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괴발개발

고양이발과 강아지발

<괴발개발> 1

by 박성봉
고양이 두 마리, 강아지 두 마리와 함께 살아가는 일상.
'괴발'의 말랑함과 '개발'의 꼬순내를 사랑하는 나.
두 동물의 거리를 탐색하고, 사람과 동물의 닮음과 다름을 사유하는, 매우 사적인 에세이.


퇴근길의 설렘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가니,


'구름'이가 현관 중문을 발로 긁으며 반갑다고 몸부림친다.

예민한 '꽃님'이는 컹컹 짖으며 달려와 배를 보이며 눕는다.

어느새 다가온 '다복'이는 게슴츠레 뜬 눈을 깜빡이며 바라본다.

이에 질세라 '조이'는 이마를 연신 정강이에 부딪히며 그르렁댄다.

나의 퇴근 후 집에 도착했을 볼 수 있는 광경이다.


나의 '인간' 룸메이트들은 결혼 햇수와 학년이 올라갈수록

반비례해 퇴근길 환영강도가 떨어진다.

하지만 우리 집 고양이와 강아지의 환대는 한결같다.

피곤한 하루를 끝내고 돌아온 집.

쏟아지는 애정표현 속에서 그날의 걱정과 스트레스가 사라진다.


우리 집에는 다른 동물들도 함께 산다.

고슴도치, 반수생 거북이와 세스랑게(manicure ghost crab)도 있다.

지금은 각각 자신들이 왔던 별들로 돌아갔지만, 한 때 사슴벌레, 청개구리,

구피, 콜덕(call duck)이라는 오리와 도마뱀붙이(gecko)도 있었다.

그야말로 우리 집은 작은 동물원이다.


이렇게 여러 동물들이 우리 집에 오게 된 원인은,

1) 동물들을 너무너무 좋아하는 딸의 충동조절 실패와

2) 이를 용납하는 나의 무름과 약간의 여윳돈,

3) 그리고 아이들을 케어하는 아내의 희생이라는 삼박자가 맞아떨어진 탓이다.


종의 평균수명을 생각하면 저마다의 속도로 살아가는 생명들.

가장 느린 거북이와 가장 민첩한 고양이들.

밤에만 부스럭거리는 고슴도치와 꾸벅꾸벅하지만 낮에는 깨어있는 강아지들.

이러한 다양한 시간감각이 우리 집만의 독특한 박자와 리듬을 선물한다.


고양이 vs. 강아지


미국에 살 때 자주 듣던 가벼운 질문이 있다.

“Are you a cat person or a dog person?”

당신은 고양이과(科)입니까? 강아지과입니까?

단순히 고양이와 강아지 중 어느 쪽을 더 좋아하느냐를 넘어

당신의 성격이 어느 쪽을 더 닮았느냐를 묻는 질문이다.


나의 대답은 늘 같았다.

“I’m a dog person.”

나는 강아지과였다.

관심받는 걸 좋아하는 '관종'이고(attention hogger),

강아지의 천진난만함이 내 성격과 잘 맞았다.

그리고 그런 사람과 있을 때 더 힘을 얻었다.


그런데 5년 전, 고양이를 키우기 시작하면서 균형이 완전히 바뀌었다.

몰랐던 고양이의 매력에 빠졌다.

그러고 보니 나에겐 고양이의 모습도 강아지의 모습도 둘 다 있는 것 같다.

지금은 둘 모두를 너무 사랑한다.

아니, 이들이 나를 더 사랑하는 것 같다.

물론 그들의 사랑표현방식은 매우 다르다.

하지만 그 다름까지 너무 사랑스럽다.


강아지와 고양이를 함께 키운다고 하면 많이들 묻는다.

“둘 사이는 어떤가요? 많이 싸우지 않나요?”

솔직히 말해, ‘사이’를 논할 만큼 교류가 많진 않다.

말 그대로 서로 ‘소 닭 보듯’ 한다.


