선을 거두어 줬으면. 나에게 일과 회사는 ‘진심’이란 말로 차고 넘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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