누군가는 고양이는 수직적 동물이고,

강아지는 수평적 동물이라 부딪힐 일이 없다고 말한다.

어느 정도 맞는 말이다.


고양이들은 강아지가 닿을 수 없는

캣타워 위나 식탁 위에서 머무는 시간이 많다.

높은 곳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는 고양이들과

바닥을 누비며 모든 것을 탐색하는 강아지들.

같은 공간에서, 다른 차원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이

가끔은 신기하기만 하다.


항상 관심을 갈구하는 강아지들,

멀찍이서 나를 관찰하다가

자신이 원할 때만 슬며시 다가오는 고양이들.

같은 집에 사는 네 마리지만,

네 개의 다른 세계가 공존하는 것 같다.


괴발개발-2.png 지금은 둘 다 무지개 다리를 건넜지만 발을 보이며 행복해 하는 '야옹이'와 '보리'의 괴발개발 (왼쪽부터)


괴발개발


나는 어릴 적부터 손글씨를 또박또박 쓰는 편이라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말이 있다.


“넌 글씨가 참 괴발개발이다.”


나는 오랫동안 그 말을 '개발개발'로 잘못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올바른 표현은 ‘괴발개발’이다.

첫 글자 ‘괴’는 고양이를 뜻한다.

또는 '개발새발'도 맞는 표현이다.

고양이, 강아지, 새의 발로 쓴 것처럼 글씨를 함부로 갈겨 써 놓은 모양을 뜻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괴발개발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부위 중 하나다.

'하리보'를 능가하는 통통한 '냥젤리'도,

누룽지맛 사탕같은 '꼬순내'도 나의 최애품이다.


‘괴’ = ‘고양이’의 줄임말로 쓰인 다른 표현을 없을까?


'괴목에 방울 달기'.

일상에서는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기'로 쓰이며

실행하기 매우 어려운 일을 비유한다.


엉성하게 싼 봇짐을 지칭하는 '괴나리봇짐'.

'고양이가 짐을 싼 것처럼 어설프다'는 뜻이라고 오해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다 발음까지 와전되어 '개나리봇짐'(X)으로도 불린다.

하지만 여기에서 ‘괴’는 고양이가 아니라 덩어리 '괴(塊)’이고

그리고 ‘보’는 보자기를 뜻하는 '보'(褓)이다.

그러니깐 먼 길을 떠나는 사람이 어깨에 메고 갈 수 있는 보자기짐을 뜻한다.


'괴나리'이건 '개나리'이건, 뭐 어떤가.

내가 아는 고양이와 강아지의 보자기로 덮어놓은

이야기 봇짐을 하나씩 하나씩 풀어보려 한다.



연재를 시작하며


오늘도 나는 퇴근길에 현관 비밀번호를 누를 것이다.

그리고 네 마리의 환영 인사를 받을 것이다.

무조건적인 사랑이란 건,

완벽함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

내가 피곤해 보여도,

늦게 들어와도,

가끔 간식을 깜빡해도,

그들은 변함없이 나를 반긴다.

그 순수한 사랑에 관한 글을 쓰고 싶다.

사람도 동물이다.

하지만 나와 '네 친구'와의 거리보다,

어떤 경우에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가 더 멀게 느껴질 수도 있다.

이런 거리에 관해서 그리고 '닮음'과 '다름'에 대해서 글을 쓰고 싶다.


표지의 그림은 현재 초등학교 3학년생인 우리 딸이 1학년 때 그린 그림이다.

앞으로 그림을 좋아하는 딸아이와의 콜라보도 기대하시라.

아이는 자라고, 동물들도 나이를 먹는다.

언젠가는 이별을 맞이할 날이 올 것이다.

그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먹먹해진다.

'그래 2년전에는 야옹이도 함께 있었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네 마리의 털북숭이들과

한 명의 꼬마 예술가가 만들어가는

이 시끌벅적하고 따뜻한 매일이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